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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프란치스칸 영성60: 삶의 완성, 곧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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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12 ㅣ No.1681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60) 삶의 완성, 곧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그리스도

 

 

- 프란치스코에게는 복음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더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술탄에게 성경 내용을 설교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안녕과 권리를 깊이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참된 자유는 요원한 그 무엇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을 위해 좋은 것 전체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것입니다. 공동선이란 모든 사람에게 존중심을 갖고 가장 불행하고 비천한 이들의 필요에 효과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생명(삶)은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나’가 생명(생명 전체)에 관련된 것이다. 이에 관해 일리아 델리오(Ilia Delio, OSF)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원자로 전락시켜 버리고 제도 교회 안에 가두어 버린다면, 그리스도는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지닌 이 복잡한 세상에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 정신도 그렇거니와 구원 자체도 개인이나 개별적인 문제가 절대 아니다. 토마스 머튼은 구원이라는 것이 개인(individual)으로부터 인격(person)을 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다르게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 개인을 인격체(personhood)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 안에 살아 있는 인격체(human person)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 혹은 누구인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자신, 다른 이들, 그리고 세상과 관계 안에서 누구인가에 기초를 둔 것이다.”

 

 

15. 프란치스코 영성에 있어서 성경과 복음 대안적 삶 제3의 길

 

① 삶의 전적인 기준이자 삶 전체가 된 복음!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복음이 어떤 의미였었는지를 엿보고자 한다면 중세에 있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당시에는 복음이라는 것이 과학적, 신학적 지식을 모두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그때에는 대학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서조차도 성경을 기본 교재로 사용하여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데까지 사용했었다. 성경 안에 모든 사실과 질문 가능한 것들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때문에 성경에 대한 신비적이고도 경외의 분위기가 생겨나 평신도들은 성경을 접하기 힘들었다.

 

프란치스코 역시도 평신도였으므로 성경을 접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비록 중세 교회가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어도 성경 사용을 제한하고 있었다. 특히 발도파나 알비파 이단 그룹들 때문에 이런 제한은 강화되었다. 그리고 비록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교회가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필사본 성경의 엄청난 가격 때문에 극소수의 평신도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언어적인 제한 때문에도 평신도들이 성경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란치스코가 성경의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공부와 예술 작품들, 그리고 전례를 통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그저 지적으로 알고자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의 삶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적용해갔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 번 듣거나 접한 성경 내용을 마치 아들 예수에 관한 일들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한 동정녀처럼 새기고 또 새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실제 삶의 사건 하나하나를 성경 내용들, 특히 복음서의 내용들과 연결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는 대부분의 성경 내용을 꿰차고 있었으며 이렇게 간직한 성경의 모든 내용을 우리 삶에 구체화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결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가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육화하시어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겪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경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성경의 내용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그의 삶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 번은 그가 병중에 있을 때 성경을 읽어주겠다던 어떤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묵상을 하고 마음에 되새겨 보기에 충분할 만큼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을 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이여,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비참하게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는 복음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더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요한 14,6) 우리 삶의 구체적인 상황들 하나하나에 기준이 되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완성, 즉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지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 것을 요청했던 것은 우리 교회의 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편협한 의미의 선교와는 전적으로 달리 사람들에게 참다운 행복의 현실을 알려주고 이를 살아가게끔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체험한 하느님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완성, 곧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10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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