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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인간 존엄성: 종교 편향 논란과 가톨릭 교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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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9 ㅣ No.249

[문헌 풀어 읽기] “인간 존엄성”


종교 편향 논란과 가톨릭 교회의 입장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와 이웃 종교들의 만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종교간의 다툼은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 이는 외국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몇년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와 불교의 명백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 갈등의 조짐을 보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아가 특정 정치인들이 종교 편향적인 자세를 공공연히 보여서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을 촉발하기도 하였고, 어느 목사의 불교 비하 발언으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도 하였다.

 

그동안 종교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제 자신의 종교에 따라 타종교에 대하여 왜곡된 이해를 갖고 편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근본주의적 배타적 자세는 대결과 대치의 국면을 낳고 갈등상황을 조장하여 다양한 종교인들이 함께 살 공동의 근거를 파괴할 위험을 내포한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 다원 국가이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나 그리스도교 그리고 그 밖에 다양한 종교들이 외국에서 들어와 이땅에 뿌리를 내렸으며, 아울러 한국의 고유한 토착종교들도 발생하여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든 종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종교가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종교 선택과 수행이 보장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향적 자세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이웃 종교들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그 전까지는 가톨릭 교회 역시 이웃 종교들에 대하여 암묵적으로나마 폐쇄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곧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참된 종교이며, 다른 종교들은 오류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교회의 이러한 자기 이해는 특히 의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주장하기 시작할 때인 19세기에 일어났다.

 

교회는 진리 앞에서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진리를 선택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오류를 뜻하였으며, 진리 앞에서 자유로움을 행사하면 결국 진리에 대한 무관심과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웃 종교들을 참된 종교라고 인정하는 것이자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상대화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종교의 자유를 수용하는 것은 교회의 존립 근거를 파괴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을 피하려면 이웃 종교들은 악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교회가 이웃 종교들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관용뿐이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토대와 관련된 개념이었다. 곧 더욱 큰 사회적인 악을 피하고자 작은 악을 용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폐쇄적이고도 배타적인 교회의 암묵적인 자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에 많은 논쟁을 거쳐 긍정적으로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 교회는 이 공의회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이라는 선언문을 반포하였다.

 

교부들은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 제1항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인간 존엄성을 사람들은 이 시대에 날로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강제를 받지 않고 의무를 자각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며, 책임 있는 자유를 누리고 행사하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종교자유를 어쩔 수 없이 용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는 것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뜻이다. 인간 존엄성과 인간 기본권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긴 역사에서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싸워왔다고 볼 수 있다. 곧 교회는 인간의 기본권과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려고 항상 애써왔으며, 이는 성경의 전통에 근거한다.

 

 

종교자유의 책임과 양심

 

종교자유는 모든 인간이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교와 관련하여 어떠한 강제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강제당하지 않는다’는 수동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며,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차원에서도 의의가 있다. 따라서 종교자유는 한 인간의 배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차원에까지 확장되어있다. 모든 인간은 종교자유에 관한 한 동일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종교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아무도 특정 종교를 강제할 수 없다.

 

인간은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 “인간 존엄성” 제2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성과 자유의지를 지니고 태어나 개인적 책임을 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자기 존엄성에 따라, 본성적으로 진리, 특히 종교에 관한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리며 또 그 진리를 추구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 또한 깨달은 그 진리를 따르고 또 자신의 온 삶을 그 진리의 요구에 맞추어야 한다.”

 

나아가 종교자유의 권리는 양심을 거슬러서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단체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범위 내에서는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양심에 따른 행동은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사는 차원을 말한다. 아무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방해할 수는 없다.

 

 

교회는 진리를 추구한다

 

종교는 사회적 관계를 지닌 인간들의 집단이기에 그 자체로 폐쇄적으로 머물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인들 사이에 대화가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대화는 그 참여자들의 종교적 정체성이 확고한 상태에서만 가능하지만 이 정체성은 폐쇄적 정체성이 아니라 개방적 정체성이어야 한다. 폐쇄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는 이웃 종교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 부정적 편견을 바탕으로 폄훼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참다운 대화란 가능하지 않다. 대화란 단지 자신이 속한 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기 위한 일방적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진리를 추구한다. 진리 추구는 편견이나 일방적 태도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정 종교에 속한다고 해서 모든 진리를 한 번에 다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 존엄성” 제3항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성에 알맞은 방법으로 곧, 자유로운 연구, 교육과 훈련, 커뮤니케이션과 대화로써 탐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서로 진리 탐구를 돕고자 이미 발견하였거나 발견하였다고 여기는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깨달은 진리는 인격적인 동의로써 굳게 따라야 한다.”

 

가톨릭 교회는 종교자유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진리성을 상대화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 종교들을 통하여 참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고 고백한다. 이웃 종교들의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톨릭 교회는 인정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모든 종교 안에서 그 종교의 고유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해방을 추구하는 인간은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종교는 자유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규성 토마스 - 예수회 신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독일 프랑크푸르트 상트 게오르겐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08년 11월호, 이규성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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