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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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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7 ㅣ No.97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8)

 

 

3. 심리학적 꿈 해석을 위한 전제들

 

우리는 이전에 제시한 40대 여성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보기에 앞서 꿈의 해석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분석심리학적 전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제들은 심리학적 ‘꿈 분석’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 해몽’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꿈을 회상하여 해석하는 방식은 모두 전통적으로 내려온 또는 문화적으로 전수된 꿈 해몽의 유형을 따르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시중에 유통되는 꿈 해몽 사전 또는 꿈 백과사전과 같은 일련의 책들을 바탕으로 한 극히 주관적이며 정형화된 의미 부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 치료에서 사용하는 꿈 해석은 이러한 정형화된 도식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분석심리학적 꿈 해석은 극히 개인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각자의 꿈에 나타난 형상과 상징은 그 상황이나 형태가 아무리 유사하다 하더라도 결코 비슷한 의미로 해석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똑같은 돼지가 출현하는 꿈이라 하더라도 그 꿈을 누가 어떤 상황에서 꾸게 되었는지에 따라 그 형상의 의미와 전체적인 메시지가 전혀 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해석의 기틀은 꿈이 초자연적 세계 또는 인간 외부에서 주어지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꿈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간 내부에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상징이라는 신비한 방식을 통해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을 통해 자아의 또 다른 측면, 곧 ‘그림자’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림자’라는 의미는 C. G. 융의 표현을 빌린 것으로서 의식적인 자아의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의식하지 못하는 나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다. 이 그림자 개념은 의식적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무의식의 한 단면이다. (융은 무의식의 중요한 네 가지 원형으로서 아니무스, 아니마, 그림자, 그리고 자기를 상정하고 있다. 아니무스는 여성의 마음 안에 있는 남성을 말하고 아니마는 남성의 마음 안에 있는 여성을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도 온전히 순수 선(善) 또는 악(惡)의 모습을 지닐 수 없으며, 누구나 양면성을 자신의 인격 안에 공유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사회 안에서의 종교적 가르침과 사회적 교육은 인간이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통제하는 초자아(super ego)적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의식적인 자아는 늘 이러한 초자아에 정향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만을 인정하고 바라보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곧 자신의 인격 속에 숨어있는 어둡고 파괴적인 본능이라든지 비윤리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지게 되고 점차로 이러한 본능적 회피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바라보지 않으려 해도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인격의 이면에는 분명 상반되는 나의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융은 ‘그림자’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경찰과 범인은 서로 그림자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로 이 그림자에 대한 이해를 설명할 수 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사실 많은 경찰들이 범인이라는 껍데기를 쓴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모로 증명해 주고 있다. 많은 경찰들은 자신이 만일 경찰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강력계 형사들은 조직폭력배를 검거할 때나 이들을 수사할 때 정당방위적 폭력을 통해 범인을 체포하거나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태도로 이들을 심문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도 자신의 이면적인 모습을 문득 그들의 모습 안에서 느끼게 될 때가 있다는 말을 필자도 종종 들어왔다. 

 

또한 지극히 성스러운 삶을 살던 사람이 한번 그 길을 벗어나게 되면 한없는 나락에 빠져버린다든지 아니면 한없이 착한 사람이 어느 순간 마음이 변해버리면 한없이 악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인간관계 안에서 가끔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이면에 있는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거나 억압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인격 이면에 존재하는 상대적인 그림자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 곧 인격적으로 극에 치우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부정하고 있는 상대적인 극과 통하고 있음을 삶의 체험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에 대한 의미는 항상 어둡고 악하고 본능적인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의식하고 있는 자아의 또 다른 숨겨져 있는 모습을 뜻하므로 부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건전하고 자아 성장적인 긍정적 의미를 내포한 어떤 원의나 욕망을 뜻할 수도 있다. 

 

분석심리학적으로 꿈은 이렇듯 자아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현재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표상과 상징의 방식을 통해 드러내는 하나의 반영 양식이며 자신의 숨겨진 이면의 메시지를 전달해 줌으로써 한 인간이 통합적인 인격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자가 치유적 기제인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모든 꿈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분명한 의미가 존재하고 모두 자아의 통합적인 인격 형성을 위한 내면의 가르침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꿈 해석의 전제들을 제시할 수 있다.

 

전제 1: 꿈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꾼 꿈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영과 같이 느껴질 때도 분석심리학에서는 그 안에 우리가 찾아내어 해석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본다.

 

이 말은 결국 꿈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융의 무의식의 네 원형인 아니무스와 아니마 그리고 그림자와 자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전제 2: 꿈의 상징들은 고정된 사전적 의미(보편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며 개별적인 의미들이다.

꿈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상징적인 것인데 어떤 사물들만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행위들도 모두 상징적인 것이다. 따라서 고정된 꿈 해몽은 심리학적인 해석에서 제외된다. 또한 꿈의 상징들은 각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독특한 역사와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경우마다 다른 것이며 따라서 상담자는 꿈꾼 사람의 상징이 갖는 의미를 해석할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제 3: 얼핏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꿈속의 세세한 것 하나도 모두 의미가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꿈의 사소한 하나의 요소가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의미를 일일이 해석할 수가 없다면 너무 서둘러서 대충 해석해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나중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본다. 꿈의 일부만 해석할 수 있어도 정신분석에서는 내담자가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전제 4: 꿈 내용은 현실의 객관성을 반영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주관적이다.

 

꿈의 내용에 등장하는 표상들이 정말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따라 해석도 객관적으로 할 것인지 주관적으로 할 것인지가 정해지는데 많은 경우는 상징적인 주관성을 가진다. 

 

예를 들면 자신의 아내가 죽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날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다면 그 꿈은 현실의 객관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 남자의 꿈의 예는 외부의 현실이 아닌 내부의 현실을 반영하는 주관적 꿈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혼 위기에 놓인 한 남자의 상담 중에 다음과 같은 꿈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남자는 꿈에 복면을 한 남자가 자신의 침방에 들어와서 자신의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있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내는 이 강도를 보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하는 상태였고 자신은 그 강도를 제압해야 한다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이 꿈을 개인적이며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면 앞서 언급한 ‘전제 2’에서처럼 그 사람의 삶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남자는 아내에게 자신의 참 모습, 곧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아내는 그러한 남편의 모습에 거의 지쳐있는 상태로 근래에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 남자는 부인에게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남성 콤플렉스와 강박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자신의 내면을 아내에게 보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남자는 아내에게 군주와 신하의 관계처럼 자신에게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였고 어떠한 반대 의견이나 말대답조차도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부인은 결국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자신의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이혼 수속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감정적으로 전혀 변화가 없었으며 이러한 파국의 상태는 부인이 자신을 길들이기 위한 궁여지책 정도로만 치부하고는, ‘어디 할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이러한 위기 상황을 하나의 심리 게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결국 이 꿈은 복면을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인 것처럼 되어있으나 사실은 이 복면을 한 남자는 꿈을 꾼 자기 자신이 아니겠느냐고 필자는 내담자의 자유연상을 자극하였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온 모습은 복면으로 상징되었고, 아내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무시하며 목을 조르는 것은 평소에 아내가 자신들의 부부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자신이 알아차리도록 분명히 경고하고 있음에도 그 목소리를 억눌렀으며 숨을 쉬지 못하도록 아내를 억압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가 죽게 되었는데 이는 자신과 아내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꿈이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한 자신이 그러한 강도의 폭행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자신도 분명히 이 상황이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영원히 관계가 끊어질지도(꿈에서는 죽음으로 상징)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이나 남자의 체면 같은 것들을 내세워 해결을 위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내담자에게 말해주었다. 곧 내담자의 그림자는 분명 이 꿈을 통해 아내를 잃게 되는 원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제대로 인식시켜 주는 것이었다.

 

전제 5: 주관적 해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꿈의 기제는 투사이다.

 

바로 위 꿈의 주관적 해석에 사용된 꿈의 기제도 역시 투사였다. 이 남자는 언뜻 보아서는 어떤 강도가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모습이 강도에 투사되어 꿈에 나타난 것이요, 꿈은 이 내용을 통해서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도록 경고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곧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남자의 부적절한 환상적 이미지가 부부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본인은 문제가 없으며 아내에게 탓을 돌리려고 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라는 내면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전제 6: 결국 꿈의 최종 해석은 꿈을 꾼 사람의 동의에 있다. 따라서 일방적 해석은 있을 수 없고, 늘 상담자와 내담자의 자유연상이라는 공동작업을 통해 그 의미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한 남자의 꿈의 주관적 해석의 최종 판단은 역시 그 꿈을 꾼 사람에게 있다. 상담자가 이러한 해석을 시도해 줄 때 내담자 자신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이것은 의미 없는 유희에 불과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 내담자는 상담자가 제시한 해석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유연상을 통해 이해한 결과 그러한 꿈의 해석이 분명 자기 상황에 맞다고 동의하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해석이 되었다. 

 

위의 예에서 이 부부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지만, 남자는 적어도 이 꿈을 통해 그리고 이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자신이 강박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고 싶었던 자신의 가치나 믿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꿈은 꿈을 꾼 당사자가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그 해석을 이해하고 동의했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된다는 점에서 꿈 해석의 권한은 상담자나 분석가가 아닌, 꿈을 꾼 당사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상담자는 이러한 과정에서(자유연상) 길 안내를 해주는 사람에 불과하며 아무리 상담자 자신이 명확하게 꿈 해석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인 꿈의 의미는 내담자의 삶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에 내담자가 함께 동의하지 않는 상담자만의 멋진 꿈 분석이나 해석은 유희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전제 7: 꿈 언어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의식적인 언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위의 예에서는 그나마 누구나 쉽게 자유연상을 통해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 만큼 꿈의 구조가 매우 단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꿈이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상황이 접목되거나 중요한 대목에서 또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꿈에는 의식적인 논리도 없고 시간의 선후도 없기에 이것을 알아내려면 자유연상뿐 아니라 현실 안에서 여러 사건들과의 개연성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사목, 2005년 7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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