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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28 ㅣ No.1751

새 번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 바뀌는 성경 제목

 

강대인(새 번역 성서 합본 실무반 반장)

 

 

공용 성서의 채택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5년 춘계 정기총회(3월 7-10일)에서 “1988년부터 시작하여 15년 이상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성서학자들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원문에 가깝게 완역한 새 번역 성서를 ‘성경’이라는 제목을 붙여 가톨릭 공용 성서로 채택”(총회 보도자료)하였다.


그러나 전례에서 사용할 공용 성서로 발행하기 전에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우리말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로 하였다. 주교회의 총회에서는 새 번역에 문어체가 많아 문장이 부드럽지 않으므로 우리말을 좀 더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거의 온종일 이 한 문제를 두고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결과, 3개월의 여유 기간을 갖고 협의하여 공용 성서를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공용 성경 발행 준비 회의가 3월 21일에 열릴 예정이다. 성서위원장을 역임한 장익 주교와 이병호 주교, 그리고 현재 성서위원장인 권혁주 주교와 성서합본위원회의 성서학자들, 그리고 국립국어연구원장을 역임한 심재기 교수를 비롯한 우리말 전문가들이 참석할 이 회의에서 마무리 작업의 가닥이 잡히리라고 본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마지막 교정 작업과 인쇄 제작을 하는 기간을 미루어 보면, 공용 성경은 일러도 올여름이 지나야 발행될 것이다.

 

 

‘성경’이 더 적합한 말

 

주교회의 총회는 성서위원회에서 제출한 새 번역 성서를 공동 번역 성서 대신 공용 성서로 채택하여 이를 전례용 성서로 사용하자는 성서위원회의 제안을 논의하면서, 먼저 새 번역 성서의 명칭에 관한 의견 교환을 하였다. 앞으로도 성서를 새로 번역하거나 개정하여야 할 경우가 있을 터여서, ‘새 번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성서와 성경이라는 말(Biblia Sacra 또는 Sacra Scriptura)을 같은 의미로 써왔지만, ‘서’보다는 ‘경’이 좀 더 적합하다고 보아 ‘성서’가 아닌 ‘성경’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가 전례에서 공동 번역 ‘성서’를 사용한 뒤, 우리 귀에는 성서라는 말이 익어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말을 써왔다. 천주교용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주교회의에서 확정한 공용어에서도 ‘성서’와 ‘성경’을 함께 쓰기로 하였다. ‘성경’이란 종교상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 또는 교리를 기록한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와 똑같은 의미로 써왔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의 언어 습관이나 느낌에 따라, 그 두 말에서 어감의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동양의 전통에서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을 두고 어떤 책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거나 더 종교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들은 대개 다 ‘경’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일반인들은 성경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성서라는 말이 더 친근하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는 어느 말이 옳고 그르냐 하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어떻든 주교님들께서는 ‘성경’이 종교적으로 더 의미 있는 말이라고 보아 공용 성서의 제목으로 ‘성경’을 선택하신 것이다.

 

 

탈출기

 

이번에 채택된 공용 성경에서는 각 책의 제목도 몇 가지를 수정하였다.


먼저 공동 번역 성서의 출애굽기를 ‘탈출기’로 바로잡았다. 본디 히브리어 성경 제목은 고대 근동의 방식에 따라 그 책의 첫 낱말로 불리지만(이를테면, 창세기는 ‘한처음에’: tyvarb), 그리스어를 비롯한 여러 말로 옮겨지면서, 그 내용이 지금처럼 제목에 드러나게 되었다. 모세오경의 둘째 책인 탈출기는 그 첫 말마디인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twmv hlaw), 또는 이를 줄여서 “이름들”로 불린다. 우리말에서는 첫 문장의 끝에 “… 이름은 이러하다.”로 옮겨진다.


그러나 히브리말 성서를 그리스말로 옮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번역자들은 이 책의 내용에 따라 ‘나감, 탈출’을 뜻하는 ‘엑소도스(Εξοdο?’를 제목으로 붙였다. 라틴말과 현대 서양 언어들에서도 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말로, Exodos에 해당하는 ‘출(出)’과 이집트를 음역한 ‘애굽’ 또는 한자 표기 ‘애급(埃及)’에, 일의 내력을 기록한 문서를 뜻하는 ‘기(記)’를 덧붙여 이 책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자식 명칭은 이제 버려야 한다. ‘출’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은 명백히 중국식 조어법이다. ‘애굽’ 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집트에 해당하는 한자말은 ‘애급(埃及)’인데(국어사전과 선종완 신부 번역본 참조), 우리는 현재 이 나라 이름을 ‘애굽’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우리말 어법에 맞게 고친다면 ‘이집트 탈출기’가 될 것이다(생명의 말씀사 판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나 Exodos는 과거에 한 번 이루어진 이집트 탈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미 구약성서 시대에 제2 이사야는 하느님의 백성이 바빌론에서 귀향하는 것을 ‘제2의 Exodos’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영성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여정은 완전한 해방을 향한 Exodos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보더라도 ‘출애굽’과 ‘출애굽기’라는 개념과 제목을 계속해서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일정한 환경이나 구속에서 빠져나감’을 뜻하는 일반적인 개념인 ‘탈출’을 쓰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여겨지므로, 우리는 Exodos라는 말의 뜻과 이 낱말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들의 의도를 살려 ‘탈출기’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코헬렛

 

그리고 전도서를 ‘코헬렛(tlhq)’으로 바꾸었다. ‘전도서(傳道書)’라는 한자로 된 책 이름은 1장 1절의 코헬렛이라는 히브리말에 기인한다. 유다교에서 시작하여 예로니모를 거쳐 루터에 이르는 전통 가운데 하나는 이 낱말을 ‘전도자’, ‘전도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전통을 동양권에서도 받아들여 이 책을 전도서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붙여진 책 이름은 논리적이라 할 수 없다. 본디 ‘전도자/전도사’에 ‘서’를 붙여 ‘전도자서’ 또는 ‘전도사서’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냥 전도서라는 이름을 붙여, 이 책이 이를테면 종교의 도리를 전파하려고 집필된 책으로 오해될 여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공동 번역 성서는 코헬렛을 ‘전도자’라 하지 않고 ‘설교자’로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이름은 ‘설교서’, 더 정확하게는 ‘설교자서’라 하여야 했다.


그러나 코헬렛의 뜻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 낱말은 ‘집회’, ‘회중’, ‘국민 공동체’ 등을 뜻하는 ‘카할’의 동사형 ‘모이다’의 단순형 여성 단수 분사이다. 그래서 이 낱말은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의 어떤 직책이나 직능, 더 나아가서 이 직책/직능을 맡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칠십인 역은 우리말로 음역하여 에클레시아스테스 곧 ‘회중’, ‘교회의 구성원’으로, 히브리 성서를 라틴말로 번역한 예로니모는 ‘연사(演士, concionator)’로 옮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코헬렛은 ‘집회의 의장’ 또는 ‘집회의 연사’라는 뜻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수집가’, ‘수집 책임자’, 또는 ‘대변인’으로 옮기는 학자들도 있다. 그 본래의 뜻이 어떠하였든 코헬렛은 일반 명사에서 출발하여, 이 명칭을 지닌 이의 가명 또는 제자들이 부르던 호칭이 되고, 이 현인의 이름처럼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뜻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 와서는 코헬렛을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도 책 이름이자 동시에 본문에도 나오는 이 명칭을 일관성 있게 ‘코헬렛’으로 옮겼다.

 

 

신약성서의 서간 제목

 

현재 신약성서의 서간 제목은 수신인이나 필자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쓰인다. 특정한 장소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처럼 ‘고을 이름 + ~인들에게 보낸 편지’, 특정 개인에게 보낸 것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처럼 ‘수신인 이름 + ~에게 보낸 편지’, 여러 곳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야고보의 편지’처럼 ‘필자 이름 + ~의 편지’로 표기한다(‘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각각의 편지를 또 세 가지로 부른다. 예컨대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정식 명칭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약칭은 ‘로마서’, 약어는 ‘로마’이다(프로테스탄트에서는 제목을 ‘로마서’라 하고 약자를 ‘롬’이라고 한다).


그런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식의 표현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로마인’은 상식적으로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시를 중심으로 고대 로마 제국을 건설한 라틴족을 일컫는다. 사실 서양말과 달리 우리말에서는 일반적으로 크든 작든 고을이나 도시 이름에 ‘∼인’을 붙이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인’, ‘뉴욕인’이라 하지 않고 ‘서울 시민, 서울 사람’, ‘뉴욕 시민, 뉴욕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사도가 글을 써 보낸 것은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에 사는 신자들이다(로마 1,7). 그리고 당시 로마 신자는 전체 시민 수에 비해서 아주 소수였다. 사도의 다른 편지들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명칭은, 한자 문화권 전체의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에서 다 같이 사용하는 ‘로마서’라는 명칭과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편지/서간/서한’, 이 세 한자말이 이제 사전적 의미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로마서’는 ‘편지’가 아니라 ‘서간(書簡)’이나 ‘서한(書翰)’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로마서’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약칭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실 1940년대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펴낸 신약성서에서는 ‘성 바오로 종도 로마인에게 보내신 서간’이 정식 명칭으로, ‘로마서’가 약칭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필립비인들에게 보낸’이나 ‘로마인들에게 보낸’처럼 ‘고을 이름 + ~인들에게 보낸’보다는 ‘고을 이름 + ~신자들에게 보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신자들’ 대신에 ‘교회’라는 낱말을 쓰는 것도 바오로 사도의 의도에 맞기는 하지만(1고린 1,2; 갈라 1,2 등 참조), 그보다는 ‘신자들’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신자’ 외에 ‘신도’나 ‘교우’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현재는 ‘신자’가 많이 쓰이는 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 특히 초대교회에서는 ‘믿음’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신(信)’자가 들어간 낱말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편지’라는 낱말도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낱말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편지란 보통으로 짧고 비공식적인 글월을 가리킨다. 그리고 ‘편지’라는 말에는 위에서 지적한 사항 외에도, 특별히 글을 써 보낸 이를 존경하거나 그 글을 존중한다는 뜻이 거의 담겨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믿음의 바탕인 ‘거룩한 글’을 여느 글처럼 예사롭게 ‘편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식적인 글에는, 예컨대 교황님이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든지 ‘대통령의 서한’처럼, ‘서한’ 또는 ‘서신’이 자주 쓰인다. 공동 번역 성서 이전까지 천주교에서 쓰던 ‘서간’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글월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은 ‘편지’나 ‘서한’이나 ‘서신’보다 ‘서간’이라는 말을 덜 자주 쓰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바오로 서간’, ‘사목 서간’, ‘옥중 서간’ 등의 표현으로 곧잘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편지’와 ‘야고보(의) 편지’ 식의 표현보다는 ‘필립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서간’과 ‘야고보 서간’과 같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 서간들의 제목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간의 제목은 성경 각 권의 표지에만 쓰일 뿐, 실제로 미사 전례 등에서는 그저 ‘로마서’ 등과 같은 약칭으로 쓰일 것이다.


한편, 신명기, 시편, 묵시록 등과 같이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부정확하거나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하는 다른 이름들도 더 정확하고 쉬운 말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사목, 2005년 4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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