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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일하는 사람의 기본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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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02 ㅣ No.1273

[알아볼까요] 일하는 사람의 기본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다녀오겠습니다.” 집 밖을 나서며 남기는 인사가 마지막이 될 거라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터로 출근하는 게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9월27일 아파트 외벽 유리창을 청소하던 29살의 일용직 노동자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49층 아파트 옥상에서 청소를 시작했지만 15층 높이에서 밧줄이 끊겨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처음 일을 나온 날이 그의 마지막 출근이 되어버렸다.

 

 

건강은 왜 중요할까? 노동자의 입장에서 관점 세우기

 

노동자 건강권 교육을 다니면서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떤 것들이 나의 건강과 삶을 위협하는지 말이다. 대부분의 교육 참석자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상사와 동료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좀처럼 줄지 않는 업무량과 긴 노동시간 대비 지켜지지 않은 휴식 시간 등 얽히고설킨 것들을 얘기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공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원인도, 근본적 해결책도 직장에 있지만 정작 노동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은 영양제를 챙겨 먹거나, 피곤한데도 가는 헬스장이다. 만약 영양제를 못 먹으면 몸이 힘들고, 일이 많아 운동하지 못하면 내 탓을 하게 된다. 근본적 해결은 안 되고 비슷한 상황만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건강은 개인적 요소보다 노동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개인의 유전적 요인 등이 있을 수 있지만, 일터와 사회에서 어떻게 위험이 관리되고 권리를 보장해주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는 달라질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정의는 시대적으로 변화해왔다. 1957년에는 유전적·환경적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적절한 생체 기능을 나타내고 있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정의했다. 1974년에는 건강의 질적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양심의 자유, 신념 등과 같이 영적 건강이 대두됐다. 이처럼 건강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위험이 있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권리들이 요구된다. 지금은 익숙해진 ‘과로사’나 ‘일터 괴롭힘’과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던 것들이 산업의 변화나 사회의 감수성이 변화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건강의 개념을 노동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건강은 질병이 없거나 아프지 않은 상태 정도로 이해된다. 실제 건강은 더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스트레스를 견뎌낼 힘과 환경), 사회적(가족, 친구, 동료 등 사회적 관계가 좋을 수 있는 환경) 건강 측면에서 긍정적 상태여야 한다. 이처럼 건강은 단순히 아픈 곳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 정신, 사회적으로 모두 조화를 잘 이룬 상태여야 하며, 건강한 상태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질 가능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에게 ‘건강’은 중요하다. 일하다 어디 한 곳이 아프기만 하면 직장 생활을 하기 어려워진다. 병가를 쓰려고 해도 임금이 보전되지 않는 까닭에 통증을 참고 직장에 나간다. 집배원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매해 산재 사망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2017년 9월 광주의 한 집배원이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전 달 매일 이용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충돌해 다리를 다쳤다. 유족의 증언에 의하면 병가 연장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했다. 해당 우체국이 무사고 천 일을 앞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달성하면 해당 우체국에 가산점이 주어져 병가를 반려했을 거란 추측이다. 고인은 유서에 “두렵다.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라네….”라는 문장을 남겼다. 아파도 참고 일할 것을 강요당하고,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의 건강만이 아니라 삶자체를 요구하는 기업을 향한 절규와도 같다. 노동자의 건강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터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권리가 보장되어야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다

 

일하다 사고로 죽는 노동자의 절반이 건설 노동자다. 안전 발판이 제대로 설치가 되지 않아 추락하거나 넘어져서, 끼어서 죽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건설 현장은 위험한 곳, 사고가 꼭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생각한다. 직업을 택해도 건설 일은 피해야 한다는 편견 아닌 편견도 강하다. 이처럼 일터에서 위험이 제대로 관리되고 예방되지 않으면 어떤 직업에 대해선 사회적 편견과 혐오까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라고 해서 반드시 다치거나 죽는 것은 아니다.

 

일터에서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며, 예방하면 얼마든지 감소시키거나 없앨 수 있다. 건물 공사를 할 때 작업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발판, 난간을 설치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공사 기간을 촉박하게 두지 않고 노동자가 안전에 신경 쓰면서 작업할 수 있는 충분한 공사 기간을 두는 것과 정반대로 공사기간을 촉박하게 잡아 빨리빨리 작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조건을 형성한다.

 

일터에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사고나 질병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재정 투자와 개선 노력을 기울인다. 졸음 쉼터를 곳곳에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캠페인도 한다.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운전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운전은 하되 위험을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처럼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변화된 사례들이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대형마트 계산 노동자들이 앉는 의자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앉아서 일 할 수 있는 의자가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앉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여성단체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대형마트에 의자가 놓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노동자도 ‘편하고 안전하게’ 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최대용량을 100리터에서 75리터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무거운 쓰레기를 직접 몸으로 들어야 하는 환경미화원들의 골병, 사고 다발 등이 꾸준히 제기됐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들이 조직되었고, 일터에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안전한 일터 환경도 조성될 수 있다는 변화였다. 노동조합의 형태 혹은 다양한 형태로 뭉쳐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현실을 조명하고, 해결 방안을 촉구해왔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권,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이 없거나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의 기본권은 바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며 출근했다 다시 집으로 퇴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1월호, 이나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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