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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집의 계보와 사목의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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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19 ㅣ No.1842

[오늘 우리의 생태 영성 살이] 집의 계보와 사목의 규모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찬미 받으소서』 1, 3, 13, 17, 53, 61, 155, 164항 참조) 집에는 규모가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혹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고, 마을, 도시 혹은 나라라는 집이 있습니다. 선조들은 나라를 ‘국가(國家)’라고 표현하였으니 나라를 하나의 ‘집’으로 본 것이었습니다. 또한 온 세상을 집 ‘우(字)’에 집 ‘주(宙)’를 써서 ‘우주(宇宙)’라 하였으니, 우주 역시 하나의 집으로 보았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오징어에게는 국경이 없고 두루미에게도 국경이 없습니다. 우주인들은 하나같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도 이념도 인종도 종교도 어느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 푸르고 아름다운 등근 행성이 보일 뿐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생태(生態)’라고 번역해서 쓰는 영어 ecology는 eco와 logy가 결합된 말입니다. eco는 oikos라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집’, ‘거처’라는 의미이므로 ecology는 ‘집 eco’에 관한 ‘logy=logos=말=이야기’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생태’란 단순히 자연에 관한 혹은 환경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집’에 관한,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이나 생물은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이해와 행동이 통합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경제(經濟)’라고 번역해서 쓰는 영어는 economy인데요, 이 말은 서구인들이 eco와 nomy를 결합시켜서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도 eco가 쓰였는데, 이것 역시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에서 왔고, nomy는 규범, 법, 사는 길을 뜻하는 그리스어 nomos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ecology(생태)와 economy(경제)는 모두 집안을 이루는 존재들이 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생태)이고 집안 존재들이 사는 데 필요한 길(경제)을 뜻합니다. 이 말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우리말로 ‘생태’와 '경제’가 원래는 서로 상통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데요, 서구에서도 이것을 어기고 자연 생태를 파괴하면서 개발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구 사람들은 경제와 생태, economy와 ecol-ogy를 통합해서 생태를 지키는 경제, 경제를 살리는 생태를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우주(字苗)를 말하면서 자연과 함께 살 줄 알았는데요, 오늘 우리는 경제와 생태, 생태와 경제가 대립된 것인 줄 알고 살거나 분리된 상태에서 살면서 생태를 신음하게 하는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직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에 생태 회칙이라고 불리는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황님은 사람 중심주의에 머물지 않고 환경과 자연을 통합하고 사람과 사회를 비롯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합해서 하느님의 집안 살림 중심의 ‘깊은 통합 생태’에 관한 가르침과 이것을 사는 데 필요한 대안들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0년 5월 24일부터 올해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발표 5주년 특별 기념의 해를 지냈고, ‘통합 생태(integral ecology)’를 통해서 지구 생명 공동체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지켜 가기 위한 7년 여정에 들어갔습니다. 의정부교구와 서울대교구, 청주교구와 대전교구 등이 교구 차원에서 7년 여정을 준비해서 실천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는 이런 삶의 맥락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분의 집과 그 집에 사는 존재들에 대해 돌아보는 복된 기회를 함께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참으로 사랑 깊으신 우리 하느님은 당신의 집을 지으시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 살 당신의 만물을 창조하셔서 당신의 집에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도 당신 꼴로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당신 숨을 불어넣어 당신의 하나의 집에서 당신의 온 창조물과 함께 살면서(창세기 2장) 당신 사람으로 당신의 집안 살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생태살이, 그분의 집안 살림을 설명해 준다고 믿습니다.

 

여기 집들을 보여 주는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기와집 한쪽 끝이 보이고, 그 뒤로 하늘과 나무들이 보이고, 한 나무에 까치둥지가 있습니다. 까치 한 마리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한 마리는 밑에서 날고 있습니다. 까치집과 기와집, 그리고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집 마당에 개가 사는 집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사람 집은 까치집이나 개집과는 다릅니다. 존재의 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 보면, 까치집은 나무에 지어져 있고, 나무는 땅을 집으로 해서 존재합니다. 땅은 까치에게 집의 집의 집인 셈입니다. 사람이 사는 기와집은 땅 위에 지어져 있으니, 사람의 집의 집은 땅이 되고, 개집 역시 땅을 바닥삼아 존재하니, 개의 집의 집 역시 땅입니다. 집의 계보를 따라가 보니, 까치와 개와 사람이 한 집, 땅 위에서 땅을 집 삼아 사는 존재들입니다. 위로 올라가면 서로 다르게 보이는 집들이 아래로, 바닥으로 내려가니 모두 땅바닥, 흙바닥, 돌바닥, 맨바닥이 하나로 이어져 고유하게 다른 생명들을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집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려 가는지에 따라서 가족과 친구의 규모와 사목의 규모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바닥, 우리 집의 규모는 어떤지요? 자신의 바닥을 알고 살아가는 태도와 규모에 따라 하느님의 집안 살림에 참여할 가능성과 역동성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집을 사람 사는 집으로 보는 데서 그치면, 사람들이 살지 않고 하느님의 창조물들이 사는 땅과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이라고 알기 어렵고 이 집을 돌보는 것을 사목으로 보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 집을 창조하시고 그 집에서 사람들보다 먼저 살게 하신 자연 만물들을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서 돌보는 일을 교회의 사목에서 필수적인 사명으로 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지구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셔서 우리가 살게 해 주신 ‘우리의 공동의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집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한 하느님께 창조되어 우리와 친교를 이루며 살 (『찬미받으소서』 92항) ‘우주적 가족’(89항), ‘우주적 형제들’(228항)로 맞아들여서 함께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이제 우리 교회, 우리 신앙 공동체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준비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의 창조를 다시 새롭게 만나서 온 지구 생명 공동체를 우리의 사목과 복음화의 동반자로 통합하여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당신께서 창조하신 오직 하나인 집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고,

당신의 집에 사는 모든 존재들과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당신 성령의 빛과 손길 안에서요, 주님.”

 

지난 호에서 천둥과 불을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자연물로 선택한 자매님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공감이 되셨는지요? 이 자매님은 처음에는 그렇게 불편했던 천둥과 불에 대한 성찰을 계속해 가면서 천둥과 불과 물에 대한 깊은 통찰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 존재의 충만을 새롭게 회복해 가는 축복을 체험합니다. 그런 속에서 자매님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지를” 깊이 깨닫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자연을 다스릴 힘을 주신 하느님의 신비”에 경탄하면서, 이런 깨달음과 경탄을 토대로 코로나바이러스 상황과 연결하여 성찰한 내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은 코로나가 지구를 아프고 병들게 만들어 고스란히 우리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원천으로 돌아가”서 “먼저 나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숨쉬”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따르지 못했던 어리석음”에 서 돌아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 기회에 “아주 큰 틀에서 보니 지구와 내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자매님은 “이 글을 정리하면서 나 역시도 자연의 일부이며 특별히 주님의 숨 안에서 살도록 지어졌기에 그 분 없이는 한순간도 살수 없음 ”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지, 수, 화, 풍 대자연의 성서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떠신지요, 〈빛〉잡지 독자 여러분? 여러분도 자연이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주는 책으로 느껴지는지요? 여러분의 신앙살이 여정에서 여러분 모두 성경이라는 책과 자연이라는 책이 계시해 주는 하느님의 사랑과 돌봄을 깊게 만나서 더욱더 충만한 신앙살이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주님이 마련해 주신 그분의 땅과 그분께서 보내주시는 그분의 물과 빛과 바람을 통해서 그분의 생명과 그분의 색과 그분의 숨을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함께 아름답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간빛, 2021년 7월호, 황종열 레오(평신도 생태영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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