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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성령과 기: 신약성서에서의 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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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197

성령과 기(氣) : 신약성서에서의 영 체험(靈體驗)

 

 

‘프네우마(pneuma)’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구약성서적·유태적 전통으로부터 취해진 개념이요 관념이다. 그러나 이제 신약성서 안에서 프네우마는 구약성서 안에서의 ‘루아흐(ruah)’와 같은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 즉 프네우마는 더 이상 루아흐처럼 현저하게 입김, 호흡, 부는 바람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 혹은 ‘주님의 영’의 의미에서, 또한 분명하게 ‘거룩한 영(聖靈)’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 ‘그 아들의 영’으로 사용된다.

 

영의 파견은 이제 아들의 파견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후에 “삼위일체 안에서의 셋째 위격”이라는, 성령의 교의적인 정의를 위한 토대가 된다. 하지만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안에서의 성령의 기반이 되는 프네우마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서의 영”이라는 관념의 프네우마도 신약성서 안에서 지속되고 있다.

 

하느님의 힘으로서의 성령은 무엇보다도 신약성서 안에서 생명의 원리로, 상세하게는 영혼과 몸을 향하는 인간의 초인간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원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영 체험의 유대교적 뿌리들

 

프네우마 또한 신약성서 안에서 구약성서 안에서의 루아흐처럼 ‘인간의 프네우마’로서 생명의 숨결 혹은 호흡(마태 27,50 ; 야고 2,26 ; 묵시 11,11 ; 13,15), 죽음을 견디어내는 존재방식 혹은 생명력(1베드 3,18 ; 4,6 ; 1디모 3,16)으로 되풀이되어 표현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로마 8,8.11.14 ; 1고린 2,11.14 ; 3,16 등), ‘주님의 영’(1고린 2,16 ; 2고린 3,17) 혹은 ‘성령’(마태 1,18 ; 루가 1,35 ; 3,16 ; 사도 1,16 ; 로마 9,1)으로서의 영에 대한 신약성서적 표현 또한 우선적으로 구약성서적인 영 체험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프네우마 개념에 있어서 구약성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그 개념이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인 전통 내에서의 변화된 문맥 안에서 사용되었으며 또 유태내적인 전통 옆에서 독립적인 그리스도교적인 영향의 역사를 경험하였던 70인역 성서를 거쳐 매개된 유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영’(신약성서 안에서의 프네우마)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구약성서 안에서의 루아흐라는 단어의 역사를 고찰해야 한다.

 

 

원시(原始) 그리스도교적인 영 체험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의 하느님의 영이시다.”1) 프네우마 단어는 유대교적 영 체험에 상응하여 아주 빈번히 ‘하느님의 영’, ‘주님의 영’ 혹은 ‘성령’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주님은 영이시다.”(2고린 3,17), “하느님은 영이시다.”(요한 4,24)라는 성서말씀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하느님의 영’, ‘주님의 영’ 혹은 ‘성령’이라는 표현이 영에 대한 유대인들의 체험에서 유래하는 반면에, ‘예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마르 1,12 ; 필립 1,19 ; 1고린 2,16 ; 1베드 1,11) 혹은 ‘그 아들의 영’(갈라 4,6)이라는 표현은 확실히 원시교회의 영 체험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프네우마는 루아흐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해서 약속된 구세주로서 그 제자들에 고백되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복음에 뿌리를 박고 있는 개념이다. 이제 세상에 대한 영의 전달은 강생,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그리스도 사건에 불가분적으로 연결된다고 하겠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교회에서의 원시그리스도교적인 영 체험은 신적인 힘 혹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체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르코와 마태오는 무엇보다도 프네우마를 특별한 행위에 대한 하느님의 힘으로서 철두철미 구약성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신약성서는 무엇보다도 신적인 힘 혹은 생명력으로서의 영 관념을 구약성서에서 받아들여 이를 계속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적용하는데, 이 힘이 바로 ‘성령’ 혹은 ‘영’으로 불려지는 것이다. “삼위일체 안에서의 세 번째 위격”은 4세기의 공의회에서 나온 비교적 늦은 교회의 신조인데, 이렇게 영은 삼위일체적인 위격으로 이해되기 이전에 신적인 힘 혹은 생명력인 하느님의 영으로 체험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저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는 다른 무엇인 신적인 셋째 위격으로서의 프네우마 보다 오히려 신적인 요소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힘을 더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네우마 개념은 이러한 관련 하에서 아들(聖子)과 나란한 하나의 독립적이고 신학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적인 차원을 의미하는데, 이 차원이 아들의 하느님으로부터의 유래를 보증한다.”2)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성령은 - 그 본질을 탁월하게 결정하는 자신의 유래에 따르면 -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그리고 거룩하게 하는 힘이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진리 안에 되살리는 힘이다. 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세상 안에, 또한 세상의 영으로 들어와 계신다.”3)

 

다음 호에서는 “교회의 기원으로서의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살펴보겠는데,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 성령은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 교회의 원천은 성령강림 사건 안에 있다.

-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설립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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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Schlier, Herkunft, Ankunft und Wirkungen des Heiligen Geistes im Neuen Testament, 129.

2) F. D  nzl, Pneuma, 61.

3) H. Schlier, Herkunft, Ankunft und Wirkungen des Heiligen Geistes im Neuen Testament, 120.

 

[월간 빛, 2003년 4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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