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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계교회 안에서의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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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6 ㅣ No.274

세계교회 안에서의 한국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참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속성을 모두 지닌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참 그리스도 교회로서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하는 가톨릭 교회와 여타 지역의 가톨릭 교회들은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현금 세계교회 안에서 약동적 교회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상은 어떠한가?

 

하나의 지역교회로서 한국교회의 교회적 위상을 올바로 정립하기 위하여 하나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계의 수다한 지역교회들과 맺는 관계를 구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성서에서 증언되는 초기 교회안에서의 단수 교회와 복수 지역교회들 간의 관계가 어떠한 경위를 통하여 현재의 로마중심적인 획일적 상하관계로 변모되기에 이르렀는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 초기 교회 안에서의 지역교회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로마 제국 치하에서의 박해기간 동안 여러 지역에 산재하는 소규모의 지역교회들로서 존재하였다. 이 시기에 ‘교회’의 일차적 의미는 바로 이러한 지역교회들이었다. 이들이 혹독한 위협과 시련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희망으로 생활하는 하나의 그리스도 교회를 구현하고 있었다.

 

성령강림은 교회의 탄생시간과 그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성령강림을 통하여 예루살렘에서 여러 민족이 모인 가운데 여러 언어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상이한 은사(恩賜)가 모든 신도들에게 각각 베풀어진 것이다(사도 2장). 그래서 성령강림과 함께 태동되기 시작한 교회는 유다, 갈릴래아, 사마리아, 갈라티엔, 마케도니아, 아시아, 이탈리아 등 여러 지방들이나 예루살렘, 고린토, 필립비, 에페소, 안티오키아 그리고 로마교회 등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어 지역교회들로서 구현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는 여러 대륙과 나라, 도시와 지방에 산재된 다수의 지역교회들 외부에서 따로 존재하는 세계적 기관으로서 하나의 교회를 찾을 수 없었다. 초기 교회 안에서 중앙집권적 제국교회의 면모는 발견되지 않는다. 지역교회들은 하나의 거대한 기관의 본부로부터 분리된 일개 관구(管區)로서가 아니라 본연의 의미의 ‘교회’들이었다. 이들 지역교회들 안에서 교회를 교회이게 하는 요소, 이를테면 복음선포, 주 그리스도의 성찬거행을 위시한 성사집행, 그리고 인간을 위한 봉사직 수행 등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교회들은 자체적으로 하나의 온전한 교회이면서도 폐쇄상태에서 자족하지 않고 이웃 지역교회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이 친교를 이룩할 수 있는 일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5). 개별 지역교회들은 교회의 전체 본질을 포괄하는 하나의 전체성이면서도 ‘친교’의 고리를 통해서 다른 지역교회들을 향하여 개방되어 있었다. 지역교회들의 단일성은 공존적 상호 삼투(?透)에 입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역교회들을 유대시키는 일치의 고리가 단일 형식성(形式性)이나 획일성(劃一性)의 성격을 지니지는 않았다. 교회의 일치는 여기서 다양성을 전제하고 있었다. 지역교회들은 각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공동체로서 하나의 기본구조를 보존하는 가운데에서도 사고와 언어, 전통과 표현형식, 그리고 조직면에서 상호 구별되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다(1고린 12,12-13; 갈라 2,11-16). 하지만 상이한 지역교회들 간에 개재하는 다양성 속에서도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녔다.

 

초기 교회 안에서 2세기에 걸쳐 여러 지역교회에 속한 신자들은 모두가 상호 ‘형제’와 ‘자매’들이라고 호칭하였다. 초기 교회의 형제자매성은 종말론적 성령강림 체험에 정초하고 있었다. 성령체험은 종말시에 약속된 하느님 자녀성의 체험을 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로마 8,14-16; 갈라 4,5-7). 이러한 호칭은 제자들을 지배하기 보다 오히려 섬겼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른 관행이었다.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 23,8이하; 마르 10,42-45 참조).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성은 그들을 형제로 만드는 아버지의 첫 아들이자 온 인류의 맏형인 예수 그리스도에 정초하고 있다(로마 8,29). 그래서 초기의 개별 지역교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형제 공동체’라고 불렀던 것이다. 형제 자매들로 모인 하느님의 가정으로서의 지역 교회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고 하느님의 같은 자녀들인 다른 지역교회들의 형제들을 위해 눈과 마음을 열고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곤경 중에 서로 도우며, 다른 교회들로부터 좋은 것을 배우고, 자신을 흔쾌히 나누며 살았다(사도 2,14-46;로마 12,10; 1고린 12,25; 갈라 5,13; 에페 4,2; 야고 5,15; 1베드 5,5; 1요한 1,7 참조). 요컨대, 형제적 평등성과 우애가 전체 지역교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었으며 전체 교회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2. 현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지역교회

 

교회의 역사적 상황은 313년 이래 급변한다. 교회는 콘스탄티노 황제의 전환정책에 의해 3세기에 걸친 지하생활을 벗어나 로마 제국의 공인된 종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마 황제의 신자화 정책은 교회로 하여금 소집단의 공동체 규모를 탈피하여 대규모의 종교집단화뿐만 아니라 제국종교로 변모토록 하였다. 교회의 활동범위는 점차적으로 로마 제국의 정치-지리적 영역과 부합하게 되었고, 자신의 목표 달성과 과제 수행을 위하여 로마 제국의 정치적 구조와 조직을 이어받았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로마 제국의 세력이 쇠약해진 반면에, 교회의 현세적 위치는 강화된다.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교회가 그 지역에서의 정치적 관리와 통치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자신을 로마 제국의 후계자라고 자처하기에 이른다. 로마 주교는 로마 황제들이 지녔던 대사제(大司祭, Summus Pontifex) 칭호를 부여받으며 황제의 서열에 오르게 되고, 다른 지역교회 주교들도 국가 공무직의 높은 서열에 참여하여 국가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변화 속에서 교회는 다른 어떠한 현세적 세력에 의해서도 제약받지 않는 전권을 소유한 제국교회(帝國敎會)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 지역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가 창설하였으며, 창설 초기부터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로마 주교는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알고 있었다. 즉, 로마 주교는 교회의 기초이고 형제들을 신앙 안에서 강화시켜야 할 최고 목자의 후계자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사도적 신앙고백이 생겨난 교회로서, 전례활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던 교회로서, 여러 지역교회들 간에 발발한 분쟁을 해소하는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쟁점에 대해 판정을 내린 교회로서 전체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 지역교회의 교회적이고 정치적인 특별 위치에 입각하여 교회는 제국의 척도(尺度)와 질서(秩序)에 따라 로마교회를 구심점으로 하는 단일성 내지 일치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사도적 좌(使徒的 座, Sedes Apostolica)라는 명칭은 본시 열두 사도 중 한분의 사도에 의하여 창설되었거나 한분의 사도 서한의 수신자였거나 하는 모든 지역교회에 속하는 명칭이었다. 그런데 이 칭호가 전체 교회 안에서의 로마교회의 특별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오로지 로마 교회와 이 교회 주교를 위한 전유물이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로마 교황은 모든 권세의 원천이자 으뜸이며 근원이라는 주장이 대두된다.

 

이렇게 교회는 소규모 지역공동체들로부터 로마 교황에 의해 통치되는 제국적 교회가 되어 모든 신앙생활의 규범들 역시 획일적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교회가 상관하고 규정하던 모든 영역, 즉 관리와 법령 공포, 언어와 전례 등의 영역에서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가능한 최대의 단일성을 이룩하려는 작업이 착수되었다. 교회법전, 성청문헌, 교황교서 등은 중앙집권적으로 형성된 교회의 단일성을 드러내는 표지들이다. 획일성으로서의 교회의 단일성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황의 보편적 수위관할권에 대한 교의(敎義) 안에, 그리고 교황이 입법자와 스승과 목자의 기능으로서 교리를 선포할 시의 무류성(無謬性)에 대한 진술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조적 획일화 과정이 중세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행되어 왔다. 교회의 중앙집권적 획일화 조치에 반발하여 로마교회로부터 이탈한 지역교회들이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를 위시한 여러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로서 존재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머물고자 한 지역교회들은 모두 하나의 로마교회 안으로 흡수됨으로써 이전에 지녔던 독립적 고유성은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로마교회에 종속된 교회로서 분봉왕국적(分封王國的) 관구교회(管區敎會)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3. 보편적 세계교회 안에서의 한국교회

 

우리는 현금 인간 생활 전 영역에서 급격하고도 철저한 변화가 일 것으로 예견되는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교계 안에서 종주권을 행사하던 구미교회가 쇠퇴기미를 나타내고 새로운 ‘제3교회’의 출현이 예견되는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젊은 지역교회로서의 한국교회가 자신의 교회적 위상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 ‘교회쇄신’의 취지를 교회내외에 분명히 천명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쇄신의 원리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생명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규정하면서 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교회 자체로서나, 인간적이며 현세적 제도로서나, 언제나 필요한 이 혁신을 계속하도록 호출한다고 가르친 바 있다. 한국교회의 위상은 이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했던 초기 교회의 지역교회 수준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로마교회보다 더 로마적’이라는 세평까지 듣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로마교회와의 유대를 획일적 형태의 교회생활로 드러내는 데 열성적 지역교회임을 지적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형의 제국적 교회 구조 안에서 로마에 종속된 분봉왕국(分封王國)의 성격을 띤 지역교회로서 충실하게 머물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도(敎導)와 성화(聖火), 그리고 통치(統治) 차원의 교회 직무이자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로마교회에 획일적 형태로 예속되어 있다. 한국교회 교구장(敎區長)들의 임명권도 로마교황의 전권에 속한다.

 

현금의 한국교회는 소-로마교회의 면모를 교구별로 드러낸다. 교구장들은 로마 교황이 전체 교회에 대해 행사하는 전권을 자신의 교구에 대해 행사한다. 교구장으로부터 위임된 직무를 수행하는 본당 신부들이 자신의 본당 안에서 소(小)-교구장처럼 처신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교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성원에 속하는 일반 신도들은 성직자들에 의하여 교도되고 성화되며, 통치되는 낮은 백성의 위치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본질상 ‘하나’(unitas)이면서 ‘보편적’(catholica)이고, 만민을 위한 교회요 만민들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여러 지역교회들의 관계 -여러 신자들의 관계 역시- 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 따라 실현되었던 초기 교회의 형제적 평등성과 우애의 정신에 따라 새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교회가 수다한 지역 교회들의 친교로써만 구성되기에, 교회의 단일성은 다수성과 다양성의 소인을 본질적으로 포함하게 마련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보편적이고자 하고, 다양한 문화적 정신적 자산을 간직하며 생활하는 인간들을 억압치 않고 자유롭게 해방시키고자 한다면, 지역교회들의 상호관계 -그리고 개별 신자들의 상호 관계 역시- 는 형제적 다양성의 관계로써 존속할 수 밖에 없다.

 

동 아시아의 장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한국의 교회는 하나의 온전한 지역교회로서 통전적(統全的) 고유성과 보편적 개방성을 지니기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여하한 다른 지역교회들과 지배-종속적 상하관계가 아니라 형제적 평등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신실하게 기울여야 하리라고 믿는다. 그래야 한국교회는 오늘날 교회내외로부터 강렬하게 요청되는 내적 성숙을 이룩하여 민족의 복음화를 실현하고 세계교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립교회의 면모를 만방에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심상태 신부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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