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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탄압받는 교회와 세계 교회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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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93

탄압받는 교회와 세계 교회의 연대

 

 

1. 꼭 소수라서, 약자라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5월 인도네시아의 한 가톨릭 주교는 정부가 말루쿠에서 종파 간 폭력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다른 나라로 피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말루쿠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섬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지만 이슬람 과격 세력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1999년 1월 이래 6,000명이 죽었다.

 

페트루스 카니시우스 만다기 주교(성심회, 암보이나 교구)는 정부가 그리스도인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면, 대규모 피난이 '인종 청소를 막는 최상의 해결책'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심지어 피신처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다고까지 말하였다. 실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폭력 사태를 피해 다른 섬으로 떠나고 있다. 지난해에도 만다기 주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말루쿠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법을 지키기 위해 국제 평화 유지군과 국제 조사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에 암본같이 작은 곳에 군인이 9,000명, 경찰이 2,000명이나 동원되었는데도 이곳의 치안을 지키지 못한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밝혔다. 또 만다기 주교는 이슬람 통일 개발당 소속인 함자 하즈 부통령이 구금된 지하드 지도자 자파르 우마 탈리브를 면회한 것도 비판하였다. 탈리브는 지난 4월 28일 암본 외곽 소야 마을에서 그리스도인 주민을 공격하도록 이슬람인을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그리스도인 10여 명이 죽었다. 만다기 주교는 이런 상황에 비추어 인도네시아의 기득권 세력은 말루쿠에서 종교 분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지역이나 보르네오섬 지역 등에서 벌어지는 종교 간, 종족 간 유혈 분쟁은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가 인구 밀도가 높은 자바섬의 자바족 등이 외곽 섬으로 이주하도록 장려하면서 시작되었다. 중앙 정부가 이들 이주민들에게 지원 정책을 베풀면서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두드러졌고, 이에 따라 소외감에 빠진 원주민들이 이주민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러한 비이슬람인 원주민과 이슬람인 이주민 사이의 경제적 갈등이 종교 간 갈등의 외형을 띠게 되면서 분쟁은 주류 이슬람인 가운데서도 하층민들을 자극하여 이들이 '지하드'를 외치게 되었다.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인도네시아 인구의 90%가 이슬람인이면서도 이들은 오히려 '이슬람이 그리스도교에게 압박받았다.'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과거 식민 종주국이던 포르투갈이나 네델란드가 그리스도교를 식민 지배를 위해 우대했을 뿐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 가운데 상당수가 이 나라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화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그리스도교=지배 세력', '다수 이슬람=피지배층'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 때, 이것은 '다수파가 소수파를 억압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몰아낸다.'는 논리도 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남한에서 그리스도인이 불교인보다 턱없이 적었던 해방 직후부터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었던 반면 '다수'인 불교의 석가탄신일은 수십 년에 걸친 불교측의 탄원 끝에 겨우 공휴일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권력을 좌우해 왔던 군대 안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은 한국전쟁 때부터 군종 목사와 신부 자리를 허용 받았지만 불교는 겨우 1967년에야 군종 승려 제도를 얻어낼 수 있었다. 당신이 불교인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겠는가?

 

 

2. 지하드는 성전인가?

 

지난 5월 21일, 자카르타에서는 그리스도인과 이슬람인 약 500명이 모여 인도네시아 상황에서 이슬람인과 그리스도인에게 '지하드'는 어떤 뜻인지를 토론하였다.

 

기조 발표자인 아마드 시야피 마아리프는 자카르타의 칼리마투라 이슬람 신학 연구소에서 열린 이 토론회에서, 지하드는 이슬람교의 근본 원리 가운데 하나이며, 보통 알라를 위한 '성전'이나, 알라의 말씀을 최고로 받드는 노력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지하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도네시아 제2의 이슬람 기구인 '무하마디야' 의장이다.

 

그는 7세기 초 이슬람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이슬람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무리였는데, 당시 비신자에 대항해 싸우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하드를 수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말하였다. 지하드라는 말은 코란에서 서로 다른 뜻으로 41번이나 쓰였으며, "싸움은 이런 여러 뜻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는 인도네시아 상황에서 이념과 종교, 민족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일치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지하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지하드를 싸움이란 뜻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의 지하드는 이 나라를 붕괴의 위기에 몰아넣은 부패와 위선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기조 발표자인 개신교측의 조시아스 렝콩 목사는 참석자들에게 지하드가 명사로 쓰일 때는 "노력과 분발, 열정, 부지런함, 고통이나 불행"을 뜻한다고 말하고, 동사일 때는 "모든 노력을 다해 애쓰다."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학자인 렝콩 목사는 여러 뜻을 지닌 지하드의 개념은 복음에도 나온다고 지적하고, "고뇌"(루가 22,44)와 "싸우다"(요한 18,36)를 예로 들었다. 그는 지하드의 성서적 개념이 사람들의 삶에 지침으로 쓰여야 한다고 제안하고, "이 개념은 건전한 영적, 도덕적, 윤리적 기반으로, 부패를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토론을 보자면 이슬람의 지하드는 유교의 성(誠)이나 불교의 극진(極盡) 개념 등과 맥이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교회가 아니라 돈이 당한다

 

지난 3월 인도 정부는 동북부 지역의 교회가 외국에서 받은 기부금 내역을 발표하였다. 이에 이 지역 가톨릭 주교들은 교회 기관에 돈을 요구하는 범죄자들이 꼬이게 생겼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토마스 메남파람필 대주교(구와하티 대교구)는 "정부가 기부금 내역을 발표한 것은 (교회에) 돈을 강요하는 반사회적 행태를 권장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고 말하였다. 이 지역에는 인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소수족 게릴라 단체들이 20여 개나 있는데, 이들은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사제를 납치하는 경우도 있고 '세금'을 거두기도 하는데,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나 사회 복지 시설은 상대적으로 돈이 많기 때문에 주요한 목표가 된다.

 

2001년 5월 15일에는 마니푸르 주에서 살레시오회 수련원에 괴한 두 명이 침입해 돈을 요구하다가 사제 2명과 신학생 1명을 죽였다. 과격파들은 가톨릭 학교 하나마다 50만 루피(우리 돈 1,300만 원)를 '세금'으로 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마니푸르 지역 가톨릭 교회는 돈을 요구하는 어떠한 협박에도 절대 굽히지 않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2000년 말에는 임팔 대교구의 한 본당 신부가 총에 맞아 죽었고, 지난 2001년 2월에는 마니푸르 주도인 임팔에서 한 교장 신부가 총에 맞았다.

 

한편, 마니푸르 주에 이웃한 나갈랜드 주의 한 가톨릭 학교는 지난해 회계 년도분 '세금'으로 100만 루피(우리 돈 약 2,600만 원)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갈랜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중앙 정부는 왜 그리스도교에 대한 해외 교회의 원조 내역을 공개했을까? 1998년 이래 집권하고 있는 인도 인민당은 힌두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이들은 '인도=힌두교'이며 이슬람이나 그리스도교 같은 종교는 '외래 종교=비인도'라고 보며 그리스도교 확대는 그만큼 힌두교인 축소라는 제로섬 사고 방식을 바탕으로 '선교'나 '개종'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인도에서 그리스도교는 일부 그리스도인 집중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주 소수 세력으로 주류 힌두 사회를 뒤흔들 힘은 없다. 그러나 가난한 인도인에게 서구 교회에서 보내는 막대한 선교 자금은 그 자체로 부럽고 또 그만큼 두려운 존재다. 힌두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돈으로 꾀어 개종시킨다.'라는 것이 당연한 상식처럼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외국에서 선교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고 들어온 자금도 '불법 개종'에 쓰이지 않도록 감시하는 갖가지 법규를 잇달아 만들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선교 자금을 일종의 '장기적 국가 전복 음모 지원금'으로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러시아 정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닌가?

 

지난 4월 19일 폴란드 출신인 저지 마주르 주교(이르쿠츠크 교구)가 폴란드에 잠시 갔다가 러시아로 돌아가려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비자를 압수당하고 쫓겨났다. 이르쿠츠크 교구는 러시아의 연해주, 사할린 등 시베리아 동부 지방을 관할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교구로서, 지난 2월 11일 정식 교구로 승격한 4개 교황 직할 서리구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교황청은 이 승격 조치가 "가톨릭인에게 사목적 지원을 늘리기 위한 정상적인 행정 절차"이며, "러시아 정교회가 자신의 전통적 관할 구역 밖에 사는 신자들을 위해 교구를 비롯해 다른 교회 조직을 세우려는 것과 똑같은 사목적 관심"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틀 뒤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알렉시스 2세 총대주교는 2월 20일로 예정되었던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카스퍼 추기경과의 회담을 취소하였다. 곧 이어 한 가톨릭 선교사 신부가 추방되었고, 4월에는 마주르 주교까지 쫓겨났다.

 

한편 지난 7월 초 러시아 정교회 외무 책임자 키릴 대주교는 교황청의 카스퍼 추기경과 러시아 가톨릭 교회의 타데우츠 콘드루시에비츠 대주교(모스크바 대교구)에게 편지를 써서 가톨릭 교회가 러시아인들을 개종시키려 한다고 불평하였다. 키릴 대주교는 마주르 주교가 러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고 공격하였다. 심지어 그는 수도회 이름에 '선교'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도회는 수상하며,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할 의도를 담고 있다고 말하였다.

 

유서 깊은 정교회 지도자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1,000년에 가까운 동서 교회의 대립이 그 배경이 되겠지만, '정교=러시아'라는 자의식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현실적으로도 소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 정교는 '정교=러시아'라는 논리와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사명과 이해 관계를 찾고 있다. '힌두교=인도'라는 인도와 '정교=러시아'라는 이곳에서 가톨릭이 '선교'와 '개종'에 대해 제한받고 의심받는 그 논리 구조는 정확히 일치한다. 인도와 러시아에서 가톨릭이 억제 대상이 되는 것은 '순일한 국가'를 위협하는 이물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5. 미신과 애국

 

지난 6월 27일 중국 동부 지방 원저우 교구의 총대리 천나이량 신부가 지방 종무국 관리들에게 끌려갔다. 그 뒤 그가 어디에 구금되어 있는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천 신부는 지하 교회 소속이었다. 지하 교회 인사에 대한 탄압, 전례 방해 등은 해마다 여러 차례 보고되고 있다.

 

현대 중국 이전 중국 사회에서 '백련교', '태평천국' 등 종교는 늘 정치적 격변의 한 주체이자 도구이기도 하였다. 또한 수많은 민중이 미신에 사로잡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 종교는 단지 집권자가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에 탄압하는 것만이 아니다. 근대 역사에서 그리스도교가 서구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여긴다. 가톨릭은 과거 일본 침략기에 만주국을 승인하고 일본 침략을 지지한 역사가 있고 또 지금은 교황청이 타이완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가톨릭 신앙이 제한받고 탄압받는 것은 단순히 '반종교'가 아니라 중국의 현대화 작업의 일부이며, 주권 보전을 위한 자위적 성격도 있다 하겠다. 중국 공산당은 봉건 중국에서 현대 중국을 이끌어 낸 계몽자, 선구자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사실 중국 국가 주석인 장쩌민은 얼마 전 자기가 성경이나 코란, 금강경을 곁에 두고 자주 읽는다는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중국의 정치 지도층은 무시무시한 사회주의 반교회론자가 아니라 매우 교양 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교회 탄압 문제를 풀려면 중국과 교황청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한편, 오랫동안 보편 교회와 교류가 부족했던 관계로 신앙은 열렬하되 신학적 소양은 떨어진다는 지하 교회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해외 교회가 많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 또한 대사회 봉사 활동을 활발히 펼침으로써 종교가 사회에 해가 되기는커녕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더욱 많은 중국인 사이에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6.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위원장이 받았던 박해

 

베트남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이 공산군에 함락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바로 이날 롱수옌 교구의 부이투안 주교는 롱수옌 대성당에서 겨우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교 서품을 받았다. 훗날 투안 주교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땐 무서웠다."라고 기억하였다.

 

그리고 사이공이 함락되기 겨우 7일 전에 당시 나트랑 교구의 누옌반투안 주교는 사이공 대교구의 부주교로 임명되었다. 당시 사이공 대교구 교구장은 반공으로 유명했던 고딘디엠 전 대통령의 형으로 사이공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교구장 유고'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누옌반투안 대주교도 13년 동안이나 옥에 갇혔다가 1988년에 석방되었지만 결국은 추방되고 말았다. 베트남 정부는 1994년에 그가 로마를 방문하도록 출국을 허가한 뒤 귀국을 금지하는 형식으로 그를 추방한 것이다. 투안 대주교는 로마에서 교황께 각별한 애정을 받으며 지내다가 마침내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975년 통일 이후 베트남 교회는 여러 신학교가 문을 닫고 사제들 가운데 상당수가 옥에 갇혔다. 그때 적지 않은 남녀 수도자가 강제로 '환속'해야 하였다. 1988년부터 베트남에서는 종교 자유 정책이 펼쳐졌지만, 아직까지도 신학생은 2년에 한 번씩 정부가 정한 수 안에서만 뽑을 수 있다. 또 베트남 교회의 숙원 사업인 정기 간행물 발간도 허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사회주의 베트남에서는 모든 언론과 교육 사업이 아직 '계획'의 대상인 것을 이해하면 유달리 교회라 해서 차별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제 양성은 달리 보면 특정 기능인 양성인 것이다.

 

베트남의 교회가 모두 공산 정권의 박해만 받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사이공에서 발행되는 교회 잡지 [교회와 민족](Gong Giao va Dan Toc)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남베트남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잡지로 시작해서 통일 이후에는 베트남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가톨릭 잡지가 되었다. 사이공에 있는 가톨릭 연대 위원회는 공산당 통일 전선 조직인 '베트남 조국 전선' 산하 단체다. 남베트남 가톨릭인들 일부는 반공보다는 민족주의 입장에서 친공 통일에 협력하였다는 것이다.

 

이 현실을 감안할 때 공산 통일 27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의 가톨릭 교회가 베트남에서 둘째로 큰 종교이며 신자 수 508만 명으로 전국민 가운데 신자 비율이 6%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낸 공식 통계에 따른 한국 가톨릭 신자 비율도 6%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니지만 이때가 되면 성탄 카드를 보내는 것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선 관습이 되어 있다.

 

 

7. 파키스탄

 

1998년, 파키스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이던 존 조셉 주교가 한 법원 앞에서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쏘아 목숨을 끊었다. 이 법원에서는 파키스탄에서 악명 높은 독성죄법에 따라 한 그리스도인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소수 종교인의 인권을 위해 싸움으로써 이슬람인에게까지 매우 존경받던 터였다.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예언자를 모독한 자에게 오직 사형 판결만을 규정한 이 독성죄법은, 실상은 이웃간의 재산 다툼이나 개인적 원한을 풀려는 못된 이슬람인들에게 상대 그리스도인을 손쉽게 해치우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존 조셉 주교는 이 독성죄법이라는 또다른 신성 모독 행위에 자신의 목숨으로 항거한 것이었다.

 

독성죄법은 1980년대에 민주적 정통성이 약한 군사 정권이 이웃 나라 이란에서의 이슬람교 혁명에 영향을 받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환심을 얻어 정권 기반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생겨났다. 이 밖에도 이슬람이 아닌 소수파 종교인들이 선거할 때 자기 종교인끼리 모여 종교 대표를 뽑는 분리 선거구 제도도 대표적인 인권 침해로 규탄되었는데 탄생 배경은 위와 같다. 이 분리 선거구 제도는 파키스탄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중심이 된 끈질긴 노력 끝에 올해 초에 폐지되었다.

 

파키스탄에서 교회가 받는 어려움은 서구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거창한 대립이 아니다. 인도 독립 당시에 힌두교가 다수인 인도에서 떨어져 나온 뒤 인도와 세 차례나 전쟁을 해야 했던 파키스탄의 역사에서 '이슬람=파키스탄'의 정체성이며, 다른 소수 종교는 그리스도교든 힌두교든 배화교든 간에 다 똑같은 '소수 종교'일 뿐이다. 이 소수 종교들이 인도와의 경쟁에 도움이 된다면 국가는 지원할 것이고 아니라면 탄압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 이슬람의 편견 속에 파키스탄 교회가 고통받을 때 밖에서 연대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인권' 개념에 바탕을 둘 때 가장 효과적이다. 지난해에 한국의 지학순 정의평화기금에서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에 국제정의평화상을 준 것이 좋은 보기라 할 수 있다.

 

 

8. 세계 교회의 연대

 

1999년에 열린 아시아 시노드를 마감하는 교황 문서 [아시아의 교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지역에서 고난받는 교회들에게 깊은 동정과 연대 의식을 밝혔다. 교황은 이 문서의 "어려움과 고난 속의 교회들"이란 항목에서 맨 처음에 옛 소련 지역에서 재건되는 교회를 언급하고 교회가 영적, 물적으로 이곳 교회를 지원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중국 본토의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아시아 시노드에 참여한 교부들은 중국의 형제 자매들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보편 교회에 온전히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자신들의 신앙을 완전히 자유롭게 실천"할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중국 교회 다음으로 교황은 시노드가 '한국의 교회'(Catholic Church in Korea)에 진지한 연대 의식을 밝히고, 최소한의 생존 수단도 없는 북한 인민들을 도우며 한 민족, 한 언어, 같은 문화 유산을 지닌 두 나라 사이에 화해를 이루려는 가톨릭인들의 노력을 지지했다고 말하였다. 이 대목은 북한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중국과 북한에 이어 교황이 수난받는 교회로 든 것은 '예루살렘의 교회'다. 그는 아시아의 각 개별 교회에게 '예루살렘의 교회'에 대한 연대를 부탁하고 이곳에 있는 '두 민족, 세 종교' 사이에 화해를 이루려는 교회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교황이 예루살렘을 제외한다면 구 공산권 국가만을 지적했을 뿐 지금 다른 종교와 갈등하며 실제 목숨까지 위협받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그리고 중동 이슬람 지역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문서가 나온 시점에서는 이들 지역에서 아직 구체적인 유혈 분쟁이 없었지만, 시노드 문서라는 것이 수십 년을 내다보고 분석하고 전망을 세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는 아시아에서 고통받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만 치중했을 뿐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앞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톨릭 교회가 겪는 고통과 수난 사례들을 살펴본 것처럼, 종교 자유 또는 그 반대로 종교 탄압이란 것은 순수한 종교만의 문제인 경우는 별로 없다. 무신론인 공산주의만 가톨릭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저 오랜 신비주의와 종교 전통의 나라 인도에서도 선교사들이 총 맞아 죽고 불에 타 죽고 있다. 같은 그리스도교 나라인 러시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슬람 여러 나라에서 교회가 고통받는 것도 그 나라가 이슬람 나라여서가 아니라 그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사회 문제가 종교 갈등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들 나라에서 고통받는 교회를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단지 종교 자유라는 당연한 원칙을 강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그들을 돕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어떤 나라든 실제 종교인을 쏴 죽이고 납치하고 교회를 불태우는 것은 지배층이 아니라 가난한 하층민들이다. 지배자들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 나라의 교회가 고통받을 때 밖에서 이 교회를 돕는 최상의 방법은 이 교회가 그 나라의 가난한 민중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가 되도록 돕는 데 있다. 이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아무리 그 교회를 물적으로 도와주어도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분노를 더욱더 부채질하게 될까 두렵다.

 

[사목, 2002년 9월호, 박준영(아시아 가톨릭 연합 통신 한국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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