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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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유익한 심리학: 사울과 다윗의 건강한 경계선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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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1 ㅣ No.1121

[유익한 심리학] 사울과 다윗의 건강한 경계선 인식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시대에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이 발탁되어 중용된다. 발탁된 다윗이 출전하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1사무 18,6 참조)하여 다윗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사울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다윗에게 당할 위험에 처한다. 동굴에 들어온 사울을 처단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다윗은 “주님께서는 제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가 아니시냐?”(1사무 24,7)라며 오히려 부하들을 말린다. 사울은 모든 진상을 알고 난 후 궁으로 돌아가고 다윗은 자기 부하들과 자기 길을 간다(1사무 24,23 참조).

 

사람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될 선(경계 · boundary)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경계선(boundary line)이라 한다. 경계선에 대한 인식과 지각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대인관계 등 사회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본인은 자기 내적 모호함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외적으로는 불필요한 갈등과 불편을 초래하여 건전해야 할 다양한 인간관계를 해치게 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유별(有別 · 구별함이 있어야)하고, 부부 사이에도 유별하며, 형제 사이에도 유별하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유별하고 친구라 해도 유별하다. 유별(有別)함과 경계선을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가 아니시냐?’며 사울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 지위에 더는 도전하지 않았다. 사울 역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이답게 다윗의 뜻을 높게 평가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겨누었던 칼을 거두고 돌아서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간다.

 

나르시스, 나르키소스(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연모하다 빠져 죽어서 수선화가 된 미모의 청년)에서 유래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강한 자기애(自己愛 · 자기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생기는 자기 애착)로 자신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병적인 정신상태로 나타난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사랑’과 달리 자신을 해친다.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어쩌면 아담의 범죄(하느님의 영역에 대한 침탈)도 나르시시즘의 형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갖가지 나르시스적 태도와 행위를 볼 수 있다. 이미 낡은 표현이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어느덧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처지가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았던 청년들이 지금은 ‘너의 살길은 네가 찾아라!’라는 듯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다. 각자도생은 사람 사이의 경쟁을 심화하여 더욱 나르시스적 태도를 강화한다. 누구도 나를 위해 이해해 주거나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이해해 주고 알아줘야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압하라. 결국 승리자가 인정받고 대접을 받는다.’라는 식의 사고가 팽배(澎湃)하다. 이런 사회에서 건전한 경계선이 유지될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성이 심하게 훼손당한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쉽게 유린당한다. 힘 있는 자들만의 세상이 되어간다. 명분도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무신론은 신성 파괴적이다. 점점 세상은 ‘기름 부음 받은 이’라 하여 존중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형제간에도 유별함이 존중되지 못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고립되어 간다. 길을 모르면 되돌아갈 수 없다.

 

[2023년 4월 30일(가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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