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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나를 지켜주며 나를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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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6 ㅣ No.1321

[경향 돋보기 -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나를 지켜주며 나를 감시한다

 

 

2002년 서울시 강남구에서 처음으로 방범용 시시티브이(폐회로 텔레비전, CCTV) 다섯 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을 때 CCTV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것에서부터 범죄 청정지역이 될 것이라는 기대까지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범죄 예방이 중요하므로 사생활 침해는 희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두드러졌다.

 

하지만 CCTV의 실제적인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없었다. 공방이 오갔지만, 경찰은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들어 방범용 CCTV를 널리 확산시켰다.

 

그 뒤 14년이 지났다. CCTV는 확실히 우리 주변의 흔한 목격자가 되었다. 어디를 가나 우리를 지켜보는 CCTV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무감각할 정도가 되었다. 어두운 길을 갈 때 CCTV가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심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범죄 예방과 수사야말로 CCTV를 도입하는 가장 큰 명분이었으니 그 측면에서 CCTV가 제 구실을 했는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늘 우리를 지켜보는 CCTV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10년치 자료를 받아 살펴보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CCTV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총범죄 발생률은 크게 줄지 않았다. 4대 범죄 발생률은 오히려 증가했다.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혹시 범인 검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CCTV가 있으면 범인들을 손쉽게 검거하곤 한다. 실제는 달랐다. 통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범죄 검거율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총범죄와 4대 범죄에서 모두 검거율이 떨어졌다. 이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기술사회학적 설명방법은 이렇다. 사회문제는 기술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범죄를 발생시키는 것은 불평등 등 사회적 요인에 따른 것이므로 그 발생을 기술적으로 억제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히려 사회문제 해결에 기술로 말미암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경찰이 CCTV와 같은 기술적 수사에 의존하는 사이에 탐문 등 발로 뛰는 수사가 줄었다는 일부의 주장이 그런 것이다. 계획적인 범죄는 이같은 기술적 증거 수집 장치들을 피해 나간다.

 

그래도 우리는 결코 CCTV를 철거하지 못할 것이다. CCTV가 가진 장점이 있다면 중립적인 기록 매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만 기록해 왔다. 인간은 시각 등 그 감각이 미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기억의 휘발성은 언제나 서로의 진술을 엇갈리게 하며 많은 사건을 낳았다. 그때 힘있는 자들의 편에서 기록된 역사는 한쪽으로 쏠려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기록이 민주화된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생활 곳곳에서 무수한 기록 매체를 만난다. 갑남을녀 모두가 삶의 순간순간을 기록한다. 거리 곳곳의 CCTV로부터 차량마다 달린 블랙박스와 같은 자동 기록 장치들은 물론, 손마다 들려있는 스마트폰도 그 자체로 철저한 기록 매체들이다. 사진에, 메신저에, 페이스북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고, 심지어 어떤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록된다. 삶의 모든 순간에 대한 증인을 갖게 된 것이다.

 

기록이 얼마나 많은지 정보인권의 최근 화두는 ‘빅데이터’이다. 빅(big)한 데이터(data) 시대에 그 편리함과 유용함을 누리면서도 우리에게는 이 기록에 대한 의구심과 불편한 마음도 자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기록한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시대는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고뇌를 가져왔다. 사생활이란 것이 사라지고 있다. 나의 사생활이 전 지구에 방송될 수도 있고, 국가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집회에서 휴대전화의 압수 논란이 있었다. 경찰은 연행된 시민 가운데 묵비권을 행사하는 이들을 골라 휴대전화를 압수하여 수색하였다. 누구와 함께 집회에 왔고 언제 무엇을 했는지 스마트폰에 보관된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스마트폰은 진술보다 더 정확하였다.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헌법 조문은 이렇게 휴지 조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국에서는 2014년 스마트폰에 대해 영장주의를 강화하는 판결이 있었다. 연방대법원은 이 작은 기계가 “엄청난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어서 수백만 쪽 분량의 문서와 수천 장의 사진, 수백 장의 비디오를 저장할 수 있다. 이제 휴대전화는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90% 이상의 미국 성인들이 그들의 삶의 거의 모든 면에 관한 디지털 기록을 자신들의 몸에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익명으로 남아있을 자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기록으로부터 자유로운 장소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으며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최근 유럽 연합에서 통과된 개인정보 보호규정(GDPR)에서 ‘잊힐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를 포함한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일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Google)에 대하여 이용자의 잊힐 권리를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편재하는 기록은 이렇게 ‘감시’의 문제를 불러왔다. 기록은 평등하지만, 감시는 불평등하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간에 권력 차이가 있다. 디지털 시대 감시는 더욱 은밀하다. 사람이 몰래 미행하거나 엿보는 아날로그 감시와 달리 디지털 감시는 전자적인 발자국을 보이지 않게 따라다닌다.

 

CCTV에 기록된 영상, 휴대전화에 기록된 메신저 내용,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의 위치 정보, 심지어 CCTV가 자동으로 인식하는 차량번호까지 수많은 감시기법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근대 헌법이 선언한 법원의 영장주의는 이 경우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일일이 영장으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정보가 수집되며 제공되고 있다. 2015년 유럽 개인정보 감독관(EDPS)은 빅데이터 시대에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이나 정부와 일반 국민 사이에 정보 불균형이 우려된다고 걱정하였다.

 

감시 권력은 그래서 기존에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더욱 유리하다. 만일 그 권력이 민주적으로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디지털 기술은 그들 편에 일방적으로 봉사할 것이다. 지난해 경찰이 세월호 집회를 감시하고자 교통 CCTV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물의를 빚었다. 교통 CCTV는 본디 목적이 교통정보 수집과 교통 단속이다. 그러나 그 본디 목적이 무엇이건 힘이 있는 이들은 디지털 정보 가운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건 가져갈 수 있었다. 권력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과연 교통 CCTV뿐일까?

 

 

모든 것을 감시한다

 

지난 3월에 테러방지법이 우리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된 것도 ‘감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국정원이 법원이나 그 밖의 누군가의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고 개인정보나 위치 정보를 제한 없이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정보기관의 감시 문제가 참 오랜만에 우리 정치사에서 국민적인 화제로 부상하였다. 이제 정보기관의 감시는 디지털 첨단수단을 아우를 터였다.

 

돌이켜보면, 1996년 전자주민카드의 논란 속에서 ‘사생활’이라는 화두가 처음으로 한국 정치사에 등장하였다. 야당 대통령 후보가 전자주민카드 시행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주민등록제도는 1960년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이래로 광범위한 국가 신분등록 제도로 정착되어 왔다. 왜 지금와서 이게 논란이 되는지, 아마도 내무부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40년간 잘 시행되어 온 주민등록번호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15년 12월 23일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 또한 이런 시대 변화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이 오래된 제도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주민등록번호는 표준 식별번호로 기능함으로써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로 사용되고 있어, 불법 유출 또는 오·남용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 · 신체 · 재산까지 침해될 소지가 크므로 이를 관리하는 국가는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여야 하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 그로 말미암은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더불어 주민등록번호의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선언하였다.

 

디지털 시대가 아니라면 개인정보 유출이 그렇게 광범위하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떠돌게 되었다. 2011년에 싸이월드와 네이트에서 3천5백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2014년 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에서 무려 1억4백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뒤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헌법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대량으로 수집되고 집적된 개인정보를 훔치는 것은 종이로 된 그만큼의 양을 훔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물론 보안장치가 되어 있지만, 성공적으로 훔치는 자에게는 그 위험을 감당할 만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정보는 이미 널리 사고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감시를 대하는 자세

 

디지털 환경의 확산으로 매우 편리해진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우리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던가. 기록은 평등해졌다. 평범한 사람들도 지구인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는 표현수단을 갖게 되었다. 원격으로 공문서를 떼고 쇼핑하고 교육받을 수 있다. 그건 어쩌면 근대 이후 인류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책이 필요하다. 2014년 유엔 반테러 보고관이 “사생활이 말살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보장해 온 인권을 온라인에서도 계속 보장할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헌법재판소가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개선을 결정하였고, 패킷 감청, 기지국 수사, 실시간 위치 추적, 카카오톡 압수 수색까지 줄줄이 심사하고 있다.

 

‘감시’에 대한 걱정은 일부의 노파심이나 피해의식에 불과한 주장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 시민이라면 이런 문제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감시에 압도되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편리한 생활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규칙을 눈치채고 의심하며 성찰하는 것, 딱 그것이 디지털 감시 시대를 사는 시민에게 꼭 필요한 자세이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장여경(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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