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06 ㅣ No.1322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나자렛의 성가정

 

결혼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점점 혼인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혼인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하고, 건강한 혼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혼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인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사’(1코린 7,7)입니다”(‘사랑의 기쁨’ 61항).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의미를 하느님의 본디 계획을 되살리는 계시의 충만함으로 선포하셨습니다(마태 19,3 참조)”(62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속에서 혼인과 가정생활이 내포하는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징표를 자주 보여주십니다(64항 참조).

 

특히, “예수님께서 손수 일하시며 생계를 유지하시고, 기도를 드리시며, 당신 백성의 신앙 전통을 따르시고, 선조들의 신앙으로 교육을 받으시어 이를 하느님 나라의 신비 안에서 완성하실 때까지 30년의 긴 세월을”(65항) 의미하는 나자렛 성가정의 신비는 가정생활의 아름다움을 핵심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에서 실천된 사랑과 신의의 계약은 모든 가정을 형성하는 원칙을 밝혀주며, 삶과 역사 안에서 겪는 우여곡절에 잘 대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자렛의 성가정을 통하여 가정 교육이 얼마나 기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인지 이해하게 되고 사회 질서에서 가정의 역할이 얼마나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66항).

 

 

혼인은 성사이며 성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혼인과 가정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실 뿐만 아니라 혼인을 교회를 위한 당신 사랑의 성사적 표징으로 들어 올리셨습니다(마태 19,1-12; 마르 10,1-12; 에페 5,21-32 참조)”(71항). 혼인은 단순히 사회적 관습이나 의미 없는 예식, 또는 단순히 약속의 외적 표징이 아니라, 부부의 성화와 구원을 위해 주어진 은총의 성사입니다(72항).

 

혼인은 두 당사자가 이루는 성사입니다.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혼인을 하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부부는 상호 합의를 표명하고 이를 육체적 상호 증여로 나타내며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들의 합의와 육체적 결합은 부부가 한 몸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의 도구가 됩니다”(75항). “인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도 성사로 거룩해지는 성적 결합은 부부가 은총의 삶으로 성장하는 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혼인의 신비’입니다”(74항).

 

혼인은 은총의 성사이기에 혼인은 당연히 성소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나타내는 표징인 부부 사랑을 실천하라는 특별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72항)입니다. 혼인 역시 성소 식별의 과정이 요청됩니다.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겠다는 결심은 성소 식별의 결실이어야”(72항)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식별의 과정을 거치고 혼인성사의 당사자가 된 “부부는 약속, 창의, 인내, 일상의 노력으로 하느님 선물에 응답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부부는 언제나 그들의 결합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청하여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새로운 모든 상황에서 성령의 은총을 느끼도록 하여야 합니다”(74항).

 

 

가정의 소명 – 자녀 출산, 자녀 교육, 신앙 공동체 형성

 

혼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은 공동체적 소명을 지닙니다. 가정은 인간 공동체의 가장 기초 단위이며 신앙 공동체의 핵심 토대이기도 합니다. 가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고 양육됩니다. 자녀 출산은 생명이 생명을 전달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조금 딱딱한 선언 같지만, ‘사랑의 기쁨’은 자녀 출산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과정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이를 거부하면 사랑 자체가 훼손됩니다. 처음부터 사랑은 그 자신 안에 갇혀 있으려는 모든 충동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부부 사랑은 그 자체를 넘어서게 하는 풍요성에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부 행위는 이러한 의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80항). 자녀 출산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일이며, 생명 전달을 통하여 인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80항).

 

자녀 교육은 부모의 ‘가장 중대한 의무’이며 ‘제1차적인 권리’입니다. 교회는 자녀 교육의 중심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국가와 교회의 임무는 부모의 역할을 돕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는 부모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보조하는 것입니다”(84항). “교회는 부모들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소중히 여기고 혼인성사를 받았기에 자기 자녀 교육의 참된 봉사자가 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85항).

 

“부모는 자녀 교육으로 교회를 건설하고, 이로써 하느님께서 주신 성소를 받아들입니다”(85항). 사람은 가정 안에서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용서,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한 하느님 경배를 배웁니다. 가정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신앙과 사랑은 교회의 삶에서 변치 않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86, 88항 참조). 가정은 신앙과 삶의 핵심적인 자리입니다.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과 태도

 

오늘날 우리는 압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전하는 주체의 태도와 방법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때로 메시지의 내용보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갖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것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혼인과 가정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은 이러한 사랑과 온유의 메시지로 힘을 얻고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메마르고 생명력이 없는 교리 옹호에 불과할 뿐입니다”(59항).

 

그저 강압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강요하기만 한다면,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공허한 선포에 그칠 위험이 있습니다. 혼인과 가정의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자비와 온유의 태도로 교회의 가르침을 선포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나 상처 입은 가정들과 마주할 때, 사목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명확히 설명하여야 하지만, 여러 복잡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겪는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79항).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혼인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혼인이 성사혼이라는 은총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안에는 숱한 자연혼이 있으며 다른 종교의 전통 혼인도 많습니다. 타종교의 혼인과 자연혼이 성사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폄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혼과 타종교 혼인 안에도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고 “말씀의 씨앗이 현존”할 수도 있습니다(77항 참조). 가정의 선을 지향하는, 교회 밖의 모든 혼인들에 대해 존경의 태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2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13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