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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친교의 해와 사회교리: 솔기없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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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19 ㅣ No.1949

[친교의 해와 사회교리] 솔기없는 옷

 

 

솔기없는 옷

 

1983년 시카고대교구장 조셉 버나딘 추기경의 ‘일관성 있는 생명윤리(Consistent ethic of life)’ 개념에 대해 지난 5월호에 간략히 소개했었습니다. 낙태, 사형, 전쟁, 빈곤 등에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 공통적으로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폭력에 대항해서 생명을 지키고자 할 때 반대를 하면서 동시에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속옷”(요한 19,23)을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처럼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과 실천도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학계에서는 버나딘 추기경의 논지를 ‘솔기 없는 옷(Seamless Cloth)’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배경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회교리를 알고 실천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

 

솔기없는 옷 개념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 그리고 좌우의 갈등 속에서 모든 이들이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왔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이들과 낙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확연히 구별됩니다. 단순히 구별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극인 경우도 많지요. 그래서 양쪽 나름대로 일리 있고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먼저 낙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전통적인 윤리 가치와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가의 역할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 윤리에 민감하고 동성애라든가 혼전 성관계 같은 주제에 엄격합니다. 또 강대한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국가의 부를 늘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때에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입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인간은 감시와 견제와 처벌이 없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 교육은 엄격해야 하고, 법은 엄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가정의 틀을 허무는 동성 결혼 같은 문제에도 엄격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들에게는 권리보다 의무가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반대로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라든가 다른 권력의 간섭을 가능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사형제도는 그런 면에서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생존권을 박탈하는 일이고,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에게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잘못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의무보다 권리가 더 중요합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인 사람들에게 의무가 강요된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권력과 기득권의 횡포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성, 성적 소수자 같은 이들은 대표적으로 의무를 강요당하고 억압받는 이들로 조명됩니다. 이들은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가부장적 사회제도에 짓눌린 이들을 돕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도움 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진영 간의 갈등 속에서 교회의 자리 찾기

 

미국의 경우에는 보수주의자요 공화당 지지자들이 낙태를 반대하는 편에 서 있고,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사형제도 반대쪽에 서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 신자라고 해도 각자 진영의 관점에서 상대 진영의 주장을 깨뜨리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먼저 보수주의자들은 낙태되는 태아의 생명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나 국제 사회에서 힘의 논리에 희생당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권리에는 무관심합니다. 내 가정, 내 국가는 중요하지만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내치는 것이지요.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억압받는 이들을 옹호하면서 아무 책임 없이 희생되는 태아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무 저항할 힘이 없는 태아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자가당착의 모순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영 간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서로가 상대를 주저앉힐 때까지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소모적인 논쟁이 그 결과로 나타납니다. 교회가 낙태를 반대하면 보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형을 반대하면 진보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일관된 윤리와 태도

 

이런 가운데 버나딘 추기경의 ‘솔기없는 옷’은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현대의 윤리 문제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살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느 진영에 속하든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상기시키고, 그 공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두 지혜를 모으자고 초대하는 것이지요.

 

버나딘 추기경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첫 회칙 『구원의 교황』을 비롯한 교도권의 여러 문헌을 언급하면서 지적한 현대의 근본문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기술의 문제였습니다. “생명의 탄생부터 쇠퇴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기술은 돌봄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동시에 생명의 신성함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포담대학교 개넌 강연 중에서, 1983년 12월 6일) 인간의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어떻게 도덕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지 물어야 하고, 그 대답으로서 일관된 생명 윤리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중심에 놓으면 정치적으로 어떤 진영에 속하느냐에 관계없이 함께 논의하고 해법을 찾을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버나딘 추기경의 ‘솔기없는 옷’은 자궁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전 과정에서 일관된 삶의 윤리를 확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생명 수호에 대한 사회의 태도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처럼 모든 태어날 권리가 민법에 의해 보호되고 시민적 합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책임은 태어나는 순간에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 중 가장 약한 사람들의 생명권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노인과 젊은이, 굶주린 사람과 노숙자, 불법 이민자와 고용된 사람 등 힘없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지원하는 데에도 똑같이 가시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질에 대한 자세는 세금 정책, 고용 창출, 복지 정책, 영양 및 급식 프로그램, 건강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입장으로 이어집니다.”

 

 

솔기없는 옷과 친교

 

어느덧 우리 교회 내에서 사회교리나 사회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덧없는 일처럼 치부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셨지요? 여러 공동체에서 ‘사회’라는 말은 친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거론하자마자 양쪽 진영논리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기 때문입니다. 그런 속에서 ‘솔기없는 옷’이 담고 있는 일관된 윤리의 태도를 주목하는 것이 참된 친교로 나아가는데 있어 의미있는 일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생명 수호의 태도와 실천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는가 - 여기에 지혜와 뜻을 모으는 것이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친교의 공동체에 마땅한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월간빛, 2023년 7월호,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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