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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청년들, 잃어버린 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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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10 ㅣ No.129

[커버스토리] 교회 안의 청년들, 잃어버린 세대인가?

청년 없는 교회에 미래는 없다


청년이 머무르지 않는 곳은 이른바 ‘재미’가 없는 곳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이 시간,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청년들은 교회를 빠져나가기만 하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뢰할 만한 통계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교세통계로는 대학생 또는 청년들의 기본 ‘출석률’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 청년 신자들의 미사참례율은 6.9%에 그친 것을 알 수 있다. 자그마치 93.1%의 청년들은 놓쳤다는 말이다.

이러한 실태에 대해 그 누구보다 기성세대들이, 교회가 가장 안타깝게 느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해주기 이전에 청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시선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을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모습도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우선 청년들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복음적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데 많은 장애물을 만나는 사회구조 속에 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진리는 개인의 선택에 국한되는 문제라고 쉽사리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늘었다. 무엇보다 ‘천주존재’에 대한 의식(2005, 수원교구 시노두스 실현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조차 미비한 것이 오늘날 청년 신자들의 의식 실태다.

교회는 청년사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사목 현장에서 얼마나 실현되어 왔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청년 신자들을 어떻게 인식해왔으며, 그들에게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는가. 반면 청년 신자들의 삶과 의식은 어떠한가.

기존 청년 신자들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청년들을 이끌어 들이지 못하는 이중고.

교회가 오랜 시간 맞닥뜨려 있는 현실이다. 새로운 청년들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소수일지라도 든든히 교회 곳곳을 지켜주던 청년들조차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실제 청년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각 본당 청년회와 교리교사회 등의 인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사목자들은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청년사목의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는 안이한 의식을 드러낸다. 또 신앙교육만 잘 받았다면 언제든 교회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목자와 교육·심리학자 등이 청년사목의 위기를 지적했고,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에 나섰다. 유사한 지적이 꽤 오래 지속됐지만, 적절한 대안으로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조재연 신부(서울 무악재본당 주임 겸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는 “청년사목의 장기적인 방향이나 목적을 명확하게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궁극적인 방향성과 평가 지표의 모호함으로 인해 효과적인 개선안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청년사목의 현주소

1980년대 초반, 청년들이 물밀듯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었다. 교회가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면서 청년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은 덕분이었다. 당시에는 본당, 지구, 교구 할 것 없이 모든 단위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특별한 청년 대상 프로그램이나 계획이 없어도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았고, 자유로운 토의와 나눔을 이어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청년들이 교회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80년대 가톨릭청년 활동이 정치·경제 등의 논리에만 편중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 사회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사회문화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영상시대가 시작되면서 청년들의 관심은 감각적인 즐거움에 쏠렸고,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둔감했던 교회는 청년들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대안 마련에 분주해졌다. 이후 1996년 서울대교구가 본당청년사목부를 설립한 이후 많은 교구들이 청년사목 전담 부서를 두고, 맞춤식 혹은 찾아가는 사목을 확산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청년사목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생명으로 청년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청년들과 함께 만드는 동반 여정의 과정이다.”

교회가 밝힌 청년사목 정의에 따르면 청년사목은 공동체 중심의, 청년들이 주체가 되는, 청년들의 문화적 욕구와 다양한 특성을 포용하는 형태로 구현돼야 한다.

이러한 의식을 배경으로 통일된 청년사목 정책 구현, 전문가 양성, 청년들을 위한 전례와 문화 계발, 보다 많은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신앙의 터와 삶과 복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청년사목자뿐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그들의 지적대로 교회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 청년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은 자주 어긋나왔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우선 교회 입장에서 볼 때 청년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교구 단위의 시노드에서조차 청년사목은 종종 청소년사목과 뭉뚱그려 논의된 바 있다. 기존에도 청년들은 청소년에 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청년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우리도 인정해 달라”는 목소리를 가장 많이 내고 싶어 한다. 교회의 주요 일원으로 교회 결정에 함께 참여하고 책임지길 원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교회활동에 참여할 역량을 갖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인 권위 구조 안에서 참여의 장을 얻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 나가는 기회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교회 안에서는 청년들이 필요한 단체가 아닌, 교회가 필요한 단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활동을 통해 신앙을 성숙시키고자 했던 청년들은 반복되는 행사 등에 지쳐 교회를 멀리한다.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청년들이 교회 내에서 각종 잡일에 동원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풍토가 뿌리를 내렸다. 청년 신자들을 무료 노동 봉사자쯤으로 여기는 문제는 청년사목 전문가들도 냉정히 지적해 온 부분이다.

또한 청년들의 자주성은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사제들의 사목적 뒷받침도 무원칙적일 때가 많다. 게다가 사제들의 사목 대상은 청년들만이 아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목자들이 일관되게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데 힘쓰지 않고, 사목자의 특별한 의지가 없는 한 전문적인 양성이 이뤄지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청년사목 틀에는 교회 밖에 있던 청년들이 편안히 들어와 앉을 여유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신앙을 유지하며 교회 틀 안에 머무르는 청년들을 이끌어가는 데에도 역부족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성서사목부(2010, 서울대교구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조사보고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 청년들은 스스로도 소수만 교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실에 가장 큰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청년이든 의무적으로 주일미사에 참례하다, 언제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냉담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교회와 청년간의 폭을 좁혀줄 수 있는 방안을 실현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서울대교구가 한국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2002년)에 따르면 청년들을 위한 놀이·­문화공간 및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3.2%로 가장 높았다. 신앙성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심성 계발이 53.2%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전국 각 교구 청년사목 전문가들 또한 “청년들이 이 시대야말로 복음이 가장 필요한 시대라는 흔들림없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문화적 접점을 찾는 노력이 가장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1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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