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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아우구스띠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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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76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아우구스띠노회 (상)

 

 

아우구스띠노회 한국지부의 종신서원식 모습.

 

 

『주여, 당신께선 인간이 한마음으로 한집에서 살도록 하셨나이다. 우리의 거룩한 결심에 의해 우리가 함께 모여 살고자 하는 뜻을 우리는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성아우구스띠노의 고백록 9권 8장)』.

 

아우구스티노수도회는 참회자들의 모범과 신앙의 변호자, 또한 탁월한 사목자와 신비가였던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를 사부로 여기고 그 영성과 수도 규칙서의 정신에 따라 생활하던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이 통합돼 설립됐다. 

 

공식적인 수도회 역사는 아우구스티노의 생활 양식과 수도회 규칙을 따르는 수천명의 수도자들이 1244년 로마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 뒤 합병을 결정함으로써 시작됐지만 실질적인 수도공동체의 전통은 아우구스띠노와 그의 친구들이 고향인 로마령(領)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 돌아와 그들의 소유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학습과 기도에 전념하기 시작한 4세기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91년 사제로 서품된 아우구스띠노는 히포에 있는 정원을 구입, 수도자 공동체를 건설할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는 사제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생활을 병행했다. 이후 아우구스띠노를 따르는 수도적 삶의 형태는 남자 평신도, 여자 평신도, 그리고 수도자와 성직자 등으로 제시됐고 이러한 아우구스띠노의 이상(理想)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으로 또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수도회는 1244년 첫 합병후 1256년 또 한번의 통합 기회를 맞게된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 칙서에 의해 통합 작업을 가진 아우구스티노회는 이때를 기점으로 명실공히 탁발수도자로서의 위치를 얻게됐으며 1327년 교황 요한 22세가 파비아에 있는 성아우구스티노의 무덤 옆 건물을 수도회에 인계함으로써 아우구스티노와 특별한 유대를 지닌 수도회로 인정을 받게됐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영성은 『한마음 한뜻(Anima Una et Cor Unum)』으로 대표된다. 즉 『먼저 자기 자신과의 일치 그리고 이웃과의 일치, 형제들과의 일치,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정신과 은수적인 전통에서 유래된 이 영성은 「내향성」「공동체」「그리스도 중심의 삶」「교회에 대한 봉사」등으로 세분화된다.

 

수도회 영성은 산란한 마음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내향성(內向性, Interiority)」은 그에 대한 표현을 함축한 것이다. 「공동체 정신」은 『다양성 안의 일치』란 영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수도회 공동체가 형제애 정신과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 부분은 이웃에 대한 사도적 봉사와 사랑 봉사의 중요성을 격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의 기초를 보다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수도생활의 궁극적인 모범이며 삶의 표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그리스도의 모든 점, 특히 겸손과 봉사의 모습을 닮으라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고무시켰다. [가톨릭신문, 2004년 1월 1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아우구스띠노회 (하)

 

 

아우구스띠노회는 지난 2001년 일반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수도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진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체험자들과 회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아우구스티노의 정신과 은수적 전통을 따르며 지니게 된 영성 중에는 성모신심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수도회가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며 사용한 가장 오래된 호칭은 「은총의 성모님(Our Lady of Grace, 15C)」이다. 「도움의 성모님(Our Lady of Help)」 도 또 다른 오래된 성모님 호칭인데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Our Lady of Perpetual Help)」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위로의 성모님(Our Lady of Consolation)」 호칭은 볼로냐에 있던 같은 이름의 평신도 단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우구스티노가 400년에 집필한 수도생활에 관한 규칙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다.

 

이 규칙서는 서방 세계의 가장 오래된 수도 규칙서로 알려져 있다. 내용의 영적인 풍부함으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초석이 되었으며 「체사리오 규칙서」 「베네딕도 규칙서」 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11세기 유럽 수도원 개혁과 대성당 참사회에서는 기초로 활용됐고 파리에 있는 성 빅토르 대수도원과 로벨또 수도회(Canons Regular of Premontre)의 법규로, 라테란 공의회의 교회법에도 인용됐다. 

 

이 규칙서에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 사도적 가난과 헌신, 봉사와 친절의 마음 등이 반영돼 있고 철저하게 성서에 바탕을 두면서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영위되어야 하는 수도생활의 주된 골자들을 서술하고 있다. 

 

16세기에 시작된 신대륙 탐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들을 파견했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선교지역을 확대, 중국을 비롯 라틴 아메리카와 북아프리카 지방 선교를 활성화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83년 당시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의 요청으로 추진됐다. 수도회의 아시아 진출은 이미 400여년 전 부터 필리핀 일본 중국 등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만, 한국 주교가 공식 요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후 1985년 9월 호주 관구, 영국 스코틀랜드 관구에서 각 두 명씩의 사제가 서울에 도착했고 이후 호주에서 한 명, 필리핀 관구에서 두 명의 사제가 더 파견되어 공동체를 형성했다.

 

1990년부터 한국인들의 양성이 이루어졌고 지금껏 본당 사목, 피정 지도, 영성 상담, 병원 사목, 인천과 서울 신학교 그리고 대학 강의 등을 통해 다양한 사도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994년 인천 전동에 수도원을 건립, 인천에 본원을 둔 수도회로 자리매김을 시작한 수도회는 1998년 강화도에 신학원을 건립, 인천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형제들을 위한 공동체로 사용하고 있다. 2000년에는 그룹 홈(Group Home) 「너랑 나랑」을 개원, 청소년 사도직에 참여하고 있으며 1992년 총장 인가를 받아 재속 아우구스띠노회를 결성했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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