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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새로 보는 교회사20: 탁발수도회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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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6 ㅣ No.174

[새로 보는 교회사 20] 탁발수도회의 등장

 

 

탁발 수도회 특징

 

탁발수도회 또는 걸식수도회로 일컬어지는 수도회는 13세기 초에 생겨났다. 이전까지 유럽의 수도회는 거의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시토나 클뤼니 등 이름이 다른 수도회들은 몇 가지 관점과 규칙을 적용하는 점 그리고 실천면에서 차별성을 가지지만, 근본정신과 규칙은 유럽 수도회의 대부인 베네딕토 성인에게서 비롯한다.

 

이제 태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원은 하느님과 복음을 위한 정신이야 같겠지만, 활동영역과 정신은 이전과 많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많은 수도회가 창설되었는데 이는 항상 시대요구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면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선교를 위한 남녀 선교 수도회가 창설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이라든지, 20세기에 와서 홍보를 통한 복음전파를 위한 수도회 창설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요구에 부응함으로써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 영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걸식수도회도 바로 이러한 시대 요구에 적절히 부응한 것이다.

 

이러한 탁발수도회가 이전 수도회와 다른 점은 수도자들을 가리키는 단어에서부터 나타난다. 먼저 이전 수도회에서는 수도자들을 ‘monk(영)’ ‘monaco(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리스 말에서 유래된 ‘monachus(라틴어)’에서 유래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은수자나 봉쇄관상수도회의 수도자들을 모두 가리켰다. 따라서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에 적용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영어에서는 대체로 자세하게 구별하지 않고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의 모든 남성 수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또 비그리스도교에서는 수도하는 사람(불교의 스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탁발수도회의 수도자들은 ‘Friar(영)’ ‘Frate(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형제’라는 뜻의 이탈리아 고어(古語)에서 나왔다. 그 뒤 가난을 공동체의 규칙으로 하는 성직자 중심의 전체적인 조직을 가진 수도회의 수도자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들 ‘형제(Friar)’ 수도회는 검정 수도자(Black Friars)인 도미니코회, 회색 수도자(Grey Friars)인 프란치스코회, 그리고 백색 수도자(White Friars)인 가르멜회와 아우구스티노회 등이 있다.

 

규칙과 수도회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는 가톨릭 수도자를 수도승이라고 할 것을 주장하면서 수도승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이러한 규칙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일반인들한테 혼란만 초래할 것 같다. 따라서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사람들을 규칙과 생활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사람들을 부를 때는 우리말로 굳어진 수도자 또는 수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탁발정신의 여러 수도회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한 각기 고유한 특색을 가진다. 이러한 탁발수도회가 이전 수도회와 어떻게 다른지 그 특징을 알아보겠다.

 

 

사제단 중심

 

모든 탁발수도회는 처음부터 서품된 사람이 중심이 되었는데, 그것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이었다. 개인의 수행을 중심으로 완덕을 추구하는 이전의 수도생활로는 이단과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사목을 등한시하고 화폐경제의 성장에서 생긴 부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당시 성직자 사회를 개혁하기 어려웠다. 이를 위해서는 사제들이 필요했다. 교황들 역시 탁발수도회의 수도자들이 설교하고 성사를 집행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해서 평신자들이 순회설교하는 일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요인들을 없앨 수 있게 되었다.

 

 

중앙집권 조직

 

이전의 수도원들은 원장을 중심으로 각 지역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데 반해 탁발수도회는 강력한 중앙집권 조직이었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활동을 해야 할뿐 아니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결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수도회 총장과 그 밑에 관구장을 두고 관구장 밑에는 각 지구 지구장이 있었다. 이들은 규칙적으로 총회를 열었고 이 총회에서 수도회의 모든 사안을 결정하였다. 여기서 결정한 사항은 곧 수도회의 법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 특히 개혁 교황들은 이 조직을 이용해서 쉽게 임무를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공동체의 가난

 

과거의 수도원들은 수도자 개인의 가난한 삶을 요구하고 또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수도회 자체는 희사와 기부금과 땅에서 나오는 세금과 수도자들의 노동으로 인해 커다란 부를 누렸다. 또한 많은 특권을 누리기도 하였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정치적 권력도 향유하였다. 이제 탁발수도회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땅을 거부하고 모든 특전과 가문에서 후원하는 힘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가난한 생활을 추구했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는 가난이 수도회 자체의 의무였기 때문에 수도자들 몇몇은 노동으로, 몇몇은 이름 그대로 탁발을 하며 살았다. 이런 모습은 당시 사회에 신선하고도 큰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는 화폐유통과 함께 상업이 융성하였고 도시에서는 모두가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던 때였다. 이때 새로 등장한 수도회의 거지 수도자들이, 바로 이런 도시에서, 돈을 거부하고 신자들이 주는 애긍으로만 산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새로운 모습이었다. 또한 공동체의 가난은 구성원의 형제애에 큰 도움이 되었다. 소유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수도자들은 완전히 똑같은 처지였다. 차별이 없는 회원들 사이에 공동체 정신이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공동체가 커지면서 이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된다. 그것은 도시에도 수도원을 지어야 하고,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노동이나 구걸로 어려워서, 또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유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뒤에 거지 수도회의 재산이 얼마인지 하느님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게 되었고, 그들의 사부들이 요구하는 철저한 가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들의 강력한 요구는 곧 교회의 또 다른 문젯거리가 된다.

 

 

사목을 위한 특권

 

재속 성직자들의 사목을 독려하고 신자들의 메마른 영성에 물을 주고 개혁을 위해서 교황들은 이들 탁발수도회 수도자들한테 특권을 주었다. 교구장의 재치권에서 면제를 받음으로써 교구 안이나 본당구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은 차후 본당조직을 흩뜨려놓고 본당신부나 주교의 영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큰 말썽을 일으키게 된다. 이들 탁발수도회는 그 조직이 차츰 커지면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여기저기서 본당 성직자와 충돌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당시 신자들도 열성적이고 가난하게 사는 탁발수도자들을 선호했던 이유도 있기는 하다.

 

 

가난한 생활과 제3회

 

거지 수도자는 수도회에 들어올 때 어떤 재산도 가져오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완전한 가난을 실천하는 데는 하느님의 보살핌만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일정한 거처나 식량을 마련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저녁을 준비하지 못한 채 설교여행을 하고 그리고 잠잘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동가식 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거지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추구한 삶은 바로 사도행전 2장 42절부터 48절에 나오는 초대공동체의 생활이었다. 재산을 완전히 공동소유한 그들은, 예수님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듯이 자신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고 믿었다. 진정한 예언자나 설교자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생활로써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으로 흩어져나간 장소는 한계가 있었고 온 천하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시였다. 그들은 한 도시를 선택해서 그 도시를 천상의 예루살렘과 같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평신도들의 형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제3회가 탄생한다. 탁발수도자들을 따르고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들을 모아 단체를 형성하였다. 제1회는 남자 수도회이고 제2회는 여자 수도회이며 제3회는 수도회에 들어올 수 없는 기혼 남녀들을 수도자와 같은 수도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정을 이루고 재산을 지니며 세상에 살면서 제1회의 지도를 받으며 탁발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기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속죄활동을 하는 단체였다. 이들 3회 회원들을 통해서 사회를 복음화하는 노력을 했다. 이들 3회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신자들이 영적 생활을 하도록 이끌었다. 이 3회는 모든 탁발수도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제2회 회원은 모임 때나 임종 때에는 수도자 차림을 한다.

 

다음에는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를 중심으로 이들 각 수도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경향잡지, 1995년 8월호, 구본식 신부(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관장,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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