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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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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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03 ㅣ No.1324

[신앙 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의 사랑

 


사랑의 말들, 사랑의 변주

 

사랑은 종류가 다양하고, 그 의미도 다양합니다. 사랑은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안에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형제와 자매의 관계에도, 친구와의 관계에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도 사랑이 존재합니다. 사랑은 그 관계들 안에서 발생하는 생각, 감정, 의지, 행동들의 총합입니다.

 

사랑은 숱한 말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돌봄이고, 친밀함이고, 우정이며, 동지애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주체, 사랑의 대상, 사랑의 방식에 따라 사랑은 다채롭게 변주됩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맞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고 정당화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다 건강한 사랑, 진정한 사랑일 수는 없습니다. 맹목적인 사랑, 일방적인 사랑, 폭력적인 사랑도 존재합니다. 사랑도 식별이 필요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가장 자주 사용되면서도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매우 많기”(‘사랑의 기쁨’ 89항) 때문입니다.

 

명사(名詞)는 동사화(動詞化)시켜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는 ‘사랑한다’라는 동사로 대체시켜서 이해하면 그 구체적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때의 ‘사랑한다’라는 동사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너에게 감정적으로 끌린다, 너와 함께하고 싶다,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등등의 숱한 의미로 변주될 것입니다. 동사화시켜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으로 드러난 의미는 형용사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형용사(形容詞)는 특성을 표현합니다. 예컨대, 앞의 설명에서 우리는 사랑이 때때로 감정적이고, 욕망적이며, 자기희생적인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

 

숱한 사랑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랑의 하나는 부부의 사랑, 혼인의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친밀한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핏줄의 사랑이 아니라, 낯선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공동체를 이루고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부의 사랑은 남녀의 사랑입니다. 물리적이고 육체적으로 서로 다른 생존 조건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혼인의 사랑은 다채롭고 깊지만 늘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혼인의 사랑을, 사랑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유명한 구절들(1코린 13,4-7)에 기대어 풀이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다른 말들로 설명될 때 그 의미가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신앙은 하느님을 닮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특성 가운데서 먼저 인내의 덕성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신 분입니다(탈출 34,6; 민수 14,1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숱한 배신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고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자비와 인내는 하느님 권능의 표징입니다.

 

부부의 삶은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이러한 품성을 닮아가려는 여정입니다. 부부는 무엇보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품성”(‘사랑의 기쁨’ 91항)을 지녀야 합니다. 분노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서로 반응하면 가정은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심을 키우지 않으면, 화를 내며 반응한 것에 대하여 늘 변명을 하게 될 것입니다”(92항).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변명은 슬픈 일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충동과 분노와 공격과 변명의 반복과 악순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물론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다른 이가 우리를 계속 학대해도 놔두거나, 육체적 폭력을 용인하거나, 다른 이가 우리를 이용해도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92항).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오래 견디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인내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마음과 태도를 지니는 일이며 상대방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생각과 기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우리가 이상적 관계나 완벽한 사람을 기대할 때에, 또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모든 자기 방식대로 되기를 기대할 때에 문제가 발생”(92항)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언제나 깊은 연민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다른 이가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행동할지라도 그를 이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92항).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활발하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뜻합니다(93항 참조).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에게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93항). ‘사랑하다’는 동사는 ‘선행을 하다’는 동사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94항). 따라서 사랑의 특성(형용사)은 친절한 것입니다. 친절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은 그 모든 풍성한 결실을 보여 줄 수 있으며 내어 주는 행복, 곧 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내주고 봉사하는 기쁨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고귀함과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94항).

 

진정한 부부의 사랑은 서로에게 친절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부부들은 흔히 연애 시절과 신혼 초기에는 서로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한 방식으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 지속될수록 점점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무례하고 심지어 막 대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어쩌면 부부 생활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는 훈련이 더 필요합니다. 가장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는 말은 핑계이며 거짓입니다. 가깝고 친밀하기에 더욱 예의와 친절함이 요청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친절하고 화를 내며 무례하게 하는 행동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잘못 이해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외적 형식으로서의 친절뿐만 아니라 내적 태도로서의 예의와 헌신을 포함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3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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