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203.....연중 제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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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2-02 ㅣ No.1975

연중 제4주간 수요일 - 짝수 해

2사무 24,2.9-17              마르코 6,1-6

2016. 2. 3. 이태원

주제 : 사람이 갖는 삶의 태도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있다는 마음을 질투(嫉妬)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질투라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려 함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대상이 나보다 못나고, 나보다 함량미달이라면 우리가 그렇게 하는 대상에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투의 대상은 나보다 어떤 면에서든지 나은 것이 있다는 뜻이고, 그와 같은 장점이 없는 내가 상대방을 헐뜯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을 질투하는 동네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신분과 형제들이 다 우리와 같은 동네에 사는데, 그가 어디서 무얼 얻었다고 특별한 일을 하느냐는 내용일 것입니다. 물론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질투했다고 해서 예수님이 보이시던 능력이 사라졌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질투를 드러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고향동네사람들의 질투를 느끼신 다음에, 기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특별한 일만 하셨다고 마르코복음사가는 전합니다. 그나마 기적의 행위를 보이신 것은 예수님이셨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와 비슷한 일이 있다면 세상에서는 우리가 찾아보기 힘든 일이 또한 질투를 당하는 자가 보일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좋은 면일 것입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을 찾아내는 것을 질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반성이고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그런 얘기가 하나 나옵니다.


신정국가에서 왕이, 자기가 다스리고 있던 백성의 수를 센다는 것은 왕이 신의 힘, 우리 신앙에서는 다윗임금이 하느님의 힘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고, 인간의 힘을 찾는다는 것이며, 그것을 깨달은 왕, 다윗은 하느님의 징벌을 청합니다. 하지만 자기 몸으로 그 잘못을 감당한 것은 아니고, 하느님의 손이냐 혹은 인간의 손이냐 하는 묘한 선택기준을 들어 다윗은 곤경을 빠져나갑니다.


7년 동안의 기근과 3개월간의 도피대신에 흑사병의 징벌을 청했던 다윗에게 하느님은 내리던 징벌을 중도에서 취소합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겪는 고통이 그만큼이면 충분했다는 얘기일까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인간의 딱함을 먼저 생각하신 것일까요? 그 자세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의 이러한 선처는 인간으로 하여금 또 다른 행동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오늘 독서에는 나오지 않은 내용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마음을 갖고, 여러 가지로 그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하는 것들이 지금 당장이나 미래에도 내 삶에 도움이 되기를 청하는 자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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