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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사랑의 기쁨 – 부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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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4 ㅣ No.1316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사랑의 기쁨 – 부부의 사랑

 

 

혼인과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보편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 문제에 대해 사목적으로 응대하기 위해서 개최됩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의제 설정 배경 속에는 교회와 세상에 관한 교황님의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님 시절에 개최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의제들은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제14차),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제15차),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16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늘날 교회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의 하나는 혼인과 가정의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성과 사랑, 혼인과 가정, 청년과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를 담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어쩌면 미래 세대를 위해 오늘의 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기쁨, 가정 안에서 체험하는 사랑의 기쁨은 또한 교회의 기쁨입니다.”(‘사랑의 기쁨’, 1항) “가정의 행복은 세상과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31항) 하지만 오늘날 혼인의 위기와 가정의 해체를 드러내는 많은 표지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제1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문헌인 ‘사랑의 기쁨’은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 솔직하고 현실적이며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2항).

 

 

부부의 사랑

 

부부의 사랑은 “혼인과 가정이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관대, 헌신, 신의, 인내의 미덕으로 충만한 강한 사랑”(‘사랑의 기쁨’, 5항)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자녀라는 새 생명을 창조할 만큼 깊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늘 세월과 환경의 무게를 잘 감당하지 못하고 옅어지고 때로는 사라져갑니다. 부부의 사랑은 혈연적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변해갈 수 있는 위험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의 사랑은 그 자체를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키고 키워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랑입니다.

 

 

소통의 사랑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소통입니다. 철학자 레비나스에 의하면, 사람은 말과 몸으로 서로 소통합니다. 이 두 개의 소통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말만의 소통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몸만의 소통은 뭔가 허합니다. 젊은 날에는 몸과 몸에서 결부한 감정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말과 말의 통교에서의 감정이 더 중요해집니다.

 

몸의 욕망과 감정에만 충실한 사랑은 쉽게 변해버릴 위험이 많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의 대사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변합니다. 특히 욕망과 감정에 기초한 사랑은 언제나 더 빨리 변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남자와 여자의 감정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오면서 경험합니다. 감정에 기초한, 특히 남자와 여자의 이성적(異性的) 감정에 기초한 관계의 허약성을 말입니다. 감정이 많이 쏠린 관계일수록 감정이 식으면 빨리 관계가 단절됩니다. 남녀 간의 이성적 감정에 기초한 관계는 언제나 허약합니다. 이성 간의 단순한 감정적 끌림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과 몸의 상호 보완성이 필요합니다. 말의 소통, 즉 대화의 끈을 놓치지 말고, 늘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면 가정생활이 더욱 인간적으로 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사랑의 기쁨’, 32항) 그리고 말의 공감대를 위해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신앙의 매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나이 들어 보면 압니다. 서로 말할 거리가 점점 없어집니다. 부부가 서로 수다를 떨 줄 알아야 합니다. 부부생활 초기부터 말을 나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고받기의 사랑

 

의무와 책임과 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부부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사랑의 기쁨’, 32항 참조). 평등한 부부관계에서는 주고받기를 잘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세월이 지나 보면 압니다. 부부관계 역시 결국 주고받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약간 과장해서 냉혹하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넓은 의미에서 결국 주고받기의 계산적 행위입니다. 다만 그 계산 방법이 일반적 산술의 방식을 벗어날 뿐입니다.

 

모든 관계의 밑바닥 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주고받기의 형태가 내재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질적 선물을 줄 때 상대방이 고마워한다면, 물질적 선물과 감정적 고마워함이 교환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열 번의 배려를 베풀었다면 받은 사람 역시 한 번의 배려라도 주어야 합니다. 십 대 일의 교환이지만 그것 역시 주고받기의 행위입니다. 결국 무상의 호의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는 최소한의 정성과 책임이 요구된다는 의미입니다.

 

냉정히 따져 보면, 부부 사이에도 언제나 조건적 사랑과 조건적 호의만 가능합니다. 사실 모든 사랑과 모든 호의 안에는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이기심과 욕망이 담겨있습니다. 아마도 무조건적 사랑과 무조건적 호의란 하느님과 부모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정성을 잘 주고받아야 합니다. 일방적인 주기, 일방적인 받기는 필경 지치게 하고 균열을 낳습니다.

 

 

사랑의 방법

 

부부의 시간이 깊어갈수록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철학자 김영민의 주장처럼,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맞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녀 간의 감정적 끌림을 사랑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삶에 있어서, 사랑에 있어서 감정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것이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성적 끌림의 감정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친구 같은 감정, 오래된 가족 같은 감정이 참사랑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열정적이고 폭풍 같은 본능과 욕망에 기초한 감정 보다는,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은은한 감정,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 깊고 성숙한 감정이 더 사랑에 가깝다는 것을 오래 살은 사람들은 아마 알 것입니다.

 

사랑은 때때로 욕망으로서의 사랑이기도 하고, 감정으로서의 사랑이기도 하고, 정(情)으로서의 사랑이기도 하고, 살아온 연륜으로서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참사랑은 세월의 폭과 깊이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 /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하듯이, 부부의 사랑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더 깊고 더 넓어져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9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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