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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삶의 지혜31: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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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9 ㅣ No.160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31)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에서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기도’

 

[본문]

 

“전능하신 주 하느님이시여, 임의 사랑받고 찬양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저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천사들과 권능들과 모든 창생과, 임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의인들의 하느님이시여, 제가 순교자들의 무리에 들고, 임의 그리스도가 마신 잔에 동참하여 영혼과 육신이 영생의 부활을 누리며, 성령의 불멸을 얻는 자격을 오늘 이 시간에 베푸시니, 임을 찬양합니다.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느님이시여, 임께서는 미리 마련하시고 계시하고 이루시니, 오늘 저를 순교자들 가운데서 흐뭇하고 살찐 희생제물로 받아 주소서, 하오니 하늘의 영원한 대사제요 임의 사랑받는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만사에 대해 임을 기리고 임을 찬양하며 임께 영광을 드리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과 성령과 함께 이제와 영원히 영광을 누리소서. 아멘.”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4장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하느님 찬양”


[해설]

 

1.폴리카르푸스의 순교

 

폴리카르푸스(69년경~155년경 생존)는 스미르나(지금의 터키 지중해변 항도 이즈미르)에서 주교로 일하다가 장작더미 위에서 불에 타 순교한 성인이다. 그는 예수님과 상종한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사도들 다음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총독이 폴리카르푸스 주교를 심문하면서 “황제의 수호신인 튀게 여신에게 맹세하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풀어 주겠소. 그리스도를 모독하시오”라고 다그치자, 주교는 딱 잘라 대꾸했다. “제가 그분을 섬긴 지가 86년이오. 그분이 제게 잘못한 일이 단 한 가지도 없소 그러니 저를 구원하신 임금을 어떻게 저주할 수 있겠소.”(‘순교록’ 9,3) 폴리카르푸스가 화형을 당한 연월일시에 대해선 논의가 분분하지만, 155년 2월 23일 오후 2시로 보는 설이 우세하다 그래서 성인 축일은 2월 23일이다.

 

2.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이 씌어진 역사적 배경을 약술하면 이렇다.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학덕을 겸비한 원로 주교가 불에 타 죽다니, 이게 어디 보통일인가. 그 끔찍하고 장렬한 순교 소문이 지중해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모양이다. 사도 바울로가 전도한 바 있던 비시디아 지방의 안티오키아에서 동북쪽으로 한 참 올라가면 필로멜리움(지금의 아크세히르)이란 소읍이 있는데, 이곳 교우들도 이 소문을 전해 듣고 스미르나 교우들에게, 주교님의 재판과 순교 사연을 자세히 적어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스미르나 교우들은 주교님이 순교한지 일 년도 안돼서 주교님의 종생을 자세히 적어 보냈으니, 이 글이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이다. 이것이 세계교회사상 가장 오래된 순교록이다. 사도행전에 실린 스테파노의 짤막한 순교기(사도 6~7장)를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이야말로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교록의 후시요 전범이다. 관심 있는 독자는 하성수 박사가 역주한 ‘폴리카르푸스, 편지와 순교록’(분도출판사, 2000)을 일독하기 바란다.

 

3.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기도 풀이

 

폴리카르푸스 할아버지는 장작더미 위에서 양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앞에서 소개한 장중한 찬양기도를 드리고 곧 불에 타 죽었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가릴 것 없이 기도는 하느님께 바치는 게 정도이다.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기도에서도 하느님을 부르는데 그 수식어가 다양하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천사들과 권세들과 모든 창생과, 임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의인들의 하느님이시여/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은 온누리를 만드신 창조주시요 온누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시니, 극존칭들을 자꾸 포개서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탁월한 중보자는 예수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을 안다고 자부하고, 예수를 중보자로 삼아 하느님께 간구하곤 한다. 순교기도의 예수관을 보자. 예수는 하느님의 종이시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시다, 하늘의 영원한 대사제시다. “하느님의 종”은 제2 이사야서(40~55장)에서 따온 존칭이고, “하늘의 영원한 대사제”는 히브리서(2~9장)에서 빌린 존칭이다.

 

그럼 폴리카르푸스가 불에 타 죽기 직전에 장작더미 위에서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께 간구한 내용은 무엇인가? 폴리카르푸스는 순교하는 순간에, 구약성경의 표현을 빌려 자신을 흐뭇하고 살찐 희생 제물로 바치는 순간에 “순교자들의 무리에 들고, 임의 그리스도가 마신 잔에 동참하여 영혼과 육신이 영생의 부활을 누리며 성령의 불멸을 얻는 자격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한다. 표현은 다양하나 내용은 하나같이 구원을 가리킨다. 주교는 순교를 은총으로 여긴 까닭에 그 큰 은총을 주신 “임을 기리고 임을 찬양하고 임께 영광을 드린다.” 한 마디로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기도에는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녹아있다.

 

1850여 년 전에 지중해변 항도 스미르나 그리스 문화권에서 그리스도 신앙을 물려받은 주교의 신심은 그랬다. 그럼 오늘 동방 금수강산에서 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심은 어떤 꼴을 갖추는 게 바람직할까? 동방의 성인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년)의 눈썰미 매서운 시각에 따라, 부자유친의 신심을 가꾸면 진짜 토착화 신심이랄 수 있겠다. 다석의 심오한 말씀을 옮겨 적는다.

 

“예수가 제일 좋다. 부자유친(父子有親), 한아님 아버지와의 부자유친이 기독교다. 유교를 제치고 한아님 아버지와의 부자유친을 세웠다. 한아님 아버지께 유친하자 드리듬벼야 한다. 불서(佛書)는 사고무친(四顧無親)이다. 한아님 아버지와의 부자유친은 신약전서에 나타나 있다.”

 

4. 스미르나 순례

 

인천 공항에서 이스탄불 공항으로 가는 터키 항공기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서 이즈미르행 터키 항공 국내선으로 갈아타면 스미르나 순례를 쉽게 할 수 있다. 4백만 시민을 거느린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항도 이즈미르 도심에 폴리카르푸스 순교기념 주교좌성당이 있다. 1690년에 지었다는 성당 내부는 온통 울긋불긋 바로크풍으로 하려하게 치장했는데 그 유치찬란한 모습이라니 영 눈에 거슬린다. 세월이 바뀌면 미적 감각도 달라지는 법이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나서 가톨릭 정교회 가릴 것 없이 터키 그리스도교는 전멸했다. 그러니 이즈미르에 토박이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국제적 항구 도시인지라 외국 선원, 상인, 관광객이 제법 있어 이즈미르 교구라는 게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모양이다. 이즈미르에는 옛 유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인근의 베르가마와 에페소에는 많은 유적이 보존되어 있으니, 함께 살펴볼 일이다. 졸저 ‘위대한 여행,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서’(생활성서, 1997)가 도움이 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6일, 정양모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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