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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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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과 가정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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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4 ㅣ No.1315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과 가정의 어려움 (1)

 

 

저출생, 고령화, 가족의 해체

 

우리나라 출산율이 매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서 꼴찌입니다. 2020년 기준 OECD 평균 출산율은 1.59명이고,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일본이 1.33명입니다. 우리나라는 0.84(2020년)명, 0.81(2021년)명이라고 합니다. OECD 내 출산율이 1.0 미만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인구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벼랑 끝에 몰려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 현상 역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의 인구 고령화는 지방 소멸을 예감케 합니다. 가정의 해체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결혼 연령의 상승과 비혼과 이혼의 증가는 가족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문화평론가 정지우는 다음과 같은 음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가족’이 모든 걸 해결해온 나라였고, 이제 가족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사회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 가족이 뭉쳐서 자식 집을 사주고, 손주를 돌보고, 가족 이기주의로 사교육 경쟁을 하던 것이 우리나라였으나, 가족이 흩어지고 무너지자 사회는 홀로 선 정글이 되었다. 대부분은 집을 살 수도 없고, 아이를 맡길 곳도 없고, 교육비 무한 경쟁에 뛰어들 재력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태어나지 않는다.”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각자도생만이 심화되고, 불타는 숲에서 마지막 나무를 찾으려는 날짐승들처럼, 청년들은 그나마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코인 등 재테크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년에는 다시 출생률은 0.6명, 내후년에는 0.5명, 몇 년 뒤에는 0.1명까지 줄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BTS나 오징어게임 같은 한류 콘텐츠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장 찬란한 시기에, 가장 화려한 빛을 내며 몰락하고 사라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혼인과 가정의 통계적 현실

 

결혼과 가정의 구성을 통해 인류는 지속과 번영을 유지해왔습니다. 교회 역시 혼인과 가정의 형성은 하느님의 축복임을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혼인과 가정의 현실과 운명은 점점 비관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혼인하는 이들이 감소하고 있으며, 혼자 살거나 또는 가정을 이루지 않고 동거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사랑의 기쁨’, 33항).

 

한국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전년보다 2만1000건(9.8%) 감소했다고 합니다. 혼인 건수는 2012년 이후 10년 연속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전년보다 각각 0.1세, 0.3세 높아졌다고 합니다. 2021년 이혼 건수는 10만2000건으로 전년보다 5000건(4.5%)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혼율의 저하는 좋은 현상이지만, 그것은 결혼 건수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에 기인할 것입니다. 통계를 통한 가정의 현실을 보면, 그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통계 너머의 현실적 내용을 고려하면, 오늘의 혼인과 가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혼인과 가정의 위기는 단순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혼인과 가정의 위기가 발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회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도 있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문화가 초래하는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문화

 

근대에 들어서자 인류는 모두가 평등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또는 외형적으로는, 인종과 민족과 성별과 계층의 차별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내재적으로는 여전히 차별이 실재하며 완전한 평등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튼 근대 이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유성과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 자신의 욕망을 중요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실,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건강한 개인주의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자칫 배타적 이기주의로 변모할 위험이 늘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타락하면, “오로지 대접받는 데에만 관심 있는 고객으로 시민들을 만들어 버릴 수”(‘사랑의 기쁨’, 33항) 있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타자와의 관계성과 공동체적 목적과 지향을 상실한, 왜곡된 개인주의는 사회 안에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낳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 왜곡된 개인주의의 폐해를 강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는 가정의 유대를 왜곡시켜 결국 가정의 구성원들을 고립된 개체로 간주해 버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자기 욕망에 따라 자아가 형성된다는 생각도 존재합니다. 소유와 쾌락에 사로잡힌 지나친 개인주의 문화가 야기하는 긴장은 가정 안에 편협함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사랑의 기쁨’, 33항).

 

다른 한편으로, 고유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다양한 재능과 자발성을 북돋울 수 있는 개성주의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성주의 역시 올바른 방향을 놓치고 변질되면, 자칫 왜곡된 개성주의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 약속을 회피하는 태도, 타성에 젖어 자신 안에 고립되는 태도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33항).

 

결국 왜곡된 개인주의는 타자와 관계 맺기 자체를 어렵게 하고 혼인의 결합을 힘들게 합니다.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가정은 그저 잠시 머무는 장소가 되어,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보일 때에만 또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때만 도움이 되는 곳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결속은 개인의 불확실한 바람과 상황에 달려 있게 되는 것입니다”(34항). 결국 “배타성과 안정성에 대한 약속을 특징으로 하는 혼인의 이상이 개인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서 깨어지게 됩니다”(34항).

 

 

젊은 세대의 혼인과 교회

 

경제적 이유와 문화적 요인들이 젊은이들을 점점 결혼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 타자와 관계 맺기가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는 문화 세태 속에서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또한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관념의 경향, 다른 부부의 실패를 보며 그 실패를 피하려는 바람,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결혼이] 그저 제도적 관료적으로만 다루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사랑의 기쁨’, 40항)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젊은 세대에게 결혼을 더 어렵게 합니다.

 

결혼을 포기하고 거부하는 젊은 세대의 세태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의 권위로만 결혼의 규범을 강요하는 것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사랑의 기쁨’, 35항 참조). 젊은 세대가 혼인과 가정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교회가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35항). 젊은 세대를 향한 교회의 책임과 노력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할 시간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혼인과 가정의 어려움 (2)

 

 

교회의 자기반성 – 하나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은 때때로 너무 원칙적인 측면을 강조해왔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할 원칙과 입장은 있습니다. 하지만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 이상적이고 규범적이어서 정작 현실 안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오늘의 상황을 야기하는 데에 역설적으로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사랑의 기쁨’ 36항). “우리는 혼인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신학적 이상, 곧 실제 가정의 구체적 상황과 현실적 가능성에 동떨어진 것으로 제안하였습니다”(36항).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혼인의 목적은 자녀 출산과 사랑의 완성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주로 자녀 출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혼인의 목적은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두 인격이 사랑을 통해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서로를 완성해가는 일입니다. 또한 혼인 생활을 통해 상호 돌봄을 배우고 사랑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자녀 출산은 사랑의 완성 속에서 발생하는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즉, 자녀 출산은 사랑의 결실이지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탄생의 고귀함을 강조하려는 교회의 의도가 자칫 혼인의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을 놓치게 할 위험을 낳았습니다.

 

 

교회의 자기반성 – 둘

 

혼인과 가정은 하느님의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혼인은 “평생 짊어지고 가는 짐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완성의 역동적인 길”(37항)입니다. 혼인과 가정이 갖는 하느님 은총의 측면을 교회가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습니다. 혼인과 가정의 의무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은총에 열려 있도록 권장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리적, 생명윤리적, 도덕적 주제들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정에 충분한 도움을 주고 부부 유대를 강화하며 부부가 함께 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37항).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혼인 속에서 발생하는 유대와 연대와 환대의 미덕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의 혼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난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혼인과 가정이 갖는 은총의 차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혼인과 가정의 갈등과 문제에 대해 추상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방어적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고는 참된 행복의 길을 적극적으로 알려주지는 못하면서 타락한 세상에 대한 비난을 더하는 데에 사목적 힘을 낭비합니다. 많은 이들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메시지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모습을 분명하게 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38항).

 

 

혼인과 가정의 현실적 어려움 – 개인주의

 

혼인과 가정의 어려움, 부부관계에서 사랑과 헌신의 어려움은 여러 요인들에 의해 촉발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아마도 현대 사회에 뿌리 깊은 개인주의 문화일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중요시하고 타자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은 무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보다는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를 소비합니다. “우리는 애정 관계를 물건과 환경을 대하듯이 합니다. 모든 것은 쓰이다 버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저마다는 이용하고 버리고, 낭비하고 파괴하며, 쓸 수 있을 때까지 착취하고 쥐어짭니다. 그리고 나서는 떠나 버립니다”(39항).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 관계의 형태는 돌봄과 헌신과 상호성장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관계는 지속적이기보다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성향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이고 이기적인 개체로 살아가는 데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개인주의 성향과 문화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과 필요합니다. 또한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사회에 스며들 수 있도록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적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사회 계약의 형성하기 위해 오늘의 교회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하고 성찰할 일입니다.

 

 

혼인과 가정의 현실적 어려움 – 경제적 문제

 

오늘날 결혼은 점점 고대의 유물이 되거나 부유한 젊은이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부족하기에 가정을 꾸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40항). 오늘의 청년 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입니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설혹 결혼한 젊은 부부들이라 할지라도 육아와 양육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출산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사회적 문제점 안에는 경제적 이유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점점 더 고착화되어서 더 이상의 새로운 기회를 잘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세계에서 가난한 젊은 세대가 혼인과 가정을 일구어가기가 점점 어려운 시절입니다.

 

사회적 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혼인과 가정을 회피하는 젊은 세대의 풍조를 감소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가 혼인과 가정을 이루어 자신의 완성과 삶의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는 세상의 정의를 향한 노력을 소홀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인과 가정의 문제는 단순히 문화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혼인과 가정의 현실적 어려움 – 향락주의

 

현대는 이성보다는 감정과 욕망이 우선시 되는 세상입니다. 감정과 욕망은 늘 변덕스럽습니다. 감정과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새로운 연인, 새로운 동거, 새로운 혼인”(41항)으로 나아갑니다. 현대인들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것을 불편해합니다. 또한 현대는 성의 혁명 시대입니다. 사랑과 관계의 완성으로서의 성보다는 욕망과 본능으로서의 성을 강조합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문화는 육체의 성마저도 상품화합니다.

 

교회는 “인터넷의 오용으로 촉진된 포르노의 확산과 육체의 상품화에 대한 우려와 매춘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개탄스러운 처지에 대한 우려”(41항)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 혼탁한 시대에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떤 신앙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1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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