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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삶의 지혜30: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로마서 강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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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9 ㅣ No.159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30)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로마서 강해’에서

 

 

‘헐벗으신 예수님’

 

[본문]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마저 내어주셨지만, 여러분은 주님께 빵 한 조각 나누어 드리지 않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위하여 그분께서는 버림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해 고난을 겪은 나를 거들떠보고 싶지 않다면, 나의 가난함이나마 측은히 여겨다오. 네가 내 가난에도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내 병이라도 보살펴주고, 묶여있는 나를 한 번이라도 찾아다오. … 나는 값비싼 것을 청하지 않는다. 한 조각의 빵과 걸칠 옷과 한 마디의 위로를 구할 뿐이다. …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발가벗겨진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헐벗고 있는 나를 기억해다오. 그때 나는 너를 위하여 묶인 몸이 되었지만, 지금도 너 때문에 묶여 있다. 전에나 지금에나 너는 조금의 자선도 베풀지 않는구나. 그때 나는 너를 위하여 굶주렸지만, 지금은 너 때문에 굶주리고 있다. 그때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목말랐지만,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목마르다. … 나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나를 사슬에서 풀어 해방시켜 달라고 네게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한 가지는 너를 위하여 묶여있는 나를 네가 찾아주는 것이다. …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너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네 식탁에서 함께 먹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로마서 강해’ 15장 6절

 

 

“필요 이상의 것은 도둑질한 것”

 

[해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교부(349~407년)는 날마다 성서를 묵상하고 되새김으로써 마침내 신구약성서를 통째로 외우게 되었고, 감동적인 설교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금의 입’(크리소스토무스)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그는 안으로는 교회의 개혁과 쇄신을 추구하고, 밖으로는 황실의 거짓과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세상의 미움을 받아 유배길에서 이승의 삶을 마감한 아름다운 성인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강론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연대가 가득 배어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 싶다면 헐벗으신 주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곳 성전에서 그리스도께 비단옷을 입혀 공경하면서, 저기 바깥에서 추위와 헐벗음에 떨고 계신 주님을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마태오 복음 강해’ 50장 4절) 참으로 그는 돌 제대 위에 내려오시는 그리스도(성체)뿐 아니라, 살 제대 위에 내려오시는 그리스도(가난한 사람)를 알아 뵙고 공경할 줄 아는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요한 19,28)고 절규하셨던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가난한 형제들 안에서 목말라 울부짖고 계신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께서 우리더러 물을 달라고 외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도 우리 모두를 배불리 먹이시지만, 우리는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치신 예수님께 빵 한 조각 냉수 한 잔 건네지 않은 채, 열두 광주리 가득 썩은 음식쓰레기만 채우며 배터지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필요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도둑질한 것이므로, 자선을 통하여 분배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교부들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대 그레고리우스, ‘사목 규칙’ 3권 21장 45절)

 

자선은 부유하고 풍족한 사람들만 행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선한 의지요 따뜻한 마음이니,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선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웃에게 건넨 냉수 한 사발로도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마르 9, 4),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부자들의 떼돈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마르 13, 41~44).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초상(肖像)이다. 가망 없어 보이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초상이 새겨진 돈은 하느님처럼 섬기면서도,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진 형제들을 멸시하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가! 황제가 누리는 세상 온갖 부귀영화는 언젠가는 허망하게 스러져버리고 만다. 그따위 황제의 것일랑 황제에게 몽땅 되돌려주고 하느님의 것만 찾을 일이다. 내가 지닌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가난한 이웃과 힘닿는 대로 나누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길이다(마태 22,15~22). 이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가톨릭신문, 2005년 10월 30일, 최원오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 주교회의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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