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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500년 만의 만남: 독일 교회의 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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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97

500년 만의 만남 : 독일 교회의 날 행사

 

 

2003년 6월 4일에서 8일까지 5일 동안 진행된 '교회 일치를 위한 독일 교회의 날'(okumenischer Kirchentag) 행사는 독일 교회에 상당히 큰 상징성을 지닌 '사건'이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이래 독일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은 오랜 세월 동안 단순한 종교적 갈등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인 갈등과 맞물리면서, 독일을 유럽에서 내부적으로 가장 분열된 국가로 만드는 데 근본적 원인을 제공하여 왔다. 그런 독일에서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교회의 날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 이 대회의 공식 주제는 "여러분이 은총이다!"(Ihr sollt ein Segen sein!)였다. 

 

이 행사는 3년의 공동 준비 기간을 거쳐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는데, 개막식 날 40만 명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 모였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해서 최근 종교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이 정도의 인파가 모인 일은 처음이다.

 

 

'교회의 날'의 시작과 의미

 

1949년 이후 독일에는 두 개의 교회의 날이 존재해 왔다. 먼저 시작한 것이 격년제로 열리는 '독일 개신교 교회의 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이고, 이후 가톨릭 교회도 '독일 가톨릭 교회의 날'(Deutscher Katholischer Kirchentag) 행사를 역시 격년제로 실시해 왔다. 그러다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로 독일 개신교 교회의 날과 별도로 동독 지역에서는 '독일민주공화국 개신교 교회의 날'(Deutscher Kirchentag in der DDR)이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때 독일에는 3개의 교회의 날이 존재했다. 이 구동독의 교회의 날은 통독 이후 1991년 개신교 교회의 날이 다시 하나로 합쳐질 때까지 유지되었다.

 

교회의 날은 나치 시대 그리스도교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경건주의, 그리고 교회 일치 운동의 정신에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날은 1961년에는 개신교와 유다교, 그리고 1965년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대화의 장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례, 성가, 예배 형태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 가운데 교회의 날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독일 교회의 날의 특별한 의미는, 이 행사가 1960년대 이후의 평화 운동과 환경 운동의 산실이 되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교회의 날은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존'을 모토로 개최되었다. 이것은 이 행사를 주로 교회의 평신도와 일반인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교회의 날은 단순히 교회를 홍보하거나 선교하는 행사로서가 아니라, 신앙이 있는 사람들과 신앙이 없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교회 내적인 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흥겨운 분위기로 4박 5일 동안 이어지는 이 행사는, 일종의 '잔치'로 생각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궁극적으로 교회 선교를 위한 장도 마련되어 왔던 것이다.

 

2003년 6월에 있었던 교회의 날이 매우 특별한 것은 앞에서 말한 독일 특유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교회 일치에 관해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엄청난 견해차가 상존하는 가운데에서도, 평신도 차원에서,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의 날을 성황리에 마쳤다는 사실에 있다.

 

이번 교회의 날은 500년 만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자들이 일치하여 치른 공식 행사답게 참여 인원도 많았고 사회적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대통령과 수상을 비롯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특별히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에서 교황은 베를린 대교구의 스터진스키(Sterzinsky) 추기경과 브란덴부르크 주 개신교 '감독'(evangelischer Bischof)인 후버(Wolfgang Huber) 목사에게도 인사말을 전했다. 또한 교황은 이 대회에 참석한 이들에 대해 "다른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의 대표자"(die Vertreter anderer Kirchen und kirchlichen Gemeinschaften)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독일 개신교와의 관계를 의식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이어서 교황은 서구 교회의 분열이 시작된 곳인 독일의 특별한 의미를 지적하면서 화해를 위한 인내와 용기를 당부하였다. 교황은 이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교황 강복을 내리는 것으로 이 축하 메시지를 마치고 있다.

 

사실 교황청에서는 이 대회를 오래 전부터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아 왔다. 특히 개막식 때의 합동 예배는 묵인하지만 합동 성찬식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이 문제에 대해 교황청이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교회의 날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부 사제들이 이 합동 성찬식에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가 열리기 몇 주일 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통하여 합동 성찬식을 거행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경고하였다. 

 

교황청의 이런 강력한 경고에도 두 명의 사제가 이를 위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크슈태트 교구의 크롤(Bernhard Kroll) 신부는 합동 성찬식에 참석했고, 이에 따라 믹사(Walter Mixa) 주교에게 즉시 성무 집행 정지 명령을 받았다. 또한 루터 교회인 게쎄마니 교회에서 합동 성찬식을 집전한 하센휘틀(Gotthold Hasenhhuttl) 신부에 대해서도 곧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교회의 현실

 

사실 독일의 가톨릭 신자와 신부의 숫자는 1970년을 정점으로 하여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2001년 현재 독일의 가톨릭 신자 수는 2,665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통일 이후 1990년에는 총 2,800만 명으로 이전 해에 비해 약 100만 명이 증가했으나 차츰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오히려 늘어 현재는 통일 전보다 신자 수가 줄어들었다. 통일 전에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년 10만 명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통일 이후 교회 이탈자가 더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남아 있는 신자들 중에도 미사에 참석하는 인원은 425만 명에 그쳐, 1990년대 들어서 미사 참석률이 계속해서 10% 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1960년 이래의 감소 추세는 변함 없이 지속되고 있다. 

 

독일 개신교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 개신교 신자는 전 국민의 32%로 가톨릭과 거의 비슷한데, 이들 역시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3년 약 20만 명에 가까운 신자가 교회를 공식적으로 떠난 이후, 그 비율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매년 10만 명 이상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성직자 수의 감소 추세이다. 2001년 현재 독일에는 14,312명의 사제가 있다. 그 중 92명은 주교이고 많은 신부들이 은퇴하여 실제 사목 활동을 하는 신부는 9,213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을 기준으로 보면 신부 1인당 약 460명의 신자들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단순한 산술로는 신부 1인당 평균 약 2,900명 정도의 신자를 돌보아야 한다. 한국과 비교해 얼마나 사정이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독일에는 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의 수가 늘어나면서, 성당을 폐쇄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한 신부가 세 개 이상의 본당을 관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의 연령별 구성비를 보아도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현재 독일 젊은이들의 52%는 그리스도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 자체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인, 타종교 신자, 무신론자가 함께 즐긴 축제

 

이번 교회의 날 행사가 성공을 거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참여율이 매우 높아 교회의 성직자들은 매우 고무되어 있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는 철저하게 평신도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교회 성직자들이 이에 '참여'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행사 준비 위원의 절반 이상을 비신자들로 이루고 있어 이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는 성직자 중심의 행사가 일반 사회와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때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행사는 단순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종교,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관한 논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커다란 대화의 장이다. 이번에도 토론, 세미나, 음악회, 전시회 등 3,000가지 이상의 각종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기를 끈 종교 지도자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였다. 고령으로 목소리가 전과 같지 않게 힘이 없었고 세련되지 않은 영어로 강연을 했지만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솔함은 여전하였다.

 

이 자리에서 달라이 라마는 정치나 불교 교리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가 행한 강연의 요지는 즐겁게 살아야 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제는 종파와 종교를 초월한 것으로 교회의 날의 이념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런 '열린' 대화의 마당이 4박 5일에 걸쳐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행사는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이 대회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종교에 무관심한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무관심하고 싫어한다는 그리스도교 행사임에도 베를린에서 해마다 열리는 '러브 퍼레이드'와 비견될 만큼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특히 현재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정치 경제적인 우울한 소식이 난무하여 청소년들이 뭔가 '즐거운 일'을 찾고 있던 참에, 유명 가수들의 공연, 무료 선물 증정, 그 밖에 교회가 마련한 넉넉한 잔치들은 커다란 매력을 가진 것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케케묵은 먼지를 뒤집어 쓴 재미없는 곳'이라는 청소년들의 선입견을 버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오래 전에 이미 이 대회에 참여하겠다고 등록하였고, 개최 당일에는 약 40만 명의 군중이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마지막 날 행사에도 11만 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룬 것이다. 대통령과 수상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 타종교 신자들, 나아가 무신론자들까지 참여하겠다고 그대로 함께 즐기는 커다란 '축제'였다.

 

 

일치 운동, 희망을 엿본다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기에도 아쉬움은 있다. 무엇보다도 이 행사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고 일회적인 것으로 그칠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 교회의 날이 매우 성공적이었음에도 당분간 공동으로 치르는 교회의 날 행사 계획은 잡혀 있지 않다. 이미 가톨릭은 2004년 울름에서, 개신교는 2005년 하노버에서 따로 교회의 날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아직도 교회 일치를 위해 갈 길은 너무 먼 것이다. 물론 이번에 독일의 16개 교회가 "일치 운동 헌장"(Charta okumenica)에 공동 서명을 한 성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구속력이 없는 단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독일의 각 교회는 나름의 사정으로 서로에게 문을 열고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이보다 더 아쉬운 것은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일부 성직자들과 교황청 간의 시각 차이를 여전히 좁히지 못한 채 이 행사가 마무리된 점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은 2003년 6월 5일 바이에른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개신교와 함께 합동 성찬식을 거행한 두 신부에 대해 "이것은 교회 내에서 뭔가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를 가진 정치적 행위이다. (…) 주님의 거룩한 선물인 성사를 (개인적) 의도를 관철하고자 이용하는 것은 (사제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부적절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고 하며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교황청은 이미 공식적으로 개신교와의 합동 성찬식을 금지하는 회칙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인 하센휘틀 신부는, 독일의 주교가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라며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나섰다. "내 생각에 교회가 금지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공동 집전(Konzelebation)이다. 곧 개신교 목사가 빵을 축성하고 천주교 신부가 포도주를 축성한다든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성찬식을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위해 제정하셨다." 결국 하센휘틀 신부는 자신이 개신교 목사와 공동 집전을 하지 않고, 다만 개신교 교회 안에서 가톨릭 미사를 집전한 것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대회 폐막 공동 미사(예배) 때 독일 주교회의 의장인 레만(Karl Lehmann) 추기경과 독일 개신교 연합 회장인 코크(Manfred Kock) 목사가 제대 중앙의 성수대에서 뜬 성수로 서로 축복한 것이 상징하듯이, 독일의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 그리고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일 교회의 500년 분열의 역사에서 깨달은 것이 아닐까?

 

[경향잡지, 2003년 7월호, 이종범(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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