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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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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2 ㅣ No.32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상)

 

 

창설과 영성

 

1946년 4월 21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무아(無我) 방유룡 신부에 의해 창립됐다. 

 

한국인의 심성과 순교자들의 피로써 증거한 삶을 실현하고자 했던 방신부는 1900년 돈독한 천주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와 영국공사관 통역관이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방신부는 버릇없고 교만한 행동 때문에 신학교에서 '종로깍쟁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방학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방신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신학교 생활에 임했고, 수사처럼 침묵과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 때문에 동료신학생들이 '방수사'라고 부를 정도였다. 완덕의 삶을 살기 위해 수사가 되길 결심한 방신부는 일제 치하에서 잃어버린 민족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한민족의 정서에 맞는 수도회를 만들고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하게 됐다.

 

한국교회의 신앙선조인 순교자들의 영성을 산다는 목적으로 수녀회를 창설한 방신부는 이어 53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57년 복자수녀회 3회를 세웠다. 또한 1962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공동체인 기혼여성들을 위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도회를 창설,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대가족을 이뤘다. 이후 방신부는 57년 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86년 선종할 때까지 수도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무아(無我)이신 그리스도를 따른 삶을 살았다.

 

순교복자회의 영성은 자생할 수 있었던 한국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자들의 신앙에 근거한다. 방신부는 서양의 뿌리깊은 그리스도 사상을 동양사상의 그릇 안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영성을 담아내고 있다.

 

순교복자회의 영성 '면형무아(麵形無我)'는 밀떡이 모두 녹아 없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체를 이루듯 자신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경지를 뜻한다. 즉 면형무아는 자기비움의 정신,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삶이다. 이것은 곧 순교자들이 죽음으로서 자기를 버리고 신앙을 증거한 것 처럼 오늘 우리 삶 안에서 자기를 비우고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다. 방신부는 이 '면형무아'에 도달하기 위해 침묵(沈默)의 길, 사랑의 대월(對越), 점성정신(點性精神)을 강조했다. 이는 어떤 특정 덕행이나 봉사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덕행이나 봉사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면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점성정신'은 일상 안에서 순간 순간 성화한다는 정신이다. 방신부는 만물의 기초가 되는 점(占)의 성질처럼 영성생활도 점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당부했다.

 

방신부는 또 작은 일, 작은 순간을 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 앞에 정성스러운 태도로 대령하고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만나는 것, 일을 정성스럽게 처리하고 모든 행동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점성정신이 있어야 침묵을 하게된다. 침묵은 빛이다. 이 빛은 이 양심을 비추는 것인데 영혼의 눈도 있고 육신의 눈도 있다. 부활초는 큰 빛이요, 우리는 작은 초를 가지고 불을 붙인다"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침묵을 강조한 방신부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그분과 마주본다는 의미를 지닌 '대월'을 통해 정화된 영혼이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영성에서 볼 수 있듯이 순교복자회는 한국적 토양 위에 그리스도교 영성을 실현하고 있으며, 순교자의 정신을 매순간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1년 7월 15일, 이진아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하)

 

 

- 본원 건축물 중에서 본부와 성당이 있는 면형동 정경(사진 위). 총원장 이숙자(아오스딩) 수녀가 멕시코 분원을 방문,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했다.

 

 

영성의 실현

 

"수도생활은 무엇인가? 사(事), 언(言), 행(行)에 있어서 나쁜 생각, 나쁜 마음이 일어나면 자꾸만 물리치는 공부를 하는 것이요, 또 결점에 떨어졌으면 즉시 통회, 보속, 정개를 거듭하는 것이다. 앉아서 기도하고, 시간이나 지키고, 말 안하는 침묵이나 지키고, 그저 조용하게 세속이 귀찮아서 피해서 사는 곳이 아니다…" - '영혼의 빛(방유룡 신부 어록집)'.

 

하느님 뜻에 맞도록 노력하고 협조하는 삶이 수도생활이라고 정의 내린 창설자 방유룡 신부의 가르침은 수도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하느님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방신부는 큰일을 행할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방신부는 인(人), 사(事), 물(物), 현상, 모욕, 천대, 무시, 미소한 일, 범상한 일, 십자가 등이 하느님 창조에 협조할 수 있는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또 어떤 것이든 행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하느님을 위해 하는 말 한마디, 한번 웃는 것 등도 하느님 성화사업에 큰 협조가 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순교복자회의 수도생활 즉,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실천은 점성정신으로 가능하다. 이 정신은 무슨 일이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책임있게, 정확하게, 빈틈없이, 알뜰하게 하는 습관을 익히는 덕행으로 수도생활의 가장 근본이 되고 있다. 즉 일상이 수도생활의 기반이 되고 출발점이 됨을 말한다.

 

방신부는 수도생활의 실천에 있어서 모든 것을 끊고 벗어나서 하느님 안에서 자아가 철저히 무(無)가 되도록 침묵할 것을 당부한다. 이같은 침묵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분심잡념과 사욕(邪慾) 등을 떨쳐내는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진다.

 

방신부는 "대월생활이 없는 생활은 수도생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욕과 죄악이 가득한 영혼이 빛날 수 있도록 성의를 갖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점성정신, 침묵, 대월을 통해 철저히 비움의 삶을 살 것을 가르치는 순교복자회는 특수 사도직으로 인한 카리스마의 실현보다 일상 안에서 작은 실천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순교복자회는 수도회의 고유영성인 면형무아의 정신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본당사도직에 충실하고 있다. 전국 14개 교구 60개 본당에서 전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스페인, 멕시코 등 해외선교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원주민 선교를 펼치고 있으며 현지인 지원자가 입회, 외국인이 면형무아의 영성과 순교영성을 실천하고 있다.

 

성모자애보육원, 성모장애인종합복지관 등 사회복지분야 사도직과 도시빈민사도직은 자기 비움의 영성을 가난한 사람들과의 생활 안에서 실천토록 하는 대표적인 사도직이다.

 

신앙 선조들의 순교 영성을 현재의 일상에서 살고자하는 이들은 20년전부터 관상공동체인 '대월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 진천 백곡면에 위치한 대월의 집은 현재관상생활에 주력하고자 하는 수도자 7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수도회는 관상을 통해 더욱 풍부해지는 면형무아의 영성을 키워가기 위해 앞으로 20여명 정도의 수도자들로 이뤄진 규모있는 관상공동체를 형성할 계획이다.

 

한국교회의 순교역사와 순교자들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순교복자회는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을 비롯해 절두산, 솔뫼, 남양, 배티 등 순교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는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순교자들의 유물 수집과 전시 등을 관리하고 있으며 여러 성지에서는 성지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교회사 연구, 한국전통문화연구에도 충실하며 순교자현양 관련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순교복자회는 순교정신과 형제애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기끼어 투신한다는 정신아래 이밖에도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천안 복자여자중고등학교, 17개의 유치원, 어린이집, 특수교육 등 교육사도직에서도 많은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수녀원은 인천 성모자애병원을 비롯한 의료사도직, 교정사도직, 독일 성프란치스코 양로원 등도 맡고 있으며, 한마음청소년수련장, 수원가톨릭대학교 등에도 수녀들을 파견하고 있다.

 

540여명(수련자 포함)의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오늘도 더 멀리, 더 많은 이들에게 면형무아의 삶을 전하기 위해 매순간 일상에 충실하며 기도와 함께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1년 7월 22일, 이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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