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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이야기54: 고딕 속의 고전주의 - 부르주의 생테티엔 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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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19 ㅣ No.802

[성당 이야기] (54) 고딕 속의 고전주의


부르주의 생테티엔 주교좌성당(Cathedrale Saint-Etienne de Bourges)

 

 

지난 회에 샤르트르 대성당 이야기를 마치며 랭스와 아미앵을 언급했는데, 그에 앞서 만나봐야 할 성당이 있습니다. 샤르트르 대성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으나, 그와는 다른 모습을 지닌 부르주의 생테티엔 주교좌성당입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부르주 대성당은 라옹 대성당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부르주 대성당의 규모를 보면 전체 길이가 109미터, 5랑식 네이브와 아일의 폭은 42미터, 천장고는 37.2미터로 샤르트르의 규모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규모와 함께 이스트엔드의 5랑식 방사형 소성당들을 보면 부르주가 라옹보다는 파리 노트르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케이드, 트리포리움, 클리어스토리의 3단 네이브월은 고딕의 특징대로 플라잉버트레스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샤르트르의 플라잉버트레스가 아치와 네이브월의 접합점에서 발생하는 벤딩 모멘트를 상쇄시키지 못해서 두껍고 무겁게 축조된 반면, 부르주는 그 힘을 보강하여 샤르트르보다 한 수 위의 가벼운 플라잉버트레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가 역동적 ‘고딕성’을 추구하는 파리 노트르담보다 온건적 ‘고전성’을 보여주는 라옹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보는 것은 성당 내부의 구조 때문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과 기둥의 체계가 6분 볼트에 더블 베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전성기 고딕 성당의 구조에 역행하는 것으로, 라옹 대성당의 6분 볼트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부르주의 네이브월 전체 높이는 샤르트르와 거의 같지만, 트리포리움과 클리어스토리의 높이는 라옹과 비슷합니다. 이는 부르주의 아케이드(21미터)가 과도하게 높다는 것인데, 이중 아일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외측 아일의 내벽이 3단으로 구성되면서,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네이브까지 도달시키기 위해서 내측 아일이 높게 만들어졌고, 그것을 아케이드가 감당하면서 높이가 높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아케이드의 기둥은 한 겹 너머 있는 플라잉버트레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두꺼워졌고, 실내 조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높은 아케이드에 더블 베이의 두꺼운 기둥 체계는 수평적 이동성을 떨어뜨려 수직화에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이는 부르주가 여전히 고전적 수평 질서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낮은 높이의 트리포리움(5.8미터)과 클리어스토리(10.4미터) 역시 성당이 수평으로 띠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성당의 수직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이런 부조화는 라옹의 고전성이 차분하고 안정적인 것에 반해, 부르주는 고전적이지만 과시적 분위기를 띠는 점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라옹의 고전성을 이어받은 부르주는, 라옹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거침없는 고딕의 질주를 견제하며 고전과 고딕의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긴장감은 중간 규모의 수아송 대성당과 르망 대성당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고딕이 발달한 북동부와 로마네스크가 발달한 남서부 사이에서 갖는 지리적 배경과 무관치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다름을 밀쳐내지 않고 품어 안았기에 이러한 아름다움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2021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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