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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성령과 기: 구약성서 안에서의 성령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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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195

성령과 기(氣) : 구약성서 안에서의 성령의 체험

 

 

성령이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영(靈)’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루아흐’에서 유래하는데, 그 성이 여성이어서 여성신학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부성(父性)만 가지신 분이 아니라 모성(母性)도 가지고 계시다는 거다.(여성적이기도 하신 하느님!) 루아흐는 도합 378번 쓰였지만 매번 같은 의미로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루아흐가 가진 여러 가지 뜻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신적인 힘’ 혹은 ‘하느님의 영’이라는 관점인데, 이는 스스로를 활동적으로 드러내는 그 어떤 힘이라 하겠다.

 

 

(1) ‘루아흐’라는 단어의 역사

 

루아흐는 다의어(多義語)로써 그 의미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루아흐는 첫째로 바람이 부는 것, 바람· 폭풍과 같은 자연의 힘으로, 둘째로는 입김·호흡·생명력과 같은 인간 안에서의 힘으로, 셋째로는 영·하느님의 영과 같은 하느님의 힘으로 사용되었다. 루아흐의 단어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힘’ 혹은 ‘생명력’이라는 근본적 의미가 ‘바람’과 ‘호흡’이라는 두 개념의 영역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생명력으로서의 루아흐는 ‘인간 안에서의 생명력’ 혹은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나타난다.

 

고대의 동방은 움직이는 공기인 ‘바람’을 신적인 힘으로, 그 자체를 신성(神性)으로 이해하였다. 예를 들어, 셈족 사람들은 바람을 ‘폭풍과 뇌우의 신’의 대기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였고, 수메르 사람들은 ‘공기의 주(主)’를 ‘바람과 대기의 신’으로 공경하였다. 그리고 바빌론 사람들은 바람을 신들의 통지요 기별로 이해했고, 에집트 사람들은 ‘공기의 신’을 공경하였다. 이 공기의 신은 ‘네 개의 바람의 주(主)’로서 동시에 생명의 원리이고, 땅의 신과 하늘의 여신을 서로 갈라놓음으로써 첫 질서를 지우는 창조행위의 집행자이다. 그러므로 공기와 바람은 고대의 관념에 의하면 우주적인 생(生)의 표현이며,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신들의 호흡이라 할 수 있겠다.

 

루아흐의 구약성서에서 용례 중 3분의 1 이상은 ‘바람의 불어옴’ 혹은 ‘입김’과 같은 생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루아흐가 ‘바람’과 ‘호흡’과 같다는 것은 바람과 호흡으로써의 자연현상을 지시하기 보다는 바람과 구름 속에서 움직이는 ‘힘’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신(神)에 대한 표현들에서 바람과 입김은 ‘생명의 원리’로, 무엇보다도 ‘신적인 생명의 호흡’으로 이해된다. ‘야훼의 루아흐’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의 생명을 주시는 힘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힘이란 계속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람과 호흡 속에서 체험된다. 그러므로 루아흐는 대체적으로 역동적이고 강력한 어떤 것, 초인간적인 힘과 활동을 표현한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힘과 활동은 그 자체로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쉽게 감지되고 체험되며 그 작용의 드러남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라 하겠다.

 

주목할 것은 루아흐가 ‘영’적인 것 혹은 ‘비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루아흐는 ‘육(肉)’에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창세 6,3; 이사야 31,3 참조), 그렇다고 해서 이 루아흐가 ‘몸’에 적대적인 어떤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루아흐는 육체의 영활(靈活)로, 곧 육체를 살리는 생기(生氣)로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루아흐는 ‘신의 호흡’으로서 물질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명을 선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이라는 개념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루아흐는 우선 첫째로 비물질적인, 순수히 영적인 실체가 아니라, 육체는 물론이고 물질에까지도 생명을 줄 수 있는 힘이라 하겠다.

 

 

(2) 인간 안에서의 신적인 힘으로서의 ‘루아흐’

 

루아흐는 또한 구약성서에서 ‘인간 안에서의 신적인 힘’으로, 그리고 ‘신의 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 안에서 생명력으로 활동하며 인간에게 특별한 재능을 부여하고 영감을 주는 영이다. 루아흐는 인간을 위한 생명의 시여자(施輿者)이며, 인간의 육신을 살리는 원리이다. ‘인간에서의 루아흐’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것은 다음으로 쉽게 이해되겠다. 즉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힘으로 구하시고 보호하는 분이시며, 그분의 힘은 예언자들에게 능력을 주어 충실하지 못한 백성 앞에서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새롭게 선포하도록 한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인간에게 힘을 주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루아흐는 일반적으로 ‘신적인 원동력’이며(예: 판관 13,25; 에제 1,12.20), ‘망아적(忘我的)인 상태’를 야기시키고(예: 민수 11,25.29; 1사무 10,6), 예언적인, 혹은 무아적인 이야기와(예: 창세 41,38; 민수 24,2),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생기게 하며(예: 민수 27,18; 1사무 16,13), 나쁜 영으로서는 인간 안의 악령적인 것을 발생시킨다.(예: 판관 9,23; 1사무 16,14) 루아흐는 또한 인간 자신의 심리적인 활동에서, 재능에서, 윤리적인 덕에서, 고통에서, 흥분에서, 그리고 기분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의 생명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예: 판관 15,19)

 

 

(3) 거룩한 영으로서의 ‘루아흐’

 

영은 구약성서의 많은 곳에서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심지어 ‘악한 것’ 혹은 ‘나쁜 것’으로 표현된다.(예: 악한 영: 1사무 16,14-16.23; 18,10; 19,9; 거짓말의 영: 1열왕 22,21-24; 깊은 잠의 영: 이사 29,10) 음란의 영(즈가 13,2), 신적인 분노의 영(욥 4,9; 이사 4,4; 30,28; 예레 51,1) 등으로 표현된다. ‘거룩한 영’이라는 개념은 다른 개념보다 비교적 늦게, 유배 이후의 시대에 비로소 채용된다.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에 있어서 ‘거룩한 영’은 충분히 활기 있는 사실이며, 효과적이고 신적인 생명력의 총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야훼의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신앙하는 ‘성령(聖靈)’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으로부터 구별되는 영을 뜻한다.

 

[월간 빛, 2003년 2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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