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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다문화라는 말이 가장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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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6 ㅣ No.680

[경향 돋보기 - 우리 이웃, 다문화가정] “다문화라는 말이 가장 싫어요”


국내이주사목 담당 주교가 되면서 이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길을 가다가도 우리와는 다른 문화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세계화를 말할 땐,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진행되기를 희망하며, 한국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많은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이 세계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의식도 세계화되어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는 것을 세계화의 의미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을 친밀한 이웃 형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제 중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다문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올바른 의식과 삶의 태도 변화입니다. 작년에 다문화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들은 “다문화라는 말이 제일 싫다.”는 다문화가정 남성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의미로 ‘다문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말을 추방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를 포함한 ‘다양성’이라는 의미로 ‘다문화’를 사용해야 하고, 서로 상생하는 다문화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주사목은 아직 드러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2012년 12월 말 현재, 약 144만 5천 명의 이주민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되거나 또는 결혼을 위해 이 땅에 들어와 생활하는 결혼이주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주민은 14만 4,214명입니다. 이 가운데 여성이 86%로, 그들의 출신지는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순으로 많습니다.

자본과 노동의 세계적인 이동은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며 다문화주의를 이끌었으나, 최근 들어 서구 유럽은 다문화주의에 대해 잇단 실패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직면한 다문화사회를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이라는 전통적 가치관과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 맞물려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발심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산업의 일꾼으로 동화되지 못하고 고립된 집단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늘고 있으며, 결혼 이주 여성들도 한국에 시집와 국적을 취득하고 나서도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다문화주의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성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화적 이해와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결혼 이주 여성은 가족으로부터 오는 고독감을 표현할 공간이 없습니다. 자녀가 생기면 자녀에게 사랑과 관심이 쏠리지만 완벽하지 못한 언어의 장애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아이들은 인생을 출발하는 가정에서부터 고독감과 결핍을 체험하며 지내게 됩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결핍을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미 다문화사회를 이루고 있는 미래 한국사회는 커다란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유치원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따돌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느 교구에서는 이주민 자녀들과 한국인 자녀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유치원을 건립했지만, 한국인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이주민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아예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작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여전히 편견과 이기적인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수의 약자들은 주류사회와 소통할 기회가 없고 좁은 땅에 고립된 공동체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유치원의 차별은 초 · 중 · 고등학교까지 이어질 것이고, 이들의 아픔은 성인이 되어 한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많은 장애를 낳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려면 지속적인 교육과 국민들의 인식전환 등의 연계가 필요합니다.


이주민들, 특히 결혼 이주 여성들의 현실

현실적으로 결혼 이주 여성들은 시작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인생을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개업체의 경제적인 거래, 짧은 교재 기간, 언어장벽에 따른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을 안고 살아갑니다. 더욱이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다문화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을 삶의 동반자이며 반려자로 보지 않고, 관리, 통제가 가능한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부부 사이에 갈등과 폭력이 표출되어 가출하는 이주여성들이 많아지고, 이 여성들은 문제가 발생해도 대응하는 힘이 약하며,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서라도 본국에 남아있는 가정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결혼이민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시골 농촌 현실은 경제적인 상황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정을 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낙담하게 되고, 삶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다수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있기에 남편 가족 중심주의 속에서 더 많은 고충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부모와의 갈등과 노인부양의 어려움, 의료기관 이용의 어려움, 자녀교육, 남편과의 의사소통, 이웃과의 소통, 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가운 시선의 어려움 등 전반적인 어려움을 지닌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자국민 친구는 먼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삶의 방식을 알려주고 있는데, 자국민 친구의 부정적인 경험들은 오히려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친구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집을 나갈 것을 염려한 남편이나 시댁 가족들이 다른 이주민들과의 만남을 아예 차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고립이 이주 여성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중시킵니다.

모든 사람은 소통을 통해 자존감을 확인하고 삶의 열정과 의미를 찾아가는데, 의사소통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통제는 고립감을 더욱 심하게 하고 심리적인 문제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 하더라도 사랑이 있다면 서로 소통하고 원만하게 지낼 수 있지만,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돈을 들여 배우자를 만난 경우, 남편은 아내에게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인신매매와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또 부모님의 빚을 갚으려고 결혼한 이주 여성들은, 결혼 계약서에 3년간 살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에는 위약금을 갚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마지못해 3년을 살고, 영주권을 얻으면 가출하여 돈을 벌기도 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의도적으로 3년을 살고 이혼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남편과 나이 차이가 크거나 알코올 중독, 폭력 성향, 장애가 있는 상황을 모르고 결혼한 경우에는 이주 여성의 가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 심지어 성폭력과 경제적 학대, 사회적 격리 등을 견디다 못해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하게 되고, 남편과 가족들이 쉼터에 찾아와 사정해도 집으로 되돌아가기를 기피합니다.

여러 기관이나 센터에서는 이들을 사목적으로 돕고자 하지만, 한국인 가족들의 반대로 만만치 않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가족 구성원이 신자들인 경우에 여러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정의 토대부터 새롭게 세우고자 고심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한글 교실은 기본이고, 요리 교실, 문화 체험 교실, 남편들을 위한 아버지 학교, 자녀 상담과 자녀들을 위한 힐링 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시적인 체험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과 방향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등한 국민으로서 함께할 같은 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문화의 사람을 구별하는 의미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이주민 정책이 주로 한국어 습득과 자녀 양육, 안정적 가족관계 등을 지원하는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젠 성장한 자녀들 문제와 사회통합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입니다. 시혜적, 온정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주체로서의 위상을 확인하고 찾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결혼이주민 자녀들에 대해서는 교육지원을 늘리고, 이주민들이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 진출을 촉진하며, 취업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통합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다문화사회의 적합한 사회환경을 위해서는 종족적, 문화적 차이에 따른 차별 방지, 인종혐오 범죄에 대한 대처 등을 골자로 하는 법 제정을 통해 기본적 사회규범을 확립할 필요도 있습니다.

현재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살펴보면, 여성가족부, 법무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안전행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관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각 정부부처가 각각의 집행기관을 통해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비효율성을 낳을 뿐만 아니라 예산의 낭비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 수행기관의 유기적 협력체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의 통합 부처 설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보다 더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국민들이 이주민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차별적 태도를 지양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같은 국민임을 인지하도록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지역사회, 학교, 기업, 군대 등의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사회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열린 장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옛 삶의 흔적을 잊어버릴 만큼 경제성장을 이루고 나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자못 기세등등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나라에 대해서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잣대가 다문화사회의 통합에 걸림돌이 됩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이탈리아 군인들이 도와준 나라라고만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시아의 내전을 겪은 가난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은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미 우리 의식 속에는 잘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구분이 있고, 민족적인 차별이 있으며,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이 더욱 필요합니다.

캐나다 에드먼턴에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문화주간이 있고, 다양한 나라의 전통문화와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원더풀!”을 외치고 박수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저도 열심히 불고기를 굽고, 시간이 나면 다른 문화 공간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문화를 알아가는 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풀어주셨듯이(루카 4,18 참조), 교회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이어가야 할 사명을 지니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시대의 이주민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더불어 살고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신앙인 가정과의 연대로 그들의 어려움을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창구도 필요하고, 그들이 누이요 어머니요 한 형제라는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따스함도 필요합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머나먼 한국 땅을 찾아온 젊은이들이 절망하고 인생에 실패해서 한국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기보다는,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목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을 인간 존엄성 안에서 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소통과 위로, 사랑을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한국인은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랑 많은 백성임이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 옥현진 시몬 -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옥현진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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