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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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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6-14 ㅣ No.252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준비한다 - 교황청 문헌공부

 

 

오는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서울에서 아시아 평신도대회가 열립니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을 선포하기'를 주제로 열리는 아시아 평신도대회는 "제삼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아시아 교회」 1항)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세계 주요 종교 발생지인 아시아에서 여러 종교가 공존하면서 평화를 누리는 한국사회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점이 제삼천년기 첫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한국에서 마련하는 첫 번째 배경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역동성과 이를 통해 아시아, 나아가 세계교회가 배울 게 많다는 것도 중요한 개최 이유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번 아시아 평신도대회는 아시아 평신도들이 한국교회의 모범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 아시아 복음선교에 적극 나서도록 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평신도는 천주교회 창립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한 역사적 배경,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놀라운 성장을 이루고 있는 복음선포의 역동적 현장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한국교회 역동성과 풍요함에는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습니다. 아시아 복음선포의 당당한 리더가 되기엔 2%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입니다. 깊은 영성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하나되는 진정한 평신도상입니다.

 

평화신문은 아시아 평신도대회의 풍요한 결실을 위해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과 함께하는 특별 기획을 세가지 방향에서 시작합니다.

 

▲ 1단계는 교육과정으로 아시아 교회 및 평신도 관련 교황청 문헌에 대한 해설을 연재합니다. 아시아 평신도대회 나침반이 될 이 문헌들은 「주님이신 예수님」 「교회의 선교사명」 「평신도 그리스도인」 「아시아 교회」 등 4개 문헌입니다.

 

▲ 제2단계는 현장 르포 '오늘의 평신도, 그들은 누구인가'로 준비합니다. 교회 구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평신도들의 다양한 현실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 3단계는 전망과 제언 '교회의 내일, 평신도입니다'로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내일의 교회와 사회는 과연 우리 평신도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미래 평신도상을 찾아봅니다.

 

아시아 평신도대회가 우리 모든 평신도들이 교회의 진정한 주역이자 봉사자로 성장하는 희망의 장이 되도록, 이번 특별 기획에 애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해설 (상)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2000년 8월 발표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은 현대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의 거센 물결과 도전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이 견지해야 할 기본 원칙과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1980년대 종교 다원주의 확산

 

이 문헌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나타난 신학적 흐름과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세상에 대해 폐쇄적 입장을 취하던 종래의 배타적 성속이원론이 복음의 빛에 입각해 재해석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공의회는 세상에 대해 보다 개방된 자세로 임하며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를 숙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타 종교의 구원론적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운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공의회의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에서는 '친교'와 '봉사'라는 핵심 개념을 천명했으며, 비록 교회 밖에 있지만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비그리스도교 선언」에서는 타 종교들의 종교ㆍ문화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명시적으로 표시했다. 공의회의 이러한 신학적 기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신학적 전개와 흐름 속에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래 전 세계적으로 종교 다원주의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에 입각해 기존 그리스도교 신학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교회 안팎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와 마주하는 상황에서, 크게 보아 세 가지 유형의 신학적 흐름을 분류하게 된다. 세 가지는 배타주의(교회 중심주의), 포괄주의(그리스도 중심주의), 다원주의(신 중심주의)다.

 

첫째, 배타주의 또는 교회 중심주의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신학적 흐름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명제로 대변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경향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또 계시와 역사, 신학과 인간학, 교회와 사회를 분명하게 대비시켰던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의 신학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구원론적 절대성 현저히 약화

 

둘째, 포괄주의 또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라고 표현되는 신학적 흐름의 대표적 경우는 독일 신학자 칼 라너가 제시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드러난 가톨릭교회의 구원론적 입장이다. 즉, 명시적으로 교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 삶에서 하느님 뜻이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사목헌장」 22항 참조).

 

셋째, 다원주의 또는 신 중심주의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흐름에서는 모든 종교를 동일한 궁극적 실재로서의 한 분 하느님을 향한 여러 다양한 경로라고 보면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매우 강조된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 신비가 지니는 구원론적 절대성이 현저히 약화되고 간과되기에 이른다. 종교 다원주의의 입장은 바로 이 세 번째에 해당된다.

 

그런데 종교 다원주의자들 외에도 일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역시 두 번째의 포괄주의적 범주를 넘어 세 번째 다원주의에 어느 정도 접근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모든 종교를 상대성 안에서 바라보는 비그리스도교적 다원주의자들과 달리, 그리스도 사건의 구원론적 중심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에 보다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되었지만, 결국 이는 교회에서 많은 우려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왜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가

 

「주님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맥락과 배경 속에서 발표됐다. 그 제목 자체가 시사하듯이, 이 문헌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신비가 지니는 구원론적 의미와 가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는 한편, 교회의 중요성 역시 다시 한 번 천명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구원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포괄주의적 입장을 다시 한 번 표명하면서도, 왜 교회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에는 문헌의 발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 호에서는 문헌의 주요 대목을 직접 보면서 그 의미를 분석하겠다. [평화신문, 2010년 6월 6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해설 (중)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은 종교 다원주의로 인한 교회의 위기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상대주의 이론 오류 지적

 

"교회의 변함없는 선교 사명인 복음 선포는 오늘날, 실제적으로(de facto)뿐 아니라 원칙적으로(de jure)도 종교 다원주의의 정당화를 모색하는 상대주의 이론들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4항). 따라서 이 문헌은 여러 측면에서의 신학적 오류들을 차례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계시론적 차원의 문제를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제한적이고 불충만하며 불완전한 성격을 갖기에 다른 종교들 안에 나타난 계시에 대해 보완성을 갖는다는 이론은 교회의 신앙에 위배되는 것"(6항)임을 분명히 밝힌다.

 

여기에 나오는 '보완성'이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가 전적으로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기에 잘못된 것이다.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 구원 신비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계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론적 관점에서 역사의 예수님과 믿음의 그리스도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배격한다. 사실, 역사의 예수님과 믿음의 그리스도 사이 연속성과 단일성은 그리스도론의 기초 공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이신 예수님」은 "말씀의 구원 행위와 사람이 되신 말씀의 구원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앙에 위배"(10항)됨을 지적한다.

 

이는 우주적 말씀 그리스도를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상정하고서 인류의 결정적 시점에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육화가 나자렛 예수님 사건 밖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상정하는 가설을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 활동의 특성이 신성 안에서만 작용하는 말씀의 활동에서 비롯하며, 강생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더 멀리 떨어진 상태로' 그리고 '초월하여' 이뤄진다는 이론은 가톨릭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10항)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셋째, 성령론적 관점에서 과도한 '성령중심주의적' 시도를 배격한다. 즉,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말씀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 성격을 갖는 성령의 구원 경륜에 관한 가설"은 "말씀의 구원 강생을 삼위일체의 사건으로 여기는 가톨릭 신앙에 위배"(12항)된다는 점을 밝힌다.

 

이러한 가설적 시도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 성령을 통한 비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라는 이중적 구원 경륜 개념을 암시하고 있는 바, 여기에서는 오직 하나뿐인 삼위일체적 구원 경륜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 진술은 「주님이신 예수님」이 제시하는 신학적 전망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성자의 구원 효력 현실화

 

"그러므로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 신비와 성령의 구원 신비의 연결점은 명확하다. 성령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살았던 사람들과 그분께서 역사 안에 오신 뒤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해, 단 한 가지 목표로 하느님께 부름 받은 모든 민족의 삶 안에 사람이 되어 계시는 성자의 구원 효력을 현실화하신다. (…)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 아들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이뤄지고, 성령의 협력으로 실현됐으며 인류 전체와 우주 전체에 그 구원 가치를 펼치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 경륜만이 있을 뿐이다"(12항).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개자

 

넷째, 다른 종교들의 구원론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독자적인 구원 중개가 아닌 '참여적 중개'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유일한 구원 중개에 참여하는 차원에서의 중개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참여적 중개의 내용을 더욱 깊이 탐구해야 한다. 비록 여러 가지 종류와 정도의 차이를 가진 참여적 중개들을 배제하지 않더라도 이런 중개들은 그리스도의 중개에서만 힘을 얻게 될 뿐, 결코 그와 병행하거나 그것을 보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를 벗어난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그리스도교와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14항). [평화신문, 2010년 6월 13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해설 (하)

 

 

교황청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은 현대 종교 다원주의의 도전 속에서 분명한 그리스도 중심주의적(포괄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동시에, 구원을 위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새로이 강조한다.

 

지난호에 이 문헌에 나타난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입장을 고찰한 데 이어 이번호에는 교회론적 관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이 문헌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 8항에 나타난 표현을 분석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세우신 교회와 가톨릭교회와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을 통하여 다스려진다"(17항).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교회와 아직 완전한 친교를 맺지 않은 교회들(Churches)과 교회 공동체들(ecclesial communities) 안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가 발견된다는 것"(16항)을 언급한다. 물론 그 성화와 진리의 요소 원천은 가톨릭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 있음을 강조한다.

 

교회의 유일성과 단일성에 대해 설명하는 17항을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 안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긴밀한 결속으로써, 곧 사도적 계승과 유효한 성체성사로써 결합되어 있는 교회들은 진정한 개별 교회들"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동방교회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비록 그들이 하느님 뜻에 따라 로마의 주교가 객관적으로 전 교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고 행사하고 있는 수위권에 대한 가톨릭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와 맺는 완전한 친교에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교회들 안에서도 현존하고 작용한다"고 부연 설명한다.

 

한편, 개신교에 대해서는 "유효한 주교직과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한 교회 공동체들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아니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개신교와의 관계에 있어 성체성사를 통한 일치는 이뤄지지 않지만, 세례를 통한 친교는 어느 정도 가능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암시한다.

 

"이 교회 공동체들 안에서 세례 받은 이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며, 그럼으로써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교회와 어떤 친교 안에 있는 것이다. 세례는 사실 그 자체로, 신앙의 완전한 고백과 성체성사 그리고 교회 안의 완전한 친교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충만한 발달로 향하게 해준다."

 

그리고 19항에서는 '하느님 나라' 개념만을 너무 강조하며 교회 개념은 경시하는 신학적 경향에 대해 지적한다.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국 그리고 교회 사이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한 주장들은 하느님 나라 개념을 의식적으로 확대해 스스로 '하느님 나라 중심주의'라고 한다. 그들은 교회 모습을 교회 자체에서 보지 않고 전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증언과 봉사에서만 찾는다."

 

끝으로 22항은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은총론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앙의 이러한 진리는 교회가 세상의 종교들에 대해 갖는 진심어린 존경심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모든 종교는 다 나름대로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끄는 종교적 상대주의가 특징인 신앙 무차별주의를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의 추종자들이 하느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객관적으로 말해서 교회 안에서 구원의 충만한 도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이 중대한 결핍 상태에 있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그러나 교회 자녀들은 누구나 자신의 뛰어난 신분이 자신의 공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총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종교 다원주의의 위협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편성 그리고 교회가 지니는 구원론적 가치와 유일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와 관련한 신학적 오류들을 밝히고자 했다. 이를 통해 현 상황에서 수용될 수 있는 신학적 사유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가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으로는 이 문헌에 담긴 개념적 명확성과 직접적, 명시적 표현들은 일부 그리스도교인들과 타종교인들로부터 논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평화신문, 2010년 6월 20일,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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