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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삶의 지혜23: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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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9 ㅣ No.152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23)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사람”


[본문]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십자성호를 긋고, 모두가 『아멘』하고 대답하고,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고, 성전을 지어 올린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준이요, 이것이야말로 식별의 대헌장입니다.

 

그대, 원하는 것 다 가지십시오. 그러나 이것 하나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들이 그대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다른 것을 다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언정,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그대는 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남을 사랑하는 이는 율법을 성취했다』고 하고, 또 『사랑은 율법의 성취』라고 하였습니다(로마 13, 8. 10).

 

저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장사꾼이 찾는 진주가 바로 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 46). 그렇습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값진 진주입니다. 이것 없이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득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 이 사랑 하나만 지닌다면,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요한 서간 강해」 5장 7절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


[해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교부들 가운데 우뚝 솟은 큰 산이다. 길고 오랜 방황 끝에 뒤늦게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그는,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교회를 위해 바쳤다.

 

북아프리카 히포의 사제요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40여 년의 사목 기간 동안 민중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요한 서간 강해」는 가장 아름다운 교부 문헌으로 손꼽힌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요한의 말씀보다 더 큰 사랑의 찬가를 성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7장 4절), 요한의 첫째 편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다.

 

요한의 편지가 우리 가슴에 사랑의 불을 놓았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는 그 사랑의 불길에 끼얹는 기름이다(머리말). 아우구스티누스 주교가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서 행한 이 「설교식 성서 풀이」(講解, tractatus)는 어떻게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기도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415년경 부활 축제 시기에 신자들에게 열 차례에 걸쳐 요한의 첫째 편지를 풀이해 주었다. 전례 도중에 제법 길게 행해진 이 강해는 열 권으로 엮어져 그 필사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노라면, 민중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숨결마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듯하다. 신구약성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성서의 핵심을 꿰뚫을 때면, 청중들은 종종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랑은 처음과 마지막 말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몸은 비록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영으로는 이미 교회 바깥에 있다. 사랑이 없는 그곳에서는 심지어 성사마저도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세례론」 1권 9장 12절).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대가 행동으로써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모두가 그대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한들 그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름만 있지 실상은 없는데 말입니다』(「요한 서간 강해」 5장 12절).

 

『의사라고 불리지만 치료할 줄 모르는 의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수꾼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긴 밤을 잠만 자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은 삶과 행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서 그들이 불리는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4장 4절).

 

그렇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십자성호를 긋고, 『아멘』하며 기도하고, 꼬박꼬박 성당에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참으로 그리스도인이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함만 지닌 채,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여 사랑을 하찮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더 이상 주님의 제자라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은 하느님을 알진대』(1요한 4, 7 참조),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과연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 뵐 수 있을까? 『너 얼마나 사랑했느냐』고 물어 오실 그분 앞에 초라한 사랑의 빈털터리로 서게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은 다 사라질지라도 사랑은 영원히 남고, 사랑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원칙이요 기준임을 꿰뚫어 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사랑의 삶에 초대하고 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7장 8절).

 

[가톨릭신문, 2005년 9월 4일, 최원오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 주교회의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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