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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까리따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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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3 ㅣ No.39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까리따스수녀회 (상)

 

 

1959년 8월 15일 광주 북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 첫 수련자 착복식.

 

 

창설과 한국진출

 

"선교는 까리따스회의 사명이며 나의 생명입니다"

 

까리따스수녀회의 창설자인 안토니오 가볼리(1888∼1972) 신부의 삶과 소명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가볼리 신부는 예수 성심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겼고, 이를 위해 1937년 일본 미야사끼에 '까리따스수녀회'를 설립했다.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인 가볼리 신부는 1926년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당시 일본은 1차 세계대전과 세계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는 점점 피폐해져갔으며, 사회 전체가 극도의 긴장과 궁핍에 시달렸다. 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는 했지만 거의 소멸된 상태였고, 불교에서 파생된 일본 특유의 여러 교파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야사끼의 본당에 발령을 받은 가볼리 신부는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을 보면서 복음선포보다는 굶주림과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 시급함을 깨달았다. 1932년 미야사끼에 최초의 양로원 수용시설인 '구호원'을 설립하고, 신앙심 깊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애자회'를 만들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 당시 장상이었던 빈첸시오 치맛티(가경자) 신부로부터 "애덕사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수녀회를 설립하라"는 권고를 받고, 1937년 8월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미야사끼에 까리따스수녀회를 설립하게 된다.

 

한 수도회에 속한 수도자가 새 수도회를 세우는 것은 힘든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가볼리 신부는 주님의 뜻에 따르는 철저한 순명정신으로 '애덕(까리따스)'을 실천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둥지를 틀게 됐다.

 

이렇게 설립된 까리따스수녀회는 고아원, 양로원, 유아원 등을 운영하며, 전쟁귀환자, 전쟁고아, 노인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이어 1951년 본부와 수련원을 미야사끼에서 도쿄로 옮기고 본격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가볼리 신부는 "온 세상을 두루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 7)는 말씀에 따라 회원들이 예수 성심의 도구로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직에 헌신하기를 열망했다. 이 정신은 오늘날까지 까리따스수녀회 영성의 큰 줄기를 이룬다.

 

무엇보다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하려는 가볼리 신부의 뜨거운 선교열의는 세상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는 선종할 때까지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힘쓰면서 1956년 한국에 선교수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남미의 볼리비아, 브라질로 선교수녀를 파견하며 선교활동에 힘썼다. 그 이후에도 회원들은 창설자의 뜻을 이어받아 페루, 이탈리아, 독일, 파푸아뉴기니, 호주, 미국, 필리핀 등지에서 선교활동과 교포사목을 펼치며 예수 성심의 사도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국진출

 

1956년, 까리따스수녀회는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광주대교구장이었던 현 하롤드 헨리 대주교에게 선교수녀 파견을 청했고, 현대주교가 승낙함으로써 수녀회의 한국 진출이 이뤄지게 됐다.

 

표 알로이시아, 고 비르짓다, 최 알비나 한국인 수녀 3명이 광주 남동성당에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전남 나주수녀원에서 최초의 지원자를 받음으로써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1959년 광주 학동에 본원과 수련원을 세운데 이어 61년 8월, 광주 북동성당에서 현 대주교 주례로 첫서원 미사를 봉헌하고, 한국진출 5년만에 7명의 서원자를 냈다.

 

현재 까리따스 회원들은 12개 교구의 71개본당(2002년 1월 현재)과 미국, 호주 등지에서 본당활동과 교포사목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1986년에는 한국관구에서 처음으로 파푸아뉴기니에 선교수녀를 파견했다. 현재 한국관구에는 499명의 서원수녀와 50여명의 예비수녀들이 수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1월 27일, 박경희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까리따스수녀회 (중)

 

 

선교수녀들이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되기전 거행된 파견식에서 윤공희 대주교로부터 십자가를 받고 있다.

 

 

영성

 

까리따스수녀회의 영성은 예수성심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까리따스(Caritas)를 실천하는 삶,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사랑에 바탕을 둔다. 

 

까리따스수녀회 수녀들은 하느님께 대한 봉헌을 통해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의 자비로운 사랑을 살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사명을 수행한다. 이러한 근본 정신은 회헌에 잘 나타나 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생명을 내어주시면서 사랑을 드러내셨듯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의 무한하신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서 실현된다. 따라서 까리따스수녀회 수녀들은 주님 성심의 사랑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고자 한다"(회헌 2조).

 

까리따스수녀회 영성의 큰 줄기는 성 요한 보스코의 그리스도교적 낙관주의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애덕과 자비로 이루어져 있다. 살레시오 가족의 일원인 까리따스수녀회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에서 발원하여 성 요한 보스코를 통해 설립자 돈 가볼리와 돈 치맛티로 이어지는 살레시오 가족의 사명을 시대와 장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실현한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라든가, 더 나아가서 사도적 활동의 효과를 위해 "대상자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라"라는 성 요한 보스코의 말처럼 자발적이고 흘러넘치는 신앙과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이, 병든 이, 무력한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살레시오적 특성 안에서 까리따스수녀회의 영성인 예수성심과 성체에 대한 신심을 강화하고 대상자의 범위를 넓혀 청소년뿐 아니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적 사랑을 실천한다. 다시 말해 수도회의 탄생 배경인 살레시오적 영성을 가지고 빈첸시오적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회원들은 이 두 가지 영성을 일치시켜 예수성심의 사랑을 살고, 그 사랑의 증거인 성체를 삶의 중심으로 하며, 까리따스수녀회의 실천을 돕는 정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으로 청빈을 실천한다. 또한 노동과 절제로 '까리따스'를 완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 한가족으로서 자매적 사랑을 살아간다.

 

성무일도를 바치며 하루를 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와 활동 안에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일치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여기는 회원들은 '활동과 관상의 조화'를 넘어서서 '활동 안의 관상'을 추구한다. 단순히 이웃을 돕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고 살아가는 예수성심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사도적 활동 안에서 그 사랑을 관상하는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로서 까리따스수녀회의 고유한 기도의 하나인 '사랑의 메시지'를 들 수 있다. 이는 수녀회의 영성을 함축하고 있는 6개의 성서구절을 각자가 하루 중 적절한 시간에 하나씩 기도로 바치면서 묵상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기도는 예수성심의 사랑을 성서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 안에서 묵상하고 찬미하면서 낮기도로 바치는 '예수성심 기도'이다. 이렇게 회원들은 예수성심의 사도로서 말씀의 선포와 섬김을 통한 자신과 이웃의 복음화를 생활 안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예수성심의 사랑을 살아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2월 3일, 박경희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까리따스수녀회 (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들이 의료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사도직 활동

 

선교열의에 가득 찼던 설립자 안토니오 가볼리 신부는 시대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현대적 수단을 동원해 선교활동에 임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까리따스수녀회는 설립 초기 주된 사도직 활동이었던 방문선교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복음선포의 장을 넓히기 위해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면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여왔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까리따스수녀회의 사도직 활동은 본당, 해외선교, 사회복지, 의료, 교육, 출판사업 등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특히 그 가운데 까리따스수녀회에서 중점을 두는 활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애덕을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도직과 본당사도직을 들 수 있다.

 

까리따스수녀회가 1956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처음 시작된 본당사도직 활동은 현재 12개 교구 71개 본당(올 1월 현재)에 수녀를 파견하는 등 '예수성심의 사랑'을 전하는 직접적인 복음전파의 현장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수녀회 설립 초기부터 행해왔던 가정방문은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쉬고 있는 신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들을 본당의 신심단체와 연결시켜줌으로써 도움을 주는 등 효과적인 선교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까리따스수녀회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라는 말씀을 행하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회복지활동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6년 광주에 성요셉 양로원을 개원한데 이어 87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목포 '경애원'의 운영을 맡았다. 이어 91년 가난한 환경의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서울 마포구청에서 건립한 '청소년 두리나눔터'의 운영을 맡아 청소년에게 건전한 놀이문화의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또 서울 까리따스방배종합사회복지관, 잠실종합사회복지관, 양재복지관을 운영하며 노인학대문제, 알코올치료 등에 관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까리따스수녀회는 1974년 9월 독일 가롤로 보로메오수녀회로부터 순천에 있는 '성 가롤로의원'을 인수한 후,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의료복지에도 힘써오고 있다. 현재 성 가롤로 병원은 700병상 규모의 정신과 병동, 노인전문 병동, 말기암환자의 임종간호를 위한 호스피스병동, 심혈관센터 등을 갖춘 지역 최대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특히 까리따스수녀회의 잘 알려진 현대적 선교방법의 하나로 월간지 '생활성서'를 통한 출판사도직이 대표된다. 사회홍보수단들을 개척해 시대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한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1983년 9월 창간된 '생활성서'는 신자들의 영성, 신앙생활 뿐 아니라 선교에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또한 성서사도직 활동으로 '생활성서' 뿐 아니라 성서교재인 '여정'을 보급하는 한편, 1999년 서울 노원구에 '생활성서 문화센터'를 열어 '여정' 입문과정, 쓰기성서강좌, 성서통독 강좌 등 말씀을 맛들이게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까리따스수녀회는 1986년 한국진출 30주년을 맞아 파푸아뉴기니에 5명의 선교사를 파견한데 이어 92년 7월 수도 포트 모레스비에 '까리따스 기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아울러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강조한 요한 보스코 성인의 정신을 따라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교육사도직에도 임하고 있다. 현재 까리따스수녀회는 서울 성요셉유치원, 광주, 나주, 제주 까리따스유치원을 비롯해 광주 성요셉어린이집, 서울 까리따스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2월 10일, 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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