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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0년의 시간 속을 걷는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신도신학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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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8 ㅣ No.742

[100년의 시간 속을 걷는다] “평신도는 배운다, 평신도는 자란다.” -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신도신학교육원

 

 

“누구든 오라, 배워야 산다.”라는 표어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계몽운동가들의 외침이었다. 물론 우리의 배움에 대한 욕구는 그 뿌리가 깊다. 천주교도 이러한 배움의 욕구에서부터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시복식에서 한국교회는 평신도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점에서 세계교회 역사상 유일한 공동체였다고 지적하면서, 그 출발을 이렇게 짚었다. “매우 신기하게도, 하느님 은혜는 여러분의 선비조상들을 당초에는 하느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지성적 탐구로 이끌었다가 그 다음에는 부활하신 구세주에 대한 산 믿음으로 이끌어주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공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평신도의 요구와 교리교사 양성 단기신학원

 

평신도는 현실생활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비신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교회의 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미 반세기 넘게 평신도 ‘전교사’ 혹은 ‘교리교사’ 양성을 위해 교리를 교육해왔다. 가톨릭교리신학원 또는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는 기관들이다. 일반적으로 이 기관들은 가톨릭대학이 있는 교구는 대학과 연계되어 있다. 서울의 ‘가톨릭교리신학원’, 대구의 ‘평신도신학교육원’과 ‘신학대학원’, 수원의 ‘하상신학원’, 대전의 ‘교리신학원’, 부산의 ‘신학원’ 등이 그 예이다. 가톨릭대학이 없는 청주, 제주, 원주교구 등은 교구청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신학원 이외에 수원교구와 같이 7년제 정규 신학대학이 일반신자나 여성수도자에게 문호를 개방한 예도 있다.

 

 각 교리신학원의 발전 속도와 변화는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신학원들의 교육내용이나 운영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교리신학원의 일반적 경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구 내 전문교육기관과 연계되고, 교육수준이나 내용이 고급화되는 것이다. 또 수강생 범위가 수도자와 일반신자 모두에게 개방되어 가고 있다. 강의형태도 수강생들의 형편에 맞춘 학점제 등록이나 통신강의 등 생활밀착형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신학원에서는 2천 년대 들어오면서 교리신학뿐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강좌나 전문인들의 강연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물론 교회는 자격증 취득자의 활용에 노력하고, 이와 동반하여 졸업생들의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지신학원의 밀씨, 가톨릭교리신학원으로

 

평신도 신학교육과정은 1958년 8명의 수강생으로 시작되었다.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교육은 큰 공감을 얻게 되었고 더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한국교회에서 평신도지도자 양성의 모델을 제공한 학교로는 서울의 가톨릭교리신학원을 꼽는다. 가톨릭교리신학원도 그 출범은 작은 밀씨에 불과했다. 1958년 조인원 신부가 개신교 전도사들의 활동상을 보고 가톨릭교회에서도 평신도 전교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1959년 자신의 부임지 가평성당에 여성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정지신학원」을 차렸다. 첫해 8명이 등록했다. 정지신학원은 1964년 수유동 교사를 신축할 때까지 가평성당, 서울 경운동 가톨릭의대 강의실, 돈암동성당 지하실 등으로 옮겨 다녔다. 1963년 서울시 교육위원회로부터 학원인가를 받았고 이듬해 교명을 가톨릭교리신학원으로 변경했다. 이때 남성 평신도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1968년 가톨릭대학교 부설 사회교육원으로 정식인가를 받았고 주교회의 산하 전국기구로 승격했다. 1970년 이 학교는 혜화동에 교사를 마련하고 통신교육을 시작했다. 2016년 현재 졸업생은 4천 명이 넘는다.

 

서울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이 교회정식기구로 성장하던 무렵 대구에도 교리신학교육이 시작되었다. 1966년 김영환, 신상조, 정달용 신부 등은 계산동 문화관에서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가르멜수녀원의 요구에 응해 수녀들을 위한 교리교육을 시작했다. 그러자 서정길 대주교는 이 교육을 왜관수도원에 의뢰했고, 1970년 대명동에 가톨릭신학원이 설립되었다. 대구가톨릭신학원의 출발은 수도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왜관수도원이 매년 여름 실시하던 유급전도사 양성과정을 거친 평신도가 이곳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가톨릭신학원에서 평신도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들에게 기회를 부여한 것은 1984년 야간부 설치부터였다. 그 사이 부산에서 1982년 통신교육 형태의 교리신학원이 열렸다. 통신신학과정은 1970년에 서울의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수원교구나 성바오로딸수도회 등 여러 곳에서 통신교리를 운영하고 있다.

 

교리교사 양성을 위해 1983년에는 광주가톨릭대학에 ‘대건교리신학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원교구는 1992년 수원가톨릭대 부설 하상신학원을 개원했다. 전주교구는 1997년 교구설립 60주년을 기념해 가톨릭신학원을 열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대전가톨릭대학교 교리신학원(2000년), 청주교구 교리신학원(2002년), 인천교구의 사목신학원(2003)이 잇따라 열렸다. 2014년에는 제주교구에도 교리신학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원주교구에도 교리신학원이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신도신학교육원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신도신학교육원(이하 평신도신학원)은 2000년에 출발했다. 교구에서는 이미 성서학교, 성서대학, 신앙학교 등 다양한 평신도지도자 양성교육이 이루어져 왔는데 이 모든 교육과정을 교육전문기관인 대구가톨릭대학교로 이관해 종합체계화를 도모했다. 왜관수도원이 운영하던 가톨릭신학원 과정도 이때 교구로 이관되었다. 교구 내 평신도 교리교사 양성의 길은 1984년 왜관수도원이 운영하는 가톨릭신학원 야간강좌로 평신도들에게 교리공부의 길을 열었다. 이와는 달리 대구대교구 평신도사목국은 1988년 9월 ‘성서학교’를 개설했다. 이는 1년 과정으로 출발했으나 졸업생이 나오는 이듬해부터 2년 과정으로 변경되었고, 2000년 평신도신학원에 통합될 때까지 13기를 모집했다. 성서학교에는 매년 80여 명이 등록하여 평균 30여 명이 졸업했으며 매회 5명 정도의 개근자가 나왔다. 박광호, 박영봉 신부 등이 강의했다. 또 성서학교의 졸업생을 대상으로 성서대학이 열렸다. 성서대학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7기가 등록했고, 통합 이후에 성서강좌는 대구가톨릭대학 신학강좌에 합쳐졌다.

 

한편 교구에서는 성서학교에 신학과정을 추가하여 3년 과정 신앙학교도 운영했다. 신앙학교는 1991년 정달용 신부를 초대학장으로 시작되었다. 지도신부는 평신도사목국장 신부들이 겸했고 이홍근, 최창덕 신부 등 20여 명의 신부와 김길수 교수, 김 요세파 수녀 등이 강의했다. 한편 성서·신학교육이 통합된 이후에는 신앙학교에도 변화가 크게 일었다. 신학대학 신부들이 지도신부로 일했고 조현권, 김태형 신부 등 새 강사진이 합류했다. 신앙학교는 교구의 교리신학교육 과정들이 통합된 이후에도 2009년 7기 수강생까지 계속되었다.

 

2000년 평신도신학교육원으로 출범하면서 가톨릭대학의 보직신부들이 학교의 책임을 맡았다. 배임표, 김정우, 송재준, 박영봉, 송창현, 이재수, 허광철, 하성호, 심탁 신부 등이 수고했다. 또한 박 크리스티나, 류 마리아, 권 카타리나, 임 다리아, 박 모니카 수녀 등이 전담수녀로 파견되었다. 수업 장소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으로 옮겨지고, 교육 내용과 강사진도 더욱 다양화되었다. 평신도신학원은 2000년 1학기 등록자가 341명이었고, 이어 학기마다 600~700명이 등록했다. 그러나 2000년 후반부터는 등록자가 줄었다. 그리하여 신학원에서는 2009년에 자율이수제를 채택, 학생들이 과목당 수강하여 이수학점을 채우면 자격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2011년, 최창덕 신부가 신학교육원장으로 부임하면서 교과목개발과 강사투입 등에 획기적 변모를 꾀했다. 정희경, 최재향 수녀 등이 전담수녀로 부임해 힘을 보탰다. 이광호, 이상영, 정해철, 최성준, 문봉한, 최석환 신부와 전 에반젤린 수녀, 박경식, 김현정, 황종열, 김정숙, 조수정 등이 새 얼굴의 강사였다.

 

평신도신학원에서는 교구장 명의의 선교사 자격증을 받는 신학일반과정과 성경봉사자 자격증이 수여되는 성경과정이 열리고 있다. 그리하여 2001년에 60명이 선교사 자격증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2002년 23명, 2003년 23명, 2004년 14명, 2005년 14명, 2006년 9명(64명), 2007년 12명(100명), 2008년 20명(46명), 2009년 7명(46명), 2010년 2명(18명), 2011년 22명(7명)의 수확을 내었다.(괄호 안의 숫자는 성경봉사자 자격자이다.) 이들 졸업생은 일반적으로 각 성당에서 교리교사로 봉사하게 되는데 그중 교리봉사회는 졸업생의 전형적 모임이다. 즉 이들은 2002년부터 육군3사관학교 성바실리오성당에 교리교사로 파견되어 부대 내의 교리교육을 돕기 시작했다. 현재 독수리준본당(8919부대), 광성대성당(K-2), 무열대성당(2군사령부)에도 나가고 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봉사만이 아니고 자신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점이 더 중점일 수 있다. 그리하여 평신도신학원에서는 특별신앙과정이란 이름으로 교회의 요구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관심을 반영하는 강좌들을 학기별로 설치하고 있다. ‘성화와 함께하는 성경이야기’, ‘나의 멘토가 될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같은 특강의 개설은 그 좋은 예이다. 또 2011년부터는 매월 지성인을 위한 토요신앙특강을 개최하고 있다. 이는 지역 내에서 듣기 힘든 강의나 사회현안이 되는 문제들을 시의적절하게 공급하려는 시도이다. 교구는 지난 50여 년 동안 운영해온 신앙교육경험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평신도 혹은 비신자들과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라지만 현재 교회에는 사제성소와 수도성소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동안은 평신도가 그 빈자리를 보충해 줄 수 있다. 평신도 중에는 자신이 사회에서 갈고 닦은 능력을 교회봉사를 위해 활용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위한 교리교육이 필요하다. 혹은 교회가 필요로 해서 평신도를 선택하여 일꾼으로 키울 수도 있다. 더러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기 위해 더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잘 구별해서 제대로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교회 행정 당국의 몫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평신도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정리해서 그를 나누고자 했던 정약종과 같은 선조들의 후예이다. 학교란 배우기 위해서만 다니는 곳이 아니다. 동문들 간의 휴먼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해당 분야에서의 활동을 원활히 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가 깊고 좋은 동문이 많은 학교가 환영받기 마련이다. 유서 깊은 대구의 신학교육기관에서 인생의 새로운 한 부분을 설계해 볼 수도 있다. 봄이 오면 이를 위해 새로운 기지개를 펼 필요가 있다.(도움: 최재향 수녀, 안드레아 수사)

 

[월간빛, 2016년 3월호, 김정숙 소화데레사(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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