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회] 교구 시노드, 그 후: 한국 교회의 교구 시노드 어떻게 이루어졌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2-05 ㅣ No.295

[경향 돋보기] 교구 시노드, 그 후 ① 한국 교회의 교구 시노드 어떻게 이루어졌나?

 

 

한국 교회에서는 부산교구가 1982년 가장 먼저 교구 시노드를 개최한 이후 대구대교구에서 1997년 11월 교구 시노드 개회 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노드를 열었고, 인천교구에서 1999년 6월에 시노드 개막 총회를 거행하였으며, 곧이어 1999년 7일에 수원교구에서 시노드 개막 미사와 아울러 1차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서울대교구에서 2000년에, 청주교구에서 2008년에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2000년 대희년도 10년을 지나 새로운 10년을 다시 시작하는 지금, 각 교구에서 시노드를 개최한 배경과 다룬 내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호에는 다루어진 내용을 주제별로 살펴보며 교구 시노드 이후의 모습을 점검하여, 2011년 한국 교회의 복음화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부산교구

 

 

정리 편집부

 

“하느님의 말씀을 이땅에 새롭게 육화시키며 그 말씀에서 힘을 얻어 우리 자신의 쇄신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교구민 전체의 열망을 모아 시작한 것이 우리 교구의 교구 공의회입니다”(“교구 공의회 제1총회 회의록”에서 이갑수 주교).

 

“교구 공의회는 우리가 교회 본연의 임무인 복음 선교에 따르는 과제들을 충실히 또 올바로 실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교구 공의회 의안은 앞으로 우리 교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지표와 사목방안을 제시하여 주는 기본 지침이 될 것입니다”(“제1차 교구 공의회 문서”에서 이갑수 주교).

 

부산교구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 동안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교구 시노드(부산교구는 공의회라는 표현을 썼다.)를 개최하였다. 교구 설정 25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교구 공의회는 개최 2년 전인 1979년 9월 1일, 공의회 사무국을 설치하고, 1980년 7월부터는 교구 주보를 이용하여 신자 계몽을 하였으며, 4차의 총회와 65회의 분과회의 등을 거치면서 10개의 의안을 작성 통과시켰다.

 

부산교구 교구 공의회에서 나눈 10개의 의안은 미사 전례, 고해성사, 본당공동체, 성소계발, 주일학교, 그리스도교 신도교육, 학교종교교육, 가정공동체,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행복한 가정/산아조절, 사회사목(아동 · 청소년복지, 노인복지, 노동 사목, 교도 사목) 등이다. 각 의안에는 대부분 적절한 제언을 달았다.

 

당시 부산교구장 이갑수 주교는, “교구 공의회는 결코 하나의 행사에 그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교구 공의회의 노력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며 또 그 문서의 정신에 따라서 내일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가꾸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 문서 안에서 내일을 위한 우리의 올바른 모습을 찾고 실천하기를 요청합니다.”(“제1차 교구 공의회 문서”)라고 했다.

 

당시 부산교구 교구 공의회의 실무 책임자였던 서공석 신부의 평가(1996년 2월 15일, 인천교구 시노드 주비위원 대상 강의)에 따르면, “공의회로 인한 좋은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으며, 공의회의 후속 장치가 없었다는 점 또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교구 공의회를 통해 신자들의 많은 계몽이 이루어졌으며 긍정적인 의미에서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커다란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대구대교구

 

 

임석환 스테파노 대구대교구 신부. 시노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대구대교구가 1차 시노드(1997-1999년)를 폐막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고, 그 후속 시노드로서 2차 시노드를 준비한 지도 벌써 4년째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구대교구의 시노드는 ‘시노드’라는 명칭만 없었을 뿐 그 시작은 벌써 2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미 ‘교구 사목회의’라는 이름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살려 교구 사목의 시대적 현안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논의한 바가 있습니다. 대구대교구의 시노드는 어쩌면 그때의 준비과정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긴 여정을 걸어오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교구 시노드는 한마디로 교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쇄신과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구대교구에서 1차 시노드를 끝내고 2차 시노드를 계획한 이후, 많은 분이 시노드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으로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1차 시노드를 만들어온 과정과 그 이후의 사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굳이 2차 시노드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문제 삼는 분도 계셨고, 2차 시노드는 결국 교구 설정 100주년의 행사치레가 아니냐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결국 그러한 분들 의견의 핵심은 과연 ‘시노드가 제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시노드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교회 진단과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 수단

 

많은 신자가 공감하듯이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앞으로는 몰라도 현재를 볼 때 그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데 시노드 만한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최근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를 더욱 강화하시면서 각 교구들의 시노드 개최를 강조하셨고, 이에 따라 전 세계의 많은 교구들이 시노드를 교구 사목 발전의 중심 체계로 삼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노드가 오늘날 교회 발전을 위한 주요 방법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시노드를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그 수행과정을 점검하면서 계속하여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대구대교구의 2차 시노드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계속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피츠버그 교구는 지금까지 스무 차례의 시노드를 거행하였는데,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아 다음 시노드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지난 1997년부터 2년 동안 개최한 대구대교구 1차 시노드에서 “시노드 마지막 총회를 마치며 시노드 대의원들이 교구장님께 드리는 글”(1999년 7월 18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번 시노드를 마치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교구 시노드를 처음 개최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노드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바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시노드에서 다루지 못한 많은 분야가 있고 그에 대하여도 시노드에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차 교구 시노드는 긴 세월 동안의 준비가 있었으며, 준비과정에서도 시노드를 거치지 않고도 의견이 수렴되면 먼저 교구 사목에 반영하였던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노드의 합의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임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앞으로는 이번 시노드의 경험을 살려 더 훌륭한 시노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시노드를 마치며 제2차 시노드를 가까운 장래에 개최할 것을 청원드리는 바입니다.”

 

사실 1차 시노드 이후 대구대교구의 획기적인 변화를 든다면, 본당의 소공동체화를 위하여 본당 구조를 개편한 것과 교구를 대리구 체제로 개편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서 위로부터의 주도적인 노력은 있었지만, 아래로부터의 이해와 노력이 병행되지 못한 측면 때문에 많은 난제들을 남겨두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2차 시노드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많은 분이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1차 시노드의 기반 위에서 지금까지의 수행 상황들을 놓고 더욱 심도 있게 발전적인 논의를 해나간다면, 앞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지난 시노드의 경험을 살려 더 훌륭한 시노드를 열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대구대교구 100주년과 교구 2차 시노드

 

2011년은 대구대교구가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구는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고 내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2차 시노드가 교구 설정 100주년과 맞물려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행사치레로 맞이하는 100주년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2차 시노드의 역할과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1차 시노드의 결과들을 잘 평가해 보고, 또 새로운 현실을 잘 진단하면서 부족하고 미비한 점을 잘 파악하여 필요한 길을 모색함으로써, 한층 더 성숙한 교구의 모습으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2차 시노드를 준비하면서 본당별로 질의서와 토론활동을 가져보니,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지난 1차 시노드의 내용이 그대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2차 시노드는 1차 시노드의 연장선상에서 논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본회의 과정에서 또한 1차 시노드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더불어 그 수행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구대교구 2차 시노드에서는 1차 시노드를 통하여 제기된 일곱 가지 의제 가운데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주제들을 “새 시대, 새 복음화”라는 지표 아래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주제의 내용은 교회 안에서의 젊은이 사목에 대한 숙고와 더불어 예비신자와 새 신자, 그리고 냉담 신자와 관련한 새 시대의 선교 방안, 본당 차원에서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등입니다. 현재 구체적인 의안 작성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새 교구장 착좌식 이후 올 4월 즈음에 제2차 교구 시노드 개막식을 가질 계획입니다.

 

모든 교구민이 함께하는 시노드

 

지금까지 교구 2차 시노드 준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신자들의 인식의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분이 시노드 준비에 동참해 주셨고, 본당별 시노드 준비위원회의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성직자만의, 소수 준비위원만의 시노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노드를 준비해 본 사람들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시노드를 이루어야 할 당위성은 교구장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결국 교구민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므로, 대구대교구 2차 시노드 성공의 비결은 내용의 중요성과 함께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반드시 모든 교구민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노드를 바라보면서 능동적으로 함께 참여해 나아가야 함을 재인식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이에 합당한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천교구

 

 

김효철 그레고리오 인천교구 복음화사목국 부장이며, 평신도 선교사이다.

 

인천교구는 교회의 성장에만 주력했던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좀 더 차별화된 복음화 정책을 수립하고, 교회 비전의 공유를 통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로 거듭나고자 3년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9년부터 2000년 대희년까지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본회의에서는 800여 명의 대의원을 선발하여 ‘전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선교, 신자교육, 여성 사목, 가정 사목, 청소년 사목, 청년 사목, 노동 사목, 농어촌 · 환경 사목, 전문 사목, 교회운영, 사회사목, 통일 사목’의 16개 사목영역별로 월 1회 이상 회의를 갖고, 10회의 중앙위원회와 7회의 총회를 개최하였다. 각 주제별로 인천교구의 현실을 진단하고 실천해야 할 점과 개선점을 제안하였으며, 이 결과들을 종합한 최종문서를 2000년 11월 19일 시노드 폐막 미사에서 반포하였다.

 

시노드를 통해 인천교구는 1961년 설립 이래 양적인 성장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신자 개개인의 신앙과 열정, 교구 공동체의 활력이 과거에 비해 오히려 약화되어 가고 있음과 점점 중요성이 커져가는 사회복음화를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후 인천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 실현을 목표로, 영적 성장을 위한 새 복음화(선교), 대 사회적 성숙을 위한 사회 복음화, 신앙교육과 내적 쇄신을 위한 재복음화를 기본 목표로 삼고 지난 10년의 여정을 걸어왔다.

 

인천교구 시노드 이후 10년

 

시노드 이후 10년, 여러 측면에서 그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폭넓게 보면 교구 시노드 이후 신설된 사회사목국의 경우 환경 · 노동 · 경찰 · 생명사랑 · 이주노동 등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고, 이와 연계한 다양한 분야에서 그 성과도 남다르다. 복음화사목국의 경우에도 재복음화와 관련하여 교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소공동체 봉사자(구역 · 반장) 양성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교구 시노드를 마쳤을 당시 교구에서 실시하는 구역 · 반장 월례교육의 출석율은 44%였는데, 2009년 말에는 79%로 올라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개년 계획을 세워 체계적인 교육이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미래사목연구소와 연계하여 지금도 지속적인 만남과 나눔을 하고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구역 · 반장) 양성교육의 문제점과 현실을 진단하고 이에 맞는 연구와 계획수립, 그리고 실행을 거쳐 이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개년 계획을 세워놓고 단계별로 준비를 진행 중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교육 교재를 만들 때 각 본당 구역 · 반 대표들이 함께 모여 교재시안을 직접 검토하고, 과목별 나눔을 통해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여 난이도를 조정하며, 28명으로 구성된 강사진(사제)의 의견을 수렴하여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새 복음화(선교)부에서는 지구별 선교분과위원 모임을 정례화하여 본당과 지구, 지구와 교구가 ‘복음화’라는 비전을 공유하여 유기적으로 활동을 모색해 나가면서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가정 사목’ 분야에 좋은 결실을 맺고 있으며, 청소년 사목의 경우에도 유소년 · 청소년 · 청년 사목에 각각 전담 사제가 있어 이들이 유기적 관계 안에서 사목활동을 펼치면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나아가 교구 설정 50주년(2011년)을 통해 외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내적 성장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6월 보좌주교가 탄생하면서 인천교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시적인 성과보다 그 안에 담긴 보이지 않는 보물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한다.

 

시노드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프레임’은 쉽게 이야기하면 창문이나 액자의 틀, 또는 안경테를 뜻한다.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프레임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이는 만큼의 세상과 교회를 볼 뿐이다.

 

곧 우리는 세상과 교회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 · 삭제 · 일반화된 교회와 세상을 보는 것이다. 거꾸로 프레임을 잘 만들어내면 우리 교회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프레임이 우리가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틀이라 한다면,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교회를 향한 마인드 셋(Mind Set), 세상에 대한 은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세상과 교회를 바라볼 때 문제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성과를 중심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많은 이가 “시노드 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시노드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지. 차라리 그 돈으로 불우이웃 돕기나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야말로 부정적 프레임으로 바라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교회와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닐까? 밥 한 술에 배불러야 하고,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이라면,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언제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으로 고민을 나눠본 적이 있는가?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우리들 가운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시노드를 실시한 교구들의 최종문서를 펼치면 그 안에는 우리들이 흘린 땀으로 만든 보물지도가 있다. 이 보물지도야말로 우리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갈망하는 기쁨의 언어, 희망의 메시지가 그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단언하건데 가시적인 성과와 결과물도 중요하겠지만, 시노드 개최와 참여하는 과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며 길을 만들어가는 여정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아가 비가시적이지만 전염성이 강한 행복, 감사, 기쁨, 희망, 긍정적 정서와 같은 삶의 에너지가 신앙 안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는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보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줌으로써 상실의 문화에서 회복의 문화로,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일구어가자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땀 흘려 그려놓은 이 보물지도가 누구 손으로 얼마만큼 자주 펼쳐져 읽고 탐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종문서에 실린 글자 하나하나의 실천적 방안에 대한 자구적 연구와 실행에 앞서 전체적 맥락을 짚어가며 비록 한 걸음씩 더디게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가 중지(衆智)를 모아 함께 가는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염원해 본다.

 

이와 관련하여 엉뚱한 발상과 제안을 내놓는다면 이러하다.

 

첫째, 시노드를 개최한 모든 교구의 최종문서를 비롯해 개최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현재 상황 등에 대해 적어도 모든 교구의 부제들에게는 교육되었으면 한다. 그들이 사제가 되어 일선 사목 현장에 나갔을 때를 생각하면 미래교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아무도 모르는 현대 사회 안에서 한국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자 다시 한 번, 두 번째 한국 교회 사목회의를 개최하였으면 한다.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목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교구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1984년 이후 26년 동안 한국 교회 창설 200주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문과 103위 시성식, 마더 데레사 방문, 교구 시노드 등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을 오감을 통해 직접 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지난 200년 동안 변화한 모습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시대가 빨리 변한다고 서두르지 말자. 눈송이의 힘을 믿는다. 추운 겨울 산속에 가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모습으로 서있다.

 

한 송이 한 송이의 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눈송이가 쌓여 나무를 부러뜨릴 정도의 힘이 되듯, 시노드를 통해 교회 공동체 구성원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라는 눈송이가 하나둘씩 쌓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렇게 눈송이를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나무 위에 내려앉도록 노력하자. 세상과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수원교구

 

 

김길민 크리스토포로 수원교구 신부. 지금은 광주성당 주임신부이다.

 

2000년과 2001년! 이 시기에 수원교구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있었다. 1996년에 시작된 제1차 시노두스를 마무리하며 교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시노두스가 폐막된 지 10년이 되어간다. 시노두스 이후 수원교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시점에서 시노두스가 진행된 과정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부응하는 교구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 내에 일련의 시노두스들이 개최되었고 이는 교회의 쇄신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런 행렬에 발맞추어 수원교구도 2000년 대희년을 잘 준비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부응하는 교구로 거듭나며, 교구민 전체가 하나가 되어 희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시노두스를 개최하였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2대 교구장인 김남수 주교가 1997년에 개최를 선포하였고, 사제평의회는 그 명칭을 ‘교구 시노두스’로 정하였다. 시노두스와 시노드, 대의원회의 등 여러 명칭이 있지만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개념은 잃게 되기에 번역하지 않은 원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조금은 낯설어도 교회의 언어는 영어보다는 라틴어가 아니던가?

 

3대 교구장이 된 최덕기 주교는 시노두스 개최를 거듭 선포하며 2-3가지만의 주제를 정하되 현실 판단에 머물지 말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준비하도록 요청하였다. 시노두스가 단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례적으로 열리길 희망하여 이번에는 ‘제1차 시노두스’로 명명하였다. 이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제2차, 제3차 교구 시노두스가 개최되리라 희망한다.

 

4단계로 나눈 전체 일정과 조직

 

교구가 생기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만, 이미 있었던 국내외 교구의 자료를 검토하고,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조금씩 그 모양을 갖추어갔다. 전체적인 일정을 전준비기, 준비기, 본회의기, 실천기인 4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의 기간과 할 일을 정하였다. 중앙기구로 중앙위원회 · 상임위원회 · 신학위원회 · 각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무국을 두어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였다.

 

전준비기는 기획과 의제 선정을 하는 시기로서 일반 원칙을 정하고, 논의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를 위해 교구 내 모든 본당과 단체, 기관에 설문지를 배포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각 지구 사제단의 의견을 모았다. 들어온 의견을 정리하여 가장 요청이 많았던 ‘구역 · 반 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라는 두 개의 주제를 선정하였고 이에 따른 전문 분과가 만들어졌다. 시노두스 전체를 위한 규약도 제정되었다.

 

두 번째 단계인 준비기는 의안을 작성하는 시기이다. 정해진 두 주제에 대해 전문위원들이 다양하게 의견을 모으며 내용을 정리하였다. 수많은 의견들이 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되었다. 동시에 다양한 방법으로 시노두스와 의안에 대한 준비위원 교육을 실시하여 ‘함께하는 길’을 의식하도록 하였다.

 

교구 차원의 주제별 찬반 토론도 하고, 준비위원들의 활동에 힘입어 각 본당이나 단체, 수도회 등에서 신자들의 의견을 모았다. 사제 연수와 전교수녀 연수에서 모의 시노두스를 하기도 하고, 전문분과에서 본당을 방문하여 의견을 청취하기도 하며, 일시적으로 만든 잡지인 “멍석”지를 통하여 구역 · 반 모임에서 의견을 종합하였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를 전문분과가 종합하고 평가하여 ‘준비 의안집’을 만들었다. 또한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일정과 대의원 선정 기준, 본회의 규정안 등을 의결하였다.

 

세 번째 단계인 본회의기에는 1차 본회의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각 본당과 단체를 대표하는 900여 명의 대의원들이 임명되었다. 13개 지구와 사도직 단체들 모임, 교구 내 수도회들, 신학교, 특수사목 사제들 등 17개의 지구 단위 모임에서 먼저 구역 · 반 공동체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이러한 논의 결과가 집약되고 2차 본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과 표결이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지구 단위에서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주제로 하여 논의를 하였고, 3차 본회의에서는 그 내용들을 표결에 붙였다. 각 지구 단위에서 이루어진 가칭 ‘지구 시노두스’에서 지구 내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대의원들이 함께 토의하고 결의를 하면서 드러난, 교구를 사랑하고 교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지한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본회의에서는 각 안건을 작게 나누어서 찬반으로 표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떤 것은 압도적으로 찬성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안건은 부결이 되기도 하였다. 대의원들의 의견을 받아본 교구장 주교는 검토한 뒤 2001년 10월 11일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시노두스 폐막 미사를 봉헌하고 최종문헌을 반포하였다.

 

네 번째 단계인 실천기는 사실상 교구청에서 준비한 시행 세칙의 발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시노두스를 통하여 변화되기 시작한 교구는 최종문헌을 기초로 하여 그 내용을 세분화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만든 시행 세칙을 실천하면서 더 큰 변화의 바람 가운데 자신을 맡기기 시작하였다.

 

복음화의 꽃을 피우는 불씨로

 

최종문헌과 시행세칙의 방대한 내용에 대해 이 짧은 지면에서 말하기는 어렵다.

 

제1차 수원교구 시노두스의 특징 중에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시노두스답게’ 하려고 노력한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함께 길을 가는 것!’ 몇 사람의 의견만이 아니라 교구민 전체, 현실적으로는 최대한 많은 교구민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여 본당 단위, 지구 단위의 시노두스를 하였다. 법적으로 시노두스라 말할 수는 없지만, 교구민의 다양한 생각을 모으고자 만들어진 방법이다.

 

사실 지구 단위에서 책임 있는 봉사자들이 공식적으로 모여 논의를 한다는 자체가 새로운 일이었다. 그동안 많은 경우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교회의 일이 결정되지 않았던가! 각 지구나 단체의 열기는 대단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교회의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시노두스는 처음부터 선택과 집중으로 두 개의 주제만을 정하면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함께하려고 하였다.

 

시노두스가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지금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시노두스 이전과 이후는 크게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수원교구는 교구장 대리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4대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는 2010-2012년의 사목 지침을 ‘교회와 청소년’으로 정하여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교구 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면서 교구의 미래 비전을 찾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하여 많은 도전과 희망을 안고 있는 수원교구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복음화의 꽃을 피우는 불씨가 되는 데에는 제1차 시노두스의 정신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박선용 요셉 신부. 전 서울대교구 시노드 사무국장. 지금 교구 법원장을 맡고 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에 걸쳐 진행된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그 뒤 일 년간의 후속 실행 단계까지 합치면 5년에 걸쳐 서울대교구의 전 본당 신자들과 대다수의 사제, 수도자, 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대장정이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1999년 12월 사제평의회에서 정진석 교구장이 시노드 개최 의지를 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음 해인 2000년 1월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시노드를 선포하고, 당시 보좌주교이던 강우일 주교를 중심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노드 진행 절차와 규범을 정한 “시노드 지침서”를 마련하고 교회 내외 현황조사인 “기초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시노드는 서울대교구에서 네 번째 열린 시노드였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처음 열리는 것으로 성직자뿐 아니라 수도자, 일반 신자 곧 하느님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첫 시노드였다. 따라서 공의회 정신의 구현을 가장 큰 목적이자 방법으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시노드에서 다룰 의제는 교구민 전체의 의견을 들어 정하기로 하고 “현재 우리 교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묻는 ‘의제 선정 과정’에 들어갔다. 그 과정의 핵심은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견 수렴”이었는데, 2001년 당시 214개 본당 가운데 186개 본당이 참여하였고 제안된 의견 수는 거의 37만 건에 이르렀다.

 

그 밖에 많은 수의 성직자, 수도자까지 참여하여 방대한 분량의 의견이 모아졌고 이를 분류, 정리한 결과 아래 표와 같은 7가지 의제가 선정되었다.

 

2002년 한 해는 ‘의안 작성 과정’으로 의안에 담을 내용을 위해 교구민의 원의를 듣는 자리를 광범위하게 마련하였다. 우선 본당마다 두 가지씩의 의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토론 마당’이 열렸는데, 여기에는 주제당 몇 가지씩의 질문을 담은 “토론 자료”가 활용되었다. 이 밖에 각종 설문조사와 공개 토론회, 세미나가 수차례 진행되었고, 여기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하여 ‘의안준비위원단’이 ‘의안 초안’을 작성하였다. ‘의안 초안’은 다시 검토, 수정을 거쳐 ‘의안’으로 만들어지고 교구장의 승인을 거쳐 2003년 1월 26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1차 전체회의(본회의 개막식)에 상정되었다.

 

‘본회의 단계’인 제1차 전체회의부터는 ‘의안위원회’가 활동하였는데, ‘의안위원회’에는 각 의제별로 100여 명의 대의원과 10여명의 전문위원이 참여하였다. 이후 2003년 9월 28일의 폐막식까지 8개월간 진행된 본회의 단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개막식 및 제1차 전체회의(의안 상정) → 의안 토의 → 제2차 전체회의(의안 토의 후 보고) → 건의안 작성 → 제3차 전체회의(최종건의안 투표) → 제4차 전체회의(최종건의안 제출) → 최종문헌 준비 → 폐막식(시노드 문헌 반포)

 

시노드의 폐막 이후에는 일 년간의 ‘후속 단계’가 있었는데, 이것은 시노드의 전 과정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교구의 각 부서와 단체에서 최종문헌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이상과 같이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대대적인 의견 수렴과 설문조사, 본당신자 교육 등 질적, 양적으로 많은 노력을 쏟고 인력과 재정이 대거 투입된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의제도 일곱 가지나 되어 교회와 연관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시노드 개최의 목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교구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고 공의회에서 제시한 교회의 모습으로 정화, 쇄신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가 사제직 소명에 응답한다는 정신으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시노드의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시노드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의제 선정부터 의안 작성까지 비록 힘들더라도 전 과정을 가능한 한 많은 교구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전 교구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방법상의 어려움보다도 일부 사제들의 부정적인 또는 방관자적인 태도가 더 큰 어려움이었다. 이는 시노드를 선포하기에 앞서 사제들 사이에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며 관 주도의 정책이 갖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오히려 신자들의 열성과 참여도, 기대가 사제들보다 훨씬 컸다고 본다.

 

폐막 이후에 실행 과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교회의 속성상 교구장의 의지 없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시노드를 통해서 평시에는 할 수 없었던 많은 조사와 연구, 진단 작업들이 이루어졌고 이제라도 그 결과를 가능한 한 활용하고 실천해서 신자들의 수고와 바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청주교구

 

 

신성근 야고보 청주교구 신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이다.

 

교구의 반세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청주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2008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교구의 반세기를 돌아보고 교구의 현실을 진단하며,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고자 시노드를 추진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데 공감하였다.

 

교회는 내적으로 선교의 둔화와 냉담자의 증가, 청소년들의 교회 이탈과 가정의 세속화 등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교회 외적으로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 풍조와 가정해체, 그리고 고령화와 탈종교화 등 사회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사회의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사명에 어떻게 투신할 것인지에 대하여 ‘함께하는’ 시노드 개최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요 절박한 결단이었다.

 

의견 수렴과 현장의 소리를 듣는 ‘열린 마당’

 

청주교구는 지방 교구라는 여건상 시노드 개최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노드 초기부터 교구 공동체는 ‘시노드 한마음 기도’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시노드 과정에서 신자들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자, 먼저 2005년에 전 신자 의견 수렴서를 통해 1만 9천여 명의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2006년에는 총 스무 차례에 걸쳐 4천여 명이 참여한 ‘열린 마당’을 개최하였다.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실시된 의견 수렴과 현장의 소리를 듣는 열린 마당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얻게 된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었다.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선교’, ‘청소년’, ‘가정’을 시노드 의제로 정하고 2007년 10월 1일 시노드 본회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총 네 차례에 걸친 시노드 전체 회의와 8차에 걸친 각 의안위원회 분과위원회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 기간에 352명의 대의원들은 교구의 미래를 위하여 진지한 토의를 하였으며, 2008년 3월 15일 50개 항의 최종 건의안을 교구장에게 상정하였다.

 

선교, 청소년, 가정을 의제로 정하고

 

(1) 복음화를 위한 선교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복음선포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유보할 수 없는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임을 자각하고 교회의 선교사명을 재인식하였다. 따라서 교구의 모든 구성원은 선교사명에 대한 재인식과 예비신자 교육, 신자 재교육 등 신앙 성숙을 위한 교육 전반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교구 신자들의 갈망과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시노드 과정에서 나타난 선교와 관련된 많은 문제점을 검토하고, 본당이나 교구에서 마련한 교육에 많은 이가 참석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하여 전 신자가 선교의 역군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2) 교회의 희망인 청소년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에서 ‘선교’ 다음으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교회는 청소년들을 ‘희망’으로 보는 한편, ‘교회의 미래에 대한 커다란 도전’으로 보기도 한다. 교회가 청소년을 희망으로 보는 이유는 교회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청소년의 문제는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교구 시노드에서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사회뿐 아니라, 교회도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였다.

 

그리고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단순히 구호로만 외쳐서는 안 되고, 청소년들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존재하는 사회와 교회의 중요한 주체요 동반자라는 인식을 확고히 한 것이다. 이는 사회와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진정으로 청소년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할 때, 청소년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3) 교회의 세포인 가정

 

개인의 행복,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은 부부공동체와 가정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은 바로 교회의 세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공동체를 중시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오늘 이 사랑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부부와 부모가 그 숭고한 임무를 다하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진지하게 바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사회심리, 정치 등의 생활 조건이 가정에 가볍지 않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 감소와 고령화로 생기는 문제들도 단순하게 염려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위기의식을 같이하였다. 그리고 시노드는 이 위기의식이 신앙인들의 가정 복음화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신자들을 독려하였다.

 

후속 작업을 담당하는 복음화연구소, 청소년국, 가정사목국

 

청주교구는 시노드가 끝난 뒤 시노드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후속 작업을 작고 가능한 것에서부터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시노드의 내용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후속 작업을 담당할 ‘복음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 연구소에서는 일차적으로 교구장의 사목 지침에 시노드의 실천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단기, 중기, 장기 계획으로 나누어 2020년도까지 그 진행 과정과 실천표를 작성하였고, 이를 ‘선교사목국’이 중심이 되어 실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음화에 필요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교구, 본당, 개인이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청소년을 위해서는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한가운데에 청소년 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이 청소년 센터에 ‘청소년국’을 독립하여 청소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실천될 것이다.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는 ‘가정사목국’을 신설하여 기존 가정 관련 프로그램을 정비 정리하였고, 혼인과 가정, 부부 그리고 생명과 관련된 각종 사목 계획을 세워 교구에서 본당 그리고 각 가정에 이르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교회와 대 사회에 가정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기획 실천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1월호]



4,05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