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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시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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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2 ㅣ No.29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시녀회 (상)

 

 

1935년 삼덕당의 여섯 정녀와 남 루이 델랑드 신부.

 

 

창설과 역사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 28).

 

1935년 12월 8일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리 자그마한 시골본당. 맑은 눈빛의 여섯 동정녀들은 차디찬 겨울바람을 무색케하는 뜨거운 열의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장 낮은 자리, 이들이 택한 몫이었다. 그리고 6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500여명의 회원들이 한결같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를 채우는 삶을 엮어가고 있다.

 

예수 성심 시녀회(총원장=이광옥 스콜라스티카). 「시녀」는 「가까이에서 시중드는 계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시녀」이기를, 시중들기를 자청하고 그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는 이들이 모인 수도공동체가 바로 예수 성심 시녀회다. 이들은 예수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며 착하고 충실한 종으로, 언제나 주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 돕는 '주님 손 안에 연장'으로 대기하고 있다.

 

예수 성심 시녀회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본당일을 도우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모인 여섯명의 동정녀들로부터 시작된다.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남대영) 신부는 이들을 위해 청빈·순명·정결을 의미하는 「삼덕당(三德當)」이란 작은 공동체를 마련했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이자 사회사업가로 활동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세상의 모든 사람, 특히 가장 불쌍한 사람들 안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게 됐다. 1923년 6월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델랑드 신부는 1934년 4월 16일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본당에 부임하자 마을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무료 진료소를 마련했다. 얼마 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이들을 찾게 된다.

 

1936년 초 길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 한분과 두명의 어린이를 데려다 보살피면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확장해 나갔다. 46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성모 자애원을 공식적으로 설립했고 희생과 봉사의 뜻에 따라 보육원, 재활원, 양로원, 무료 진료소, 급식소, 나환우 정착촌 등으로 사회복지사업은 널리 전개됐다. 일제의 탄압 아래 옥살이와 배를 곯는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이 컸지만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손길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희생과 봉사의 사업에 동참하는 지원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노인, 어린이, 불구자들이 늘자 공동체는 창립자 델랑드 신부를 따라 영천본당을 떠나 포항 송정으로 터를 옮긴다. 포항으로 옮긴 지 3개월만에 6?5 전쟁을 겪게 되고 갑자기 불어난 전쟁고아들도 받아들여 할 일은 더욱 늘어났다.

 

전쟁 중이던 52년 9월 8일 대구 대목구로부터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수도회 인준을 받고 7명의 동정녀들이 첫 수련을 시작했다. 63년 9월 14일에는 서정길 대구 대교구장이 공식적으로 회헌 승인을 반포했고, 바로 다음날 13명의 회원이 첫 종신서원을 했다. 65년 3월 25일에는 첫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총원장에 김장주(벨라뎃다)수녀를 선출했다.

 

67년, 수녀원 부지가 포항제철 부지로 선정됨에 따라 69년 1월 포항 대잠동으로 수녀원을 이전하게 됐고, 수련소는 대구시 대명동으로 옮겼다. 수녀원을 이전하면서 수녀들이 직접 나서 공사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경비절감을 위해 송정 수녀원의 철근, 목재 등을 비롯해 깨진 벽돌까지도 포항으로 날라 새 수녀원을 짓는데 이용하는 모습에 포항시민들로부터 '지독히 알뜰한 사람들' '천원짜리 일군들'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88년 4월 9일 제6차 총회에서는 본원과 모원을 분리하기로 결정, 모원은 포항 대잠동에 그대로 두고 본원은 92년 3월에 대구로 이전했다. 또한 수도회의 이름을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에서 「예수 성심 시녀회」로 바꾸게 된다.

 

그동안 성모 자애원은 1000여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양육했으나 전쟁고아는 없어진 지 오래됐고, 경제성장과 산아조절 등으로 기아의 발생이 급격히 줄어 77년 6월 3일에 고아들을 돌보던 자리에 현 「포항 성모 병원」을 세우고 의료봉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게 됐다.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13일, 주정아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시녀회 (중)

 

 

예수성심시녀회 대구 본원 전경.

 

 

영성

 

"주님 손 안에 연장(TANQUAM INSTRUMENTUM IN MANU)". 이를 모토로 예수성심시녀회의 수녀들은 매순간 하느님께 응답해 더욱 많은 곳에서 쓰여질 수 있도록 늘 깨어 지낸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여러 속성 중 '자비하신 하느님'을 보여주고팠던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신부는 이들을 예수성심께로 인도하고자 '예수성심 시녀회'를 창설한다. 이에 수녀들의 소명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 곁에서의 희생과 봉사로 엮어진다.

 

예수성심 시녀회의 기본 영성은 하느님의 자비하심 안에서 이뤄진다.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수 성심'. 시녀회는 버림받고 가장 소외된 이웃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소명에 따라 살아간다.

 

'주님 손 안에 연장'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시녀회가 가지는 모습은 '가장 작은 자'이다. 창설자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신부는 늘 형제적 사랑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희생과 봉헌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수녀들은 서로를 위해 발자국 소리를 죽이는 것부터 조용히 문을 여닫는 등 남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은 아주 작은 것부터 먼저 배려하도록 노력한다. 수녀회 밖에서의 활동도 남이 하기를 원치 않는 일, 누구나 하기 어렵고 꺼리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여 실천하며 이것이 하느님께 대한 경건한 봉사임을 자각한다(회헌 4조).

 

예수성심시녀회의 영성강화 내적생활 성숙을 위한 노력으로 또한 돋보이는 것은 지역모임이다. 1972년부터 전국에서 각 지부(지금의 지역 모임)별로 모임을 가지고 피정 및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해 영성과 친교를 다져왔다. 현재는 전국 17개 지역에서 매달 모임을 갖고 있다. 각 지역모임에서는 생활 실천 주제가 공동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4년에 한번 열리는 총회의 내용을 구체적 주제로 나눠 매달 지역 모임 시 제시해, 다음 모임 때까지 그 주제를 살고 묵상하게 된다.

 

영성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실현한 형제애와 가난이다. 예수성심 시녀회 소속 수녀들은 입회 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수도회 수도3회에 속하게 된다.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었던 루이 델랑드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성직자를 돕는 일들이 가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이웃을 사랑하며,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프란치스칸적인 삶과 가장 유사하다고 느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따르던 정녀들에게도 가난하면서도 항상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는 믿음으로 이끌었다. 당시 한국에는 성 프란치스꼬회 수도자들이 파견돼 있지 않아 델랑드 신부가 직접 정녀들을 3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수도복을 줬다. 또 정식 수도회로 인준을 받고 난 뒤에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해 수도 3회원으로서의 삶을 함께하게 됐다.

 

시녀회는 또한 성모신심에 비해 예수성심에 관한 신심이 활성화되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신자들에게도 예수성심의 사랑을 알리고 가르치는 데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 구체적 방법의 하나가 '예수성심 봉사회'이다.

 

예수성심 봉사회는 시녀회의 영성을 나누기 위한 제도의 하나로 영성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일상생활 안에서 예수성심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삶의 자리 곳곳에서 예수성심의 향기가 풍기도록 사는 것. 예수성심 봉사회 회원수는 10개 교구 362명(2001년 3월 현재)으로 올 6월이면 첫 수련자를 배출할 예정이다.

 

봉사회의 우선적인 대상은 예수성심 영성을 사는 수녀들과 가장 가까운 그들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지원기 1년, 청원기 1년, 수련기 2년을 거쳐 서원을 하며, 매월 1회 모임을 갖고 수녀회의 역사와 영성 등을 교육받고 미사를 봉헌한다.

 

이들에게는 청원기 때부터 사회봉사를 하는 숙제가 지워진다. 시녀회는 여러 곳에서 사회복지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봉사회 회원들은 수녀회 소속 사회복지기관에서는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는 수녀원을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에 예수성심의 영성을 알리고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20일, 주정아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시녀회 (하)

 

 

사도직 활동

 

예수성심 시녀회는 '사람들이 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 부탁하기가 어려운 그런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행하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경건한 봉사임을 자각'(회헌 4조)하고 '가난하고 불우한 형제들을 섬김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예수성심의 사랑을 전한다'(회헌 3조). 

 

예수성심 시녀회의 주요 사도직 활동은 사제의 협조자로서 돕는 것과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대표된다. 이는 창설자 루이 델랑드 신부가 행한 무료 교육, 진료 등의 사목활동을 돕는 것에서 비롯됐다. 

 

예수성심 시녀회의 본당사도직 활동은 1955년 첫 전교 수녀를 파견한 이래 2000년 12월 말 현재 11개 교구 72개 본당에 수녀를 파견하는 등 그 봉사의 영역이 확장돼 왔다. 또한 예수성심 시녀회는 어려운 본당의 부담을 적게 하기 위해 2명의 적은 인원으로도 선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사회복지 사도직 활동은 1936년 초 길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 한분과 두명의 어린이를 데려다 보살핀 것을 시작으로 46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성모 자애원을 설립, 희생과 봉사의 뜻에 따라 보육원, 재활원, 양로원, 무료 진료소, 급식소, 나환우 정착촌 설립 등으로 널리 전개됐다. 현재 예수성심 시녀회는 장애인 시설인 마리아의 집과 루도비꼬의 집을 비롯해 부랑인 시설인 나자렛의 집, 평화농장, 뇌성마비 조기치료교육기관인 요한 바오로 2세 어린이집, 양로원인 엘리사벳 집, 노인전문요양원인 햇빛마을 등을 운영하며 봉사하고 있다. 또한 대구시립 희망원과 대구 본동 종합사회복지관, 서부종합사회복지관, 포항 장애인 종합복지관, 서울 중곡동 종합사회복지관 등 여러 복지관에 파견돼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의료 사도직으로 활동으로는 지난 77년 개원한 포항성모병원을 비롯해 대구 정신병원과 대구 가톨릭피부과의원 등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소임을 맡고 있다.

 

또한 포항 성심유치원과 대구 효성유치원을 비롯해 15개 본당 소속 유치원에서 유아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기타 대구 화원 교도소에서 교정사도직을, 서울대교구에서의 경찰사도직, 군종사도직을 통해 예수성심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들 사랑의 활동은 해외에서도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미국 휴스턴, 프랑스 파리, 일본 동경, 필리핀 마닐라의 한인본당에서 해외교포들을 위한 사도직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안내를 하고 있다. 또한 대만에서는 본당선교를 비롯해 장애아동 조기교육기관인 「성모성심 계지중심」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분원을 설립하고 95년부터 메리 루이스 몬테소리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급식과 진료도 함께 한다. 이밖에도 일본과 볼리비아에서의 활동 등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혼신을 다한다.

 

예수성심 시녀회는 특히 불쌍한 이들을 돕는 방법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어떤 이익이나 어떤 동기에서든지 인간적으로 보다 고상하다고 생각되는 일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결코 포기하거나 중지하지 않는다(회원 9조). 이러한 자세로 이들은 세상 구석구석에서 불쌍한 이들을 위한 빛과 소금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려운 일을 기쁘게 행함으로써 하느님 창조의 의미를 살려나간다는 겸손된 마음을 가지고 기꺼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변화에 발맞춰 각종 사도직 활동 전문화를 위해 자격증 등을 취득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합한 재교육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수련을 마친 수녀들 전원에게 신학원 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각종 재교육과 지역 모임을 통해 영성강화에도 힘쓴다.

 

「주님 손안의 연장」으로서, 겸손한 자세로 먼저 나서 봉사하는 예수성심 시녀회의 모든 수녀들. 오늘도 이들은 가난한 생활과 형제애 가득한 마음으로 불쌍한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데 온힘을 기울인다. 이 세상에 예수 성심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가톨릭신문, 2001년 5월 27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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