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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외경문헌: 초대교회 전통, 가치관 이해에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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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37

[교부들의 가르침] 외경문헌


초대교회 전통, 가치관 이해에 필수

 

 

낯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땐, 놓치지 않고 꼭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외경 문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외경의 의미 즉, 정경과 외경의 차이는 무엇이며, 신구약성서의 정경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있듯이, 외경도 구약의 외경과 신약의 외경이 있다는 것, 외경 문헌이 만들어진 동기와 후대에 미친 영향. 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에 덤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듯이,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도 덤으로 가톨릭이 제 2경전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왜 개신교는 인정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외경이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쓰여진 작품들 중에서 신구약성서의 경전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작품들을 말한다. 기원 전 2세기부터 기원 후 2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유다인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기원 전 167년에 유다인에 대한 대박해, 기원 전 63년에 로마제국의 폼페이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 기원 후 70년에 예루살렘 파괴, 132~135년에 제 2차 유다 항쟁으로 인해 유다왕국이 멸망하여 유다인들은 팔레스티나를 떠나 이방인들의 땅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메시아의 승리 강조

 

로마에 참패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주권을 상실한 유다인들은 구약성서의 하느님에 대하여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아닐까? 그분은 과연 정의로우신 분인가? 이제 유다인들은 어떤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의혹과 질문들에 직면한, 구약시대의 외경 저자들은 하느님의 통치권과 곧 성취될 메시아의 승리를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굳건한 믿음과 희망을 심어줄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구약의 외경 문헌들은 유다 민족이 처했던 암울했던 시대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당시 유행하던 유다교의 외경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받아들여 그리스도교식으로 가필하여 사용했다. 즉, 2세기 중엽까지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유다주의 틀 안에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럼 신약의 외경 문헌에 대해 알아보자.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마리아의 생애와 사도들의 선교활동 등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성서에 나타나지 않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생애와 사도들의 활약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아주 컸다. 그리스도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2세기부터 4세기까지 수많은 외경 문헌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신약의 외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각색된 것들이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아주 유치한 우화의 성격을 띤 것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단자들이 자신들의 교의를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도 있다.

 

신구약성서의 경전이 언제 어떤 기준으로 확정됐을까? 기원 후 약 200년까진 경전과 외경에 대한 구별이 없이, 각 지역 교회들의 판단에 따라 고대 문헌들이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유다교는 그리스도교의 출현 때문에 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확정지을 필요성을 느꼈고, 그리스도교는 이단의 발생과 신자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확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다교는 기원 후 90년에 얌니아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구약의 경전 목록을 확정했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모세 오경(토라 또는 율법)의 가르침과 일치할 것. 2) 에즈라 시대 이전에 집필된 것이어야 함. 3) 히브리어로 집필된 것이어야 함. 4) 팔레스티나에서 집필된 것이어야 함. 이 같은 기준 때문에, 기원 전 30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서, 70인역(셉투아진타)에 들어 있던 7권이 유다인의 성서 경전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유딧서와, 지혜서, 마카베오서 상하권, 토비트서, 다니엘서의 일부와 에스텔서의 일부, 바룩서).

 

한편 가톨릭 교회는 마니교(구약성서를 악마의 작품이라고 주장)에 대항하여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두 차례 지역공의회(391년, 397년)를 개최하여 신구약의 경전 목록(73권)을 확정했다. 이때 가톨릭 교회는 70인역에 들어 있던 7권을 구약성서의 제 2경전으로 인정했다. 만일 이단(영지주의, 마르치온 사상, 마니교)의 위협이 없었다면 성서경전 목록 확정은 더 늦어졌을 것이다. 북아프리카 교회가 신약의 경전 목록을 확정할 때 사용했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사도성(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들이 직접 쓴 작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2) (개인 서간이나 비밀 서간이 아닌) 대중 전례 서간. 3) 보편 대중 전례서간(로마,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카르타고, 안티오키아 교회와 같은 큰 교회에서 전례때 사용). 4) 정통성.

 

세월이 지나 종교개혁 때,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이 인정하는 제 2경전을, 유다인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필사본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에서 이 7권을 포함한 신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최종 확정지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제 2경전을 인정한 것은 아프리카 지역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존중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전례적인 측면이었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모두 제 2경전을 전례에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외경의 가치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 구약의 외경들은 당시 유다인들의 사고와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성서의 배경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생존당시 유다 민족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편적으로 믿었던 교리들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거기에 비해, 신약의 외경들은 초대 교회 신자들이 어떤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무엇을 믿고 존경했는지를 알려주며, 초대 교회의 생활과 이상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소아시아와 인도 등지로 선교를 떠난 사도들의 활약상, 전설적인 모험담, 간절히 열망하던 순교의 장면 등. 외경 문헌들은 신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부활신앙, 마리아론, 천사론, 마귀론 등). 성모 마리아의 봉헌,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 등도 외경 에서 유래되었고, 마리아의 생애, 예수님의 어린 시절, 12 사도들의 활동과 수호천사에 대한 이야기 등 성서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내용들이 외경에 들어 있다.

 

 

교회 전례에도 큰 영향

 

또한 외경 문헌은 교회의 전례, 중세의 예술과 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들과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과 영화 ’쿼바디스’ 등이 모두 외경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외경의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외경 작품들은 초대 교회의 여러 전통과 가치관과 윤리의식 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외경 문헌들은 우리로 하여금 2천년 전의 초대 교회로 여행을 떠나도록 해주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성서를 교과서라고 한다면, 외경 문헌은 교과서의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구약 외경은 그 내용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되며(묵시 문헌, 유언, 구약성서의 연장, 지혜 문헌, 기도와 시편), 신약 외경은 네 종류로 분류된다(복음 외경, 서간 외경, 사도행전 외경, 묵시록 외경).

 

[가톨릭신문, 2002년 10월 20일, 노성기 신부(광주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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