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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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통해서 본 청소년 신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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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6 ㅣ No.74

성서를 통해서 본 청소년 신앙교육

 

 

1. 들어가는 말


신앙교육

 

청소년과 그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문제제기는 최근에 일어난 것도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물질주의 풍토 속에서 청소년 신앙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교구 시노드나 청소년 신앙교육 실태조사를 기초로 한 연구들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었지만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교육과 관련된 부모와 주일학교 교사, 수도자와 사목자, 청소년 문화와 사회 환경, 교구와 학교가 함께 연대하여 총체적 접근 방식으로, 또 점차적으로 생명력 있는 신앙교육 운동으로 확산되고 심화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2004년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와 우리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조사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일학교 출석률의 급감이 상당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감소현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주일학교가 재미없고 지루하고 활기가 없다고 응답하는 청소년들에게 신앙교육을 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요인은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과 관련된 것이다.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 약한 믿음과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은 모두 신앙체험으로 인도하는 도움들, 곧 영적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생명력 있는 청소년 신앙교육이 될 수 있도록 신앙의 원천이신 예수님께 돌아가 성서가 오늘날 청소년 신앙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영감과 비전을 살펴보고, 이를 청소년사목의 현장에서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찰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루가 복음서의 청소년 예수와 부모의 신앙교육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 예수님의 믿음과 신앙교육


1) 예수님의 삶과 믿음 

 

많은 이들은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이셨으므로 믿음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 인간으로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을 갖고 계셨다. 그분의 믿음은 믿음에 대해 하신 말씀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신뢰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의 행적과 복음 선포에서도 드러난다. 하느님께 대한 그분의 신뢰는 풍랑을 만났을 때도 누워 주무실 정도이며, 병자를 치유하는 경우에도 표현된다. 복음을 선포하실 때도 선포의 대상인 하느님 앞에 서계신 모습에서도 아버지와 신뢰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믿음은 주님의 기도와 하느님과 내밀한 관계 안에서 밤새도록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에서도 드러난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가장 앞세우시며, 깊은 신뢰로 아버지께 향하는 기도 안에서 드러난다. 아버지께서는 청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고, 청하는 것은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으신다. 

 

예수님께 믿음은 무엇보다도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 믿음은 우리에게 하느님 안에서 중심을 찾게 해준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권하는 이 믿음을 그분 자신께서 수난하실 때도 보여주셨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아가신 빌라도 앞에서도 보여주셨고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으신 십자가 위에서도 보여주셨다. 그분의 믿음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다. 죽을 때조차 자신이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 안에 있음을 아시고 자신을 맡기셨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작은(약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돌보아주신다. 곤궁에 빠진 제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호수 위를 걸어오실 때, 먼저 신뢰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큰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홀로 놔두지 않으시고 함께하신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면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리라고 믿어도 된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으면 그분의 믿음, 그분께서 아버지께 갖고 있는 깊은 신뢰감을 공유하게 된다.

 

2) 어린이 예수와 신앙교육 

 

어린이 예수는 ‘믿음의 학교’인 가정에서 부모에게 믿음을 배우셨다. 예수님 역시 처음부터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배우셔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전통 신앙으로 살아온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믿음을 배우셨다. 하느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고 부유한 이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신다는 찬미가(루가 1,46-55)를 부른 마리아에게서 모든 인간적인 평가기준을 무너뜨리시는 하느님, 인간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배우셨다. 또 마리아에게서 우리의 가슴을 노래하게 하고 우리를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배우셨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아주 매력적인 하느님 이미지를 전해주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정의로우면서 동시에 자비로웠던 요셉(마태 1,19 참조)에게서 선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배우셨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사랑에 둘러싸여 안정을 누리며 자라날 수 있을 때, 더 빠른 성장을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 학교에서도 믿음을 배우셨다. 유다인 학교에서 시편기도를 배우셨다. 하느님께서 모든 역경에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시편기도를 통해서 배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신뢰를 죽을 때까지 잃지 않으셨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배우셨다. 기도하시는 중에 하느님과 좀 더 친밀해지는 것을 배우셨다.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친근함을 체험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하느님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에 대한 그분의 말씀은 완전히 새롭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에 대해 하는 말과 다른 권위를 지닌 분으로 가르치시기에 듣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하느님께서 그 자리에 현존하셨고, 거기서 사람들은 그분의 힘과 사랑을 느꼈다.

 

3) 청소년 예수와 부모의 신앙교육 (루가 2,41-52)

 

청소년 예수에 대한 부모의 신앙교육은 루가 복음의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을 지낸 뒤 나흘 동안 성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청소년 예수와 그의 부모 모두에게 신앙 성장과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떠나옴에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며 신앙교육의 중요한 단서들을 고찰해 보자. 

 

① 첫 단계: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낳아 생명을 돌보는 부모의 관계로서 모든 일상을 아들과 함께한다. 해마다 그러하듯 유다교의 가장 큰 명절인 과월절을 지내고자 아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명절기간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부모는 아들이 일행 중에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다. 그동안 아들이 그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 이런 무딘 반응이 있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부모들이 친지들 일행과 어울리느라 아들에 대해 방심했거나, 아니면 해마다 와서 익숙한 일이어서 이제 12세가 된 소년 예수를 가까이서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거나, 이제 12세나 된 소년 예수가 스스로 친지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룻길을 가는 동안이지만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다. 그들의 모습은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된 삶 속에서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② 둘째 단계: 부모는 아들이 그들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함께 가야 할 아들이 곁에 없다. 정작 돌보아야 할 소중한 존재인 아들과 함께 가지 않고 자기들만 따로 집으로 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도 때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잊어버리고 일상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의 무리를 벗어나 먼 길을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예수님의 부모가 아들을 잊어버리고 함께 동반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는 것처럼, 신앙인으로서 우리 삶 안에서 잊어버린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는 은총의 순간들이 있다. 

 

③ 셋째 단계: 부모는 출발했던 곳을 향해 되돌아서서 아들을 찾아나선다. 회개의 순간이다. 그들은 아들이 함께 없음을 깨닫는 순간 곧장 떠나온 방향으로 되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더듬어 아들을 찾아나선다.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돌아가 사흘 동안이나 애타는 마음으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을 찾아 헤맨다. 아들을 잊어버리고 하루 동안 걸어온 길이지만, 아들을 찾으려고 돌아가는 길은 사흘이다. 

 

이러한 부모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잊어버림을 깨닫는 회개의 순간,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깨달음과 되돌아서는 회개가 은총의 순간이듯, 찾아나서는 것은 그 은총을 드러내는 신앙인으로서 삶의 중요한 국면이다.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에서 우리는 생각하느라고, 후회하느라고, 아들을 탓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깨닫는 순간 곧바로 되돌아서 찾아나서는 사랑과 결단, 그리고 용기를 가진 부모, 나아가 신앙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④ 넷째 단계: 부모는 잃어버린 아들을 먼저 친척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는다. 그러나 가까운 곳, 친척과 친지 가운데서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들을 찾으려면 친척과 친지들을 통과해서 더 멀리 가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에서도 가까운 이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인간관계에서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종착지점도 아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보다 더 멀리, 인간관계보다 더 근원적인 곳, 곧 출발한 곳까지 돌아가야 한다.

 

⑤ 다섯째 단계: 그들이 출발했던 곳은 도시 예루살렘이다. 예수님께 예루살렘은 예언자로서 당신께서 가야 할 길이 끝나는 곳, 아무리 암탉이 병아리를 모아들이듯 어버이의 사랑으로 모아들이려 해도 결국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곳, 그렇지만 당신의 사명이 완성될 바로 그곳이다. 예수님의 부모는 예루살렘 한가운데로, 더 깊은 데로 찾아가야 한다. 

 

⑥ 여섯째 단계: 과월절을 지낸 나흘 만에, 아들을 찾아 헤맨 지 사흘 만에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들어간다. 부모는 드디어 예루살렘의 한가운데, 성전 안에서 아들 예수를 만난다. 과월절을 지낸 그 성전이다. 과월절을 지내고 집을 향해 떠난 하루와, 아들을 찾아 되돌아온 사흘을 합하면 나흘이다. 성서의 상징적 의미에서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과월절’ 말미에 일어난다. 성서에서 영적인 의미를 지닌 3, 곧 사흘이란 숫자와 관련해 볼 때 예수님의 부모는 아들과 인간적 관계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 영적인 관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성전 안에서 부모는 학자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46절). 성전의 학자들은 율법서와 예언서에 능통한 유다교 신앙의 선생이다. 그런 선생들과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묻고 대답하며 신앙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모도 이 광경을 보았다. 학자들과 성전 안에서 듣고 있던 유다교 신자들이 경탄할 정도로 예수님은 유다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통달했음을 보여준다. 먼저 부모는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 생각된다. 

 

⑦ 마지막 단계: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신앙의 대화는 영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48절)는 어머니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49절) 하고 대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과월절을 지내고, 성전에서 학자들과 하느님 말씀인 성서를 공부하는 중에 중요한 내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분의 대답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확신이 담겨있다. 예수님의 말을 바꾸면 “당신이 왜 나를 찾으십니까? 누구를 위해 나를 찾으십니까? 나는 이제 당신께서 어머니로서 아들을 돌보려고 찾지 않아도 되도록 나의 길, 내 삶의 목표, 내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나는 이제 하느님께 속해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내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바로 내 집입니다. 그것을 당신은 아직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대답은 심오한 체험에서 나온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반영한다. 인간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을 넘어서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느님을 ‘아버지’로 체험하며 “내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소년 예수가 유다교 전통 안에서 부모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내 아버지”이신 분으로 인격적 관계 안에서 자기의 정체를 “하느님의 아들”로 확신하면서, 어머니 마리아도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믿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기 정체성을 깨닫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50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찾아 이곳까지 온 것은 자녀를 가진 대다수의 부모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들의 대답에서 더 깊은 만남, 더 깊은 신앙과 영적인 만남의 관계로 초대된다. 아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도록, 그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관계를 갖도록, 더 깊은 신앙으로 성장하도록 인도된다. 부모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새겨둔다. 신앙의 신비 앞에 선 신앙인의 기도는 침묵으로 표현된다. 

 

오늘날의 부모들도 청소년 자녀가 자신의 길과 다른 인생길을 찾아가기 시작할 때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서 갈등과 위기를 체험한다. 이런 인간관계의 위기에서 청소년 예수는 마리아를 초대하셨듯이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 안에서 이해하기 곤란한 상황에 놓일 때도 똑같이 초대하시는 것이다.

 

 

3. 청소년 신앙교육의 새로운 방향 정립을 위한 제언

 

첫째, 청소년 신앙교육은 신뢰의 관계를 길러주는 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삶의 모든 국면에서 성부와 깊은 신뢰관계에 바탕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신앙교육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청소년 예수의 성부께 대한 신뢰관계가 어린 시절부터 은총 안에서 성장해 온 결과라 보면, ‘믿음의 학교’인 가정에서 부모의 모범적 삶에 영향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이 평생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므로, 유아기 신앙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강조된다. 

 

셋째, 부모와 청소년 자녀가 함께 일상의 신앙생활과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축제를 의미 있게 거행함으로써 신앙교육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넷째, 청소년기의 중요한 발달과제 가운데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청소년 예수는 모든 청소년의 원형으로서, 그들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들의 내면에는 청소년 예수가 확립한 자기 정체성의 가능성이 있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위해 예수님처럼 흔들림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힘을 내면에 지니게 된다. 청소년 신앙교육은 이러한 자기 정체성 확립을 지향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청소년 신앙교육에 관련된 부모와 교사들이 청소년을 신앙교육의 대상만이 아니라 상호 주체와 대상이 되어 상호 성장을 돕는 관계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 자녀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 자녀들과 함께 부모들, 어머니들도 아픔을 겪으면서 한층 더 깊은 관계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도록 초대받는다. 청소년의 신앙생활을 돌보는 가운데 청소년기가 지닌 은총의 선물을 받게 되고, 자신의 성장도 함께 이루어진다. 청소년과 부모는 함께 신앙교육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 상호 성장을 돕는 관계가 된다. 

 

여섯째, 청소년 신앙교육은 소년 예수를 찾는 부모의 모습에 나타난 것처럼, 일상의 습관적 삶에 대한 성찰과 회심,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탐구,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 이러한 만남으로 인도되는 신앙의 대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맛들임, 성령이신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해 귀 기울이는 내적인 침묵과 영적 민감성, 깊은 신뢰의 관계에 뿌리를 둔 자유와 기쁨이 살아있도록 배려되어야 할 것이다.

 

일곱째, 청소년기는 생애의 모든 발달단계와 대조되는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특별한 과제를 은총의 선물로 상기시키는 시기이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저마다 발달시기가 있고, 청소년기도 있다. 우리가 비록 자기 정체성을 한 번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 정체성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완성을 향하여 성장해 나간다. 신앙 공동체 안에 청소년들이 존재함으로써 공동체는 경직화되지 않고 내면의 청소년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변화와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된다. 곧 외적 인간은 낡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젊음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 공동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존중하여 공동체의 중심에 두신 예수님을 따라서, 청소년들을 이런 은총의 선물을 지닌 존재로 존중하며 그들이 공동체의 중심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청소년기에 알맞은 사도직을 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목, 2005년 5월호, 이숙자(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수녀 · 대구 산업정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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