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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9: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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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08 ㅣ No.637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9.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 ① ‘시노달리타스’의 의미와 교회 전통

 

요즘 교회 안에서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장 ‘핫한’ 단어 중 하나가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 그동안 ‘공동합의성’으로 번역해왔으나, 올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이 우리말이 본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해, 라틴어 그대로 ‘시노달리타스’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에 따름)가 아닐까 한다. 한국 교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보편교회적으로도 그러한 양상이다. 특별히 올해 10월부터 전 세계 교회에서 2년에 걸쳐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주교시노드)의 주제가 바로 ‘공동합의적 교회’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토록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단어가 우리에겐 아직 낯선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런가, 신조어이기 때문일까? 과연 시노달리타스는 신조어이긴 하다. 그러나 오랜 옛 보물을 새롭게 발견한 까닭이지, 그 역사 자체가 새롭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애당초 교회가 시작될 무렵 이 아름다운 전통도 이미 함께 있었던 것이다. 아주 놀랍게도 이 묻혀있던 보물이 다시 교회 안에 드러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그리고 공의회 폐막 후 50여 년이 흐르도록 어쩌면 신학적 주제로나 다뤄진 그 말을 새로이 교회의 중요 주제로 알린 이가 바로, 누구보다 공의회 정신을 성실히 구현하고자 애쓰는 현재 교황 프란치스코이다. 그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공의회 정신에 따라 보편교회의 중요한 상설기구로 제정됨) 제정 50주년(2015년) 기념연설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여정, 곧 함께 걸어가는 교회는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길이다.”라고 표명하면서 ‘시노달리타스’의 중요성이 새 희망의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말이 하느님의 백성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아보자. 오늘은 첫 시간으로 이 단어의 어원적 의미와 교회의 전통 안에 나타난 역사를 살펴본다.

 

먼저 시노달리타스는 그 어원을 그리스어 ‘시노드’(synod)에 두고 있다. ‘시노드’라는 말 자체가, 하느님 백성이 ‘함께’(syn) ‘길’(hodos)을 걸어 나간다는 뜻이므로, 우리말로는 ‘함께 나아가기’ 또는 ‘함께 걸어가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순례하는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을 일깨우는 본질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럼 시노달리타스의 전통과 역사는 어떠할까?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매우 중요한 속성 중 하나로 근본적으로 교회의 친교 영성과 전통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부터 교회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의 모임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합의와 의사결정을 이뤄나가는 중요한 전통을 가리킨다(박준양). 성경의 예를 들자면, 특히 사도행전 6, 15장에,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을 중심으로 제자들 공동체가 회의를 통해 당면 문제들을 함께 식별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잘 나와 있는데, 이것이 한 좋은 보기가 된다.

 

이러한 ‘시노달리타스’의 새로운 강조는 묘하게도 ‘하느님의 백성’ 의미의 재발견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곧 하느님의 백성이 본디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를 의미했던 것이 중세에 이르러 교회 권위의 한쪽 측면(여기서는 교계제도)을 강조하면서 교회(교계제도)와 백성(평신도)의 분리를 가져왔다가 다시 이 공의회에서 그 본뜻과 함께 새로운 시대적 징표의 의미를 담은 것처럼, 시노달리타스 역시 본래 초대교회 안에서 교회 합의를 이끌었던 전통이 중세 이후 사라졌다가(여기서는 ‘교황’의 권위 강조) 공의회 이후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관건은 이 두 단어의 중심에 ‘함께’(하느님의 백성 -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 모두)가 있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9.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 ② ‘시노달리타스’의 개념과 내용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의 중심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함께’라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로 지난 회를 맺었다. 오늘은 여기에 그 ‘함께’의 중심에 있는 ‘성령의 인도’를 본질적 토대로 하여 시노달리타스의 개념과 내용을 살펴보자.

 

시노달리타스의 신학적 의미와 이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문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Synodalitas - 올해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이전의 출판물로 ‘공동합의성’으로 표기된 것에 따름; 지난 회 참조)」(2018)에 따르면, “공동합의성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modus vivendi et operandi)의 고유한 특성”(6항)인데, 그것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 사이의 일치를 가리키는 ‘친교로서의 교회’와 관련된다. 그리고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의 개념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련되고 참여하는 것을 일컫는다”(7항). 이는 무엇보다 시노달리타스가 어떤 형식이 아니라 실제여야 함을 드러낸다. 곧 교회의 보이지 않는, 영적 친교 개념을 실제로(보이게) 적용해 실현하면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실제 삶에 적용되는, 교회의 삶의 방식이며, 동시에 교회의 친교의 영성을 향한 하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교계적 합의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성령의 인도 아래 신앙 감각의 주체인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참여하여 서로 경청하고 식별함으로써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망을 함께 찾아나간다는 영적 의미에서 해석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 위에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에 따라) 시노달리타스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순례하는’ 특성을 드러낸다(49항).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간다. 길이신 그분께서 당신 사랑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가 그분 안에서 ‘더욱 뛰어난 길’을 따를 수 있게 하신다. 곧 시노달리타스는 마지막 안식에 이르기까지 친교 안에서 걸어가는 교회 여정의 역사적 형태이다(50항).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이며,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복음 선포의 주체이다(53항). 따라서 시노달리타스는 교회 전체와 교회 안의 모든 이가 주체임을 드러내고(55항), 친교인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표현이다(58항). 그 안에서 공동합의적 과정은 교계적으로 구조화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한 교구 안에서, 식별과 자문과 협력의 공동작업을 통해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사목적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곧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도성과 보편성의 보증인 주교의 권위에 속한다(69항).

 

결국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삶과 사명을 특징짓는 고유한 방식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려는 성령의 능력으로 주 예수께서 소집하신 하느님의 백성이 회중으로 모이는 것이 곧 교회의 본질임을 드러내 준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교회의 일상적인 생활방식과 작용방식 안에서 표현돼야 한다. 그러한 방식은 공동체적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성찬을 거행하는 것, 친교의 형제애를 이루는 것, 하느님 백성 전체가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직무와 역할을 구별하며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을 통해 실현된다(70항).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9.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 ③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하느님의 백성과 시노달리타스의 관계를 다루는 마지막 시간으로 오늘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에 대해 살펴본다. 계속해서 교회의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문헌,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을 참고해 보자.

 

가장 먼저 시노달리타스 실현의 과제가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있음을 이 문헌은 강조한다: “하느님 백성 전체는 본디 그 공동합의적 소명으로 부름을 받는다”(72항). 곧 하느님 백성과 공동합의적 소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은 공동합의 구조의 틀 안에서 식별 절차를 시작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양성 부족과 평신도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인정된 자리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장애물들, 평신도들을 교회 생활의 주변부에 묶어두려는 성직 중심적 사고방식에 따른 장애물들은 모두 극복되어야 한다(73항).

 

공동합의적 삶은 제도적 구조들과 절차들을 통해 표현되는데, 이러한 구조와 절차들로 준비와 거행과 수용의 여러 단계들을 거치면서, 마침내 공동합의적 사건들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임무를 위해서 성령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교회의 교리에 충실하면서, 모든 이가 각자의 선물(은사)을 교환하며, 시대의 징표들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사명을 효과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적합한 도구들을 찾아내어 실행에 옮기려는 창조성 또한 필요하다(76항).

 

이를 바탕으로 개별 교회 안에서 친교와 시노달리타스를 실행하고 촉진하는 항구한 자리들로는 교구 시노드, 교구청, 참사회, 의전 사제단, 재무 평의회, 사제 평의회, 교구 사목평의회 등이 있고(80항), 본당 안에는 공동합의적 특성을 지닌 두 가지 구조가 있는데, 곧 본당 사목평의회와 재무평의회이다(84항). 이는 시노달리타스의 실행이 아주 구체적으로 교회의 일상생활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이렇게 교회의 사명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들을 식별하고 또 그러한 여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모든 교회 구성원의 책임과 (질서 있는) 참여가 필요하고, 이러한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결합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인간의 소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게 하는 ‘길’이 곧 시노달리타스가 될 것이다(43항 참조). 결국 이 시노달리타스가 지향하는 것은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와 복음화에 있으니, 그것을 교회(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의회는 이 ‘시노달리타스’(직접적 언급은 없지만)가 ‘사목 공의회’이며 ‘쇄신 공의회’인 이 공의회의 과제 실현의 중심에 있음을 암시하며, 이는 하느님의 백성이 성령의 인도로 신앙의 기본 교리를 이해하고, 교회 공동체적 성찰과 식별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신앙 감각(sensus fidei)의 도움으로 가능해짐을 시사한다(“성령께 도유를 받는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교회헌장 12항)). 이는 특히 교회의 예언직(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직무)과 관련되어, 하느님의 백성 모두(예외 없이)에게 주어진 직무이며 소명이니, 우리 모두 함께 성령께 의탁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길, 시노달리타스로 복음화를 이루어가자! [2021년 11월 21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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