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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내 삶을 흔든 작품: 내 인생을 바꿔놓은 책 제3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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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8 ㅣ No.119

[내 삶을 흔든 작품] 내 인생을 바꿔놓은 책 「제3의 물결」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예전에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교보빌딩에 붙어있던 구절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독 책 읽기를 좋아했고 나이 들어서는 책을 보아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다. 책읽기를 좋아하다 못해 이제는 20여 권의 책을 쓴 사람이 되었으니 내 인생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신혼 때 아무리 작은 집에 살아도 멀쩡한 방 하나는 내 서재로 써야 한다고 고집했고, 이사를 다닐 때마다 아내는 책 보따리 때문에 짜증을 내곤 하였다. 몇 번 큰 맘 먹고 책들을 정리했는데 결국 지금도 내 서재는 방바닥까지 책들이 쌓여 있다.

청소년기와 대학생 때는 소설책을 많이 보았다. 그레이엄 그린, 카프카 등의 작품이나 이청준 선생의 소설책이 늘 내 책가방에 들어있었다. 대학전공을 심리학으로 한 것도 심리학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는 데 심리학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군에 가기 전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유형은 소설, 심리학, 철학, 역사 등이었다. 그 뒤 공군장교로 입대하여 만 4년을 근무하였다. 복무기간이 길었지만 장교는 출퇴근을 하니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장군을 모시는 부관으로 보직이 정해졌고, 365일 24시간 늘 업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출퇴근도 없이 부대 내 숙소에서 묵었다.

다행히 내가 모시던 장군은 지덕체를 겸비한 훌륭한 리더였다.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에다 유도 · 검도 유단자, 영어 · 일어 능통자, 그리고 영국 무관을 거친 분이라 의전과 매너도 훌륭했고 인품도 좋은 분이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1차 전환점이 되었다. 인생관이 바뀐 것이다.

“존경받고 사는 것도 행복하지만 존경할 대상이 있을 때 더 행복하다.” 바로 이 관점의 전환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 있으니 아침에 출근하는 것도 기분 좋고 힘든 일을 하면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분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장군이 되기도 쉽지 않은데 부대 지휘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쌓고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비결이 뭔지 알려주시죠?” “남들도 나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겠나! 나는 그 사람들보다 독서를 조금 더 한 것밖에 없네!”


정보화를 기반으로 한 지식산업에 뛰어들다

1975년 9월 30일 전역을 하고, 그 시절 가장 인기 있던 종합무역상사에서 5년 동안 근무하였다. 주로 기획실에서 기획, 정보, 조사업무를 맡았는데 일본종합상사가 본보기였다. 당시 일본 종합상사의 정보기능은 어지간한 국가정보기관을 능가할 정도였다.

나는 1983년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정보전략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지식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시절 우리나라의 상황은 산업사회의 끝자락, 그리고 정보화사회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그 무렵 출간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나에게는 조명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정보화사회, 정보산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이 내 직업을 바꾸었고 마침내 인생 자체를 바꿔놓았다.

나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예감하고 과감하게 정보화를 기반으로 한 지식산업에 뛰어들었는데 2년 만에 퇴직금을 모두 까먹고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사업을 계속하자니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철수하자니 이미 퇴직금도 다 썼고 일부 은행차입금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나의 은인, 앨빈 토플러 박사

너무나 힘이 들었다. 신나고 화려하고 보람 있게 보낸 지난 10년은 이미 일장춘몽처럼 바뀌어있었다. 나는 정말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하였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였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85년 앨빈 토플러 박사가 최초로 방한한 것이다. 그는 약 일주일간 머물면서 강연과 방송 출연, 신문 인터뷰 등을 하였는데 그의 발언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제3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조만간 민주화된다. 정보독점이나 정보통제가 불가능한 사회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군인들이 정치를 할 때라서 강연도 조심스럽고 언론환경이 좋지 않은 때였는데도 세계적 석학의 언행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앨빈 토플러가 한바탕 전국 강연을 마치고 떠난 뒤 우리 연구소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정보화, 정보문화, 정보산업, 정보전략, 정보 시스템…. 지금까지 신문광고도 하고 열심히 홍보를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던 연구소에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나는 강의 요청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강의를 하면서 어느 정도 명성이 생기자 방송 출연이 늘어나고 마침내 방송 진행자로 발탁이 되어 10여 년간 방송인으로도 활동하였다.

앨빈 토플러 박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을 읽고 감명을 받아 새로운 직업에 뛰어들었고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극적으로 나를 구출해 주었으니 그는 나의 은인이다. 물론 그 뒤 앨빈 토플러 박사의 책은 나오는 대로 숙독하였고 인터뷰 기사 하나 놓치지 않고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보화 물결 속에는 시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시간의 문제, 곧 스피드와 타이밍, 시간가치의 변화 등을 연구해서 ‘시(時)테크’라는 이름으로 논문도 쓰고 책도 내게 되었다.


인생 대장정에서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준 책

정보화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양날개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보관리이고 또 하나는 시간관리이다. 정보화사회에서 정보는 물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는 핵심자원인데, 이를 획득하고 가공해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정보는 시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스피드를 확보하는 기술, 타이밍을 맞추는 판단, 시간가치를 높이는 방법 등 시간관리는 산업사회와 전혀 다른 관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는 ‘시테크’ 강의를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였고 1992년 정식으로 책을 냈다. 이 책은 짧은 기간에 약 30만 권이 팔렸고 우리나라 시간문화와 기업의 스피드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제3의 물결」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의 거시적 전환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동시에 정보화의 물결이 왜 일어나느냐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 아주 미시적인 사례까지 제시하고 있다. 나의 인생 대장정에서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준 책,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았을 터이지만 나에게는 그냥 책이 아니라 인생항해를 바꾸어놓은 키이다. 아직도 내 서재에는 이미 색깔이 변해버린 「제3의 물결」 초판 한 권이 역사의 증인처럼 꽂혀있다. 나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인 셈이다.

* 윤은기 스테파노 - ‘시(時)테크’의 창시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과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時테크」, 「시테크 & 휴테크」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지금 국가의 공무원 교육을 총책임지고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으로 일한다.

[경향잡지, 2012년 8월호, 윤은기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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