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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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성령칠은9: 굳셈(용기)의 은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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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54

[성령칠은 제9강의] 굳셈(勇氣, force)의 은혜 (2) (9월 9일 수요일 오전)

 

 

히브 12:1-4 :

 

(히브12: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3)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 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면서 아직까지 피를 흘린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강의를 시작합시다. 여러분은 103위 성인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성령이 역사 하신 증거이다. 굳셈의 선물이다. 순교자들에게 똑 같은 성령이 힘을 주셨다. 우리는 어제 예수님의 사랑의 힘이 예수님의 수난에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사랑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힘이 교회에 생명을 준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것입니다. 우리는 화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과 접했습니다. 이 힘은 개인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다. 이 화해성사는 항상 우리에게 가능하다. 우리는 때로는 나약하고 깨지기 쉽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에 응답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의심의 유혹에 빠진다. 성사를 보아도 똑 같은 잘못을 범하곤 한데 왜 고백성사를 보나? 라는 의혹을 갖는다. 우리는 화해성사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사랑의 힘에 응답하는 것을 보았다. 여러분이 화해성사의 풍성한 결실을 맺고 그것을 사용하려면, 유혹 가운데 기도하신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유혹 중에 있는 우리 믿음을 굳게 하신다. 내가 성사를 볼 때에 내가 약했고 유혹에 빠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신다. 죄의 기회를 피하라고 가르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실 때에는 “아버지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죄를 피할 힘을 청하라고 가르치신다. 죄로 이끌어 가는 것들을 피하라고 가르치신다. “여러분의 눈이 죄짓게 하면 눈을 빼어 버리시오”라는 가르침을 알고 있다. 발이나 손이 죄의 기회가 되면 잘라 버려라.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신다. (마태16:23)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네가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죄에 빠지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많은 기회들이 주어진다. 고백성사를 보러 갈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죄에 너무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죄책감에 빠지고 그것을 지나치게 생각하곤 한다. 고백성사를 보러 갈 때에 죄책감이 가득하므로 그 죄책감을 없애려고 간다. 두려움과 죄책감을 계속 간직하고 싶지 않고 실패하는 것도 원치 않고 이제는 성공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태도는 너무 지나치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화해성사는 하느님의 사랑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관상할 기회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팔에 안겼을 때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아들의 마음을 회복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본 후에야 참된 제자의 마음을 찾는다. 고백성사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명상하고 귀를 기울이자. 그분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서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신다. 그분은 당신 사랑으로 교회를 섬긴다.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를 보자. “그리스도의 영혼이여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몸이여 나를 구하소서. 그리스도의 피여 나를 취하게 하소서. 당신 상처 안에 나를 숨겨 주소서.” 정말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당신께 이끈다. 예수님께 “주님 죄송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해야 한다. 내가 실패해서 죄송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상해 드렸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거스른 것을 죄송해 하는 마음을 깨우쳐 주시도록 성령께 은총을 구해야 한다. 마리 비안네 성인에게 어떤 사제가 와서 고백을 한 후에 “내가 신학교 때부터 계속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성인은 “기도하는 것 자체로 넉넉하다”라고 했고, “당신은 속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어떤 고행이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요. 가장 좋은 고행은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사목의 어려움을 기쁘게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행을 일부러 찾을 것이 아니라 삶의 고행이 올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행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에 그 사랑이 우리에게 옵니다. 이런 종류의 고행을 할 때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내가 관능의 노예가 되어 갈 때에 나를 자유롭게 해 줄 행동을 하면 좋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해방시켜 주시길 원하신다. 우리는 점점 위로를 찾고 또 찾는다. 새로운 것이 나오기만 하면 내가 가져야 한다.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나의 의견이나 생각이나 권위에 대하여 너무 큰 확신을 갖고 있음을 알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해 주고 있음을 안다면, 반성하고 성령의 빛을 좀더 탐구할 때이다. 

 

두 번째는 힘의 선물인데요. 예수님의 사랑의 힘에로 끌려가는 성향을 갖게 한다. 사랑은 한 번도 “이만하면 넉넉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고 우리의 종이 되셨다. 끝까지 사랑하셨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는 어제 예수님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을 보았다.

 

필립 3:12 :

 

(필립3:12)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빌3: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빌3:14)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빌3:15)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 다른 생각을 품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것까지도 분명히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빌3:16) 어쨌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한이 없다. 우리가 점점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이 줄 수 있다. 어쨌든 이미 우리가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더 많은 것을 주고 더 많이 주기 위해서 더 앞으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려고 합시다. 점점더 깊이 깨닫고 점점더 가까이 따르고 당신 교회를 위해서 잘 섬기기 위해서 그분께 작은 걸음이라도 한 발짝씩 나갑시다. 오늘 내가 그분께 가야 할 작은 발자국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하자.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가장 낮은 자리를 취할 수 는 있습니다. 좀더 섬기는 자리를 택할 수 있습니다. 더 작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의 과정은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사도직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신뢰를 갖는 것이다. 예수님이 12 사도를 불렀을 때에 그들에게 능력과 권한을 주셨습니다. 악령을 쫓아내고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그러한 능력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라고 하셨다. (루가10:20) 그러나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떤 전달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교리반을 위해서 책과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실재로 무엇에 의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방법에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의 능력에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가장 가난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신 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도직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 받는 사람들에게 파견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그런 확신을 어떻게 주셨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돕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의 능력이 작용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단순한 사람들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증거하셨다. 우리가 서로 만날 때에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증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해준다. 때때로 대화할 때에 기운을 잃어버린 일도 말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활동을 말하면서 서로의 믿음을 북돋아 주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는 장면을 보자.

 

사도4:13 (행4: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두 사도가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어떤 박해도 감수하면서도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박해를 받고 나서 교회가 기도를 하고 있다.

 

(사도4:29) 주님, 지금 그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를 살피시고 주님의 이종들로 하여금 조금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를 하였을 때에 성령이 이 선물을 쏟아 주신다. (사도4:31) 그들이 기도를 다 마치자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구절입니까? 성령이 주시는 은총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기쁘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의 기쁜소식으로 굳세어지고 또 그것을 전하게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까지 따라가셔서 예수님을 깊이 깊이 따르셨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이런 성령의 힘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사도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성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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