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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둔 부모에게 - 안전이 행복을 앞지르고 성장을 저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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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0 ㅣ No.120

[청소년을 둔 부모에게] 안전이 행복을 앞지르고 성장을 저지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학부모의 마음은 대단히 불안하다. 공부 문제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걱정은 폭력이다. 혹시 내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신문지상에는 교사의 아이에 대한 폭력부터 학생들 간의 폭력, 심지어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까지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여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성폭력부터 안전문제에 이르기까지 학부모의 마음은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있다.

사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공부가 부족하고 출세를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행복하게 유년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워낙 취업이 어려우니 진로 문제를 생각하면 걱정이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가 치러야 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상처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그저 안전하기라도 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나라 학교는 아이들을 인권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체벌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군대식 얼차려도 심심찮다. 두발이나 옷차림에서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나를 알려면 낯선 세계와 만나라

양식 있는 학부모들이 보기에 이건 아이들을 전혀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굳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을 거론하지 않아도 행복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거기에 맞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일반학교를 보낸 학부모도 이런데 대안학교는 오죽하겠는가? 대부분의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목공을 하건 록밴드를 하건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그것을 이웃과 더불어 같이 잘 풀어가는 삶, 그것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이런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만남이다. 나를 제대로 알려면 나의 거울이 되어줄 다른 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낯선 곳에 가서 오히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이의 조언, 내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 그의 삶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능력을 키워준다. 그래서 나를 알려면 반드시 낯선 이, 세계와의 만남이 필요한 것이다.

행복은 바로 이 낯선 것과의 만남과 자기 자신의 세계로의 침잠 사이의 균형에서 온다. 너무 나만을 위해서 살아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도 좋은 삶은 아니다.

살아가는 데 돈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돈에만 집착하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여가도 필요하다. 노동하는 만큼 쉬어야 하고, 한 곳에 정착해 있는 만큼 여행도 다녀야 한다. 친숙하고 익숙한 것이 삶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만큼 낯설고 모르는 것이 가끔은 삶에 방문을 해야 한다.

지나치게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서구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높다고 하지 않던가? 속세와 종교적인 것의 경계, 혼자와 함께의 경계, 돈과 의미의 경계, 욕망과 가치의 경계, 그 경계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책임질 것인가?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키우는 것과 낯선 이를 통해 세계와 만나고 그 세계를 확장하는 성장을 기대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 점차 이 행복을 대체하는 다른 갈망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안전이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교육에 바라는 최상의 요구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는 가급적 사고가 안 나는 방향으로 교육을 운용하려고 한다. 당연히 만남, 특히 낯선 것과의 만남은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교사들도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바로 교장이나 학부모로부터 “당신이 책임질 것인가?” 하는 윽박지름이 나온다.

낯선 것을 최대한 피하려다 보니 학생들의 친구관계가 점점 더 동일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만나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고만고만하고 경험하는 것도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것이 없다.

특히 서울의 강남에서는 이 경향이 아주 심화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끼리 친구가 된다. 그러다 보니 낯선 것을 만나고 소통하려는 용기나 동기가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강남뿐만 아니다. 지방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자기 친구 가운데 서울대를 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현격히 떨어진다. 대안학교 출신들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으로 분리되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워낙 어려서부터 끼리끼리 놀다 보니 아이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너무 수준이 낮아서 같이하지 못하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비슷한 감수성과 언어가 아니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세계를 확장하고 일상에서 경험하라

성장이란 세계의 확장이다. 그 확장되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나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능력이 곧 성장이며 균형 잡힌 삶이고 행복의 근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안전에 대한 강박 때문에 아이들의 삶에서 다르고 낯선 것을 본의 아니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만남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낯선 것과의 만남은 여행이나 체험학습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내 삶의 터전, 바로 일상에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것이다.

체험학습이 많아질수록, 삶에서는 오히려 낯섦을 만나기가 힘들어진다면 세계는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고착되거나 퇴행해 버리고 만다.

* 엄기호 미카엘 - 연세대학교 문화학과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아시아 태평양 부회장을 역임하고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등의 저서가 있다.

[경향잡지, 2011년 11월호, 엄기호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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