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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교부들의 가르침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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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35

[교부들의 가르침] "연재를 시작하며"

 

 

가톨릭 신문사가 ’교부들의 가르침’이란 주제로 1년 간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 여기서 말하는 ’교부’(敎父)는 1세기부터 7세기까지 교회 신학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신학자 내지 사목자들을 뜻한다. 이 시기를 ’교부시대’라고 하며, 이에 관한 학문을 ’교부학’이라고 한다.

 

교부학을 전공한 16명의 학자들이 지난 1월과 6월에 모여 교부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교부학 연구회’를 결성했다. 이 사실을 중시한 가톨릭신문사는 독자들에게 교부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래서 장인산 신부, 최원오 신부, 노성기 신부, 이연학 신부, 하성수 교수 등 다섯 명의 필진이 이 칼럼을 맡아 집필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일컬어 ’계시종교’라고 한다.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세워졌다는 뜻이며, 하느님의 계시는 성서(聖書)와 성전(聖傳)에 나타나 있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인 신구약성서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성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룩한 전승’이라고 대답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고 다시 물으면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 7-10항에 나오는 성서와 성전의 관계를 살펴보자. 하느님의 계시는 신구약성서와 성전(聖傳)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이 두 가지는 하느님의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오므로 하나를 이룰 만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교부들의 말씀은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실생활 가운데 풍부히 흐르고 이 성전의 생생한 현존을 입증한다"(8항)라고 선언하고 있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성전’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므로 교부들에 관한 연구는 하느님의 계시에 접근하는 데 중요하고 필요불가결의 길이 된다. 사실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끝맺으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이 있다. 만일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다 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요한 21,25)라고 했다. 이 말씀이 암시하는 대로, 사도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가르침과 행적들 외에 다른 내용들도 제자들에게 틈틈이 들려주었을 것이며, 또 사도들의 서간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복음의 정신에 따라 해결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사도들의 제자들은 각 지역교회의 책임자(주교)로 세워졌으며, 맡은 교회를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지도하면서 새로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대처해 나갔다. 이러한 가르침의 계승을 ’전승’(傳承)이라 하며,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로 교부들이다.

 

교부들의 권위는 어디까지나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교부 각 개인은 교회의 거룩한 전통[聖傳]을 이루는 구성요소지만 결코 성전 자체는 아니다. 성전의 한 몫이며 구성요소인 교부 각 개인의 권위는, 그가 주창한 학설의 내용이 보편교회의 가르침이나 다른 교부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정도에 비례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주석에 대한 "교부들의 일치된 견해는 절대 틀리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한다. 또 "원천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의 삶을 살자"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은 일차적으로 성서와 복음적 삶을 의미하는데, 성서시대와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성서의 의미를 더욱 깊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교부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웅변하는 예술작품을 소개하겠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 맨 앞에 벨리니(1598~1680) 작품의 ’Gloria’(글로리아: 영광)가 있다.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벨리니는 미켈란젤로와 함께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예술가다. ’글로리아’의 상단 부에는 반 투명대리석 창문에 비둘기의 형상을 한 성령이 있고, 그 밑에 뭉개 구름과 작은 천사들에 둘러 쌓여 있는 의자가 있으며, 그 밑에는 5m 크기의 청동으로 된 네 분의 인물이 서있다. 한 가운데 있는 의자는 교황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나타내는 교좌(敎座)이다. 성령께서 그 교좌를 지켜주고 보호한다. 하단 부에 있는 네 분의 주교들 중에 앞쪽에 있는 두 분은 서방교회의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이며, 그 뒤에 있는 두 분은 동방교회의 성 아타나시우스 주교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금구) 주교이다. 이들은 모두 손을 들고 있지만, 그 교좌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는다. 이는 그들은 교회의 가장 위대하고 대표적인 교부들이지만, 주님으로부터 직접 권위를 받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가르침에 조언을 할 뿐이지 직접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전’의 기초가 되는 교부들의 가르침은 글로 전해오고 있다. 15세기에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양피지에 손으로 일일이 써서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필사본으로 전해오는 교부들의 문헌은 오늘날 500쪽 정도의 책으로 묶어도 수 천 권의 분량에 이르며,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를 놓은 보배다. 교부 문헌을 어렵고 고루한 전문 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교부 문헌을 직접 접할 기회가 적었던 데서 오는 막연한 선입관에 불과하다. 그들의 글은 현대인들에게도 감동적이며 이해하는 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 독자들이 처음 접하는 이름이나 용어들은 생소하게 느끼겠지만, 계속 읽다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아무쪼록 이 칼럼이 애독자들의 영적 생활에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가톨릭신문, 2002년 10월 6일, 이형우 아빠스(교부학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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