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3-22.....성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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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22 ㅣ No.2015

성주간 화요일        

이사야 49,1-6           요한 13,21-33.36-38

2016. 3. 22. 이태원

주제 : 우리는 악에 언제 빠지는가?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선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소리를 듣고서 화를 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누구가가 나를 향하여 악하다고 평가하는 소리를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두 말할 여유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악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악한 일을 한 것은 없는지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만일...’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로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 복음에서 만난 유다는 혼자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스승의 삶에 시비를 건 사람이었습니다.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는 향유를 그저 한 순간에 낭비해도 그렇게 낭비한 사람을 옹호한 스승의 삶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드러내는 일과 삶의 태도에 대하여 우리가 세세하게 흥분할 일은 없지만, 과연 유다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움직였을지, 상상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의 삶은 그 유다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선한 길을 가던 사람이 악한 길로 빠지는 것은 언제이겠습니까? 악한 길을 가던 사람이 삶을 돌이켜 선한 길로 오게 될 계기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포도주에 빵을 적셔서 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으로 유다가 악의 길로 간 것처럼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셔서 유다가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될까요? 다시 말해서, 유다가 악에 빠진 일에 개인의 책임은 없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셔서 된 일이라고 여겨도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에는 인과관계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드러나는 일이야 그렇게 볼 수는 있어도,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하는 이런 행동과 과정을 인간과 하느님의 사이의 일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올바른 길을 간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펼쳐지는 것을 막아도 좋을까요?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베드로사도의 자신감도 전하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세상의 일을 대하는 자신감으로 하느님의 일에도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힘겨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질문은 합니다만, 대답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신앙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겪는 삶의 끝도 하느님께 연결된다는 믿음은 필요할 것입니다.

 

성주간의 화요일에, 우리의 삶이 어디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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