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내 안의 두 자아를 하나되게 하는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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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28 ㅣ No.1710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내 안의 두 자아를 하나되게 하는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느님을 부르며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 안에 담겨 있는 참된 의미와 뜻을 잊은 채 너무도 쉽게 빨리 주님의 기도를 건성으로 바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건성으로 자기 만족을 위한 수백 단의 묵주 기도보다는 천천히 바치는 한 번의 주님의 기도가 우리를 더 깊은 주님과의 일치에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세 가지 연결고리를 만나게 됩니다. 하늘과 땅(하느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의 일치를 이루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기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마태 6,10) 그런데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뜻 가운데 하나는 우리 모두가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우리 마음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1-12)라는 기도문처럼 일용한 양식과 용서의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눈에 보이는 음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가장 하느님과 우리 인간을 긴밀히 연결시켜 주는 양식은 말씀과 성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바로 미사이지요. 미사의 양식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가 쌓아 놓은 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시는 미사와 화해의 고해 성사는 우리와 하느님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인 것입니다. 

 

둘째, 이 용서의 고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용서의 힘 역시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주님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일치시켜 주는 용서의 은총을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서는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죄)은 사랑의 결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이신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우리의 잘못으로 결핍된 사랑을 당신 사랑의 표현인 용서로 다시 채워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다시 이룰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몫이 될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기도에는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의 충돌에서 당신의 뜻을 선택하여 일치된 자아를 갖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 6,13) 광야의 유혹에 노출된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일상 안에서 수많은 유혹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 이타적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의 이익을 선택할 것인가?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의 이 싸움에서 주님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과 자주 깊은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善의 결핍인 “악에서 우리를 구해 달라”는 청원 역시 결국 모든 악은 외부로부터 그것이 온다 하더라도 마지막 결정은 내면의 자기 자신이 하게 되기에, 내 안에 계신 선이신 하느님과 함께 선택하게 해 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게 되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의 선입견과 편견을 넘어 하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리적인 규정에 얽매여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무한한 사랑에 자신을 넘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무한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나의 뜻이 하나가 되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거짓 자아는 사라지고 하느님 사랑 안에 일치된 자유로운 자아만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도 구속받지도 않고 사랑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참자아와 거짓자아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어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살기 위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하십시오. 사람들과의 일치를 위해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참된 일치를 위해 내 안의 거짓자아를 비워내십시오. 비워진 내 안에 그분의 사랑이 충만할 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라는 성모님의 기도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그것이 바로 나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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