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6-0115.....연중 제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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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1-14 ㅣ No.1959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8,4-7.10-22ㄱ            마르코 2,1-12

2016. 1. 15. 이태원

주제 : 세상을 중심으로 삼는 일과 하느님 공경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장 효과적인 이론의 하나는 이분법입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이고, 흑백을 가르는 판단입니다. 분명하게 가를 수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놀라운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분법의 기준은 사람의 세상에서 그 가치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꽤나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세상과 하느님을 상대로 놓고 보는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여기면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며, 내가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산다고 말하는 것이면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동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주십시오백성들이 하는 이 소리를 하느님은 나를 더 이상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은 아니고, 사무엘예언자가 해석한 말씀입니다.

 

신앙인에게도 하느님과 인간의 대립이나 충돌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앙을 더 우선적인 것으로 보고, 신앙을 세상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제 입장에서는 인간이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합니다만, 세상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론이 항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세상의 힘은 신앙의 힘에 비해서 얼마나 더 강한 것일까요? 이것 역시도 세상을 우선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자세에서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세상의 힘이 신앙의 힘보다 강한 것일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세상의 일에 신앙의 힘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제가 썼습니다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의 힘보다 세상의 힘이 강하다고 느끼는 것은 한 두 사람이 긍정하는 요소는 아닐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사무엘예언자를 통해서 들려오는 백성들의 소리에 당신의 말씀과 뜻을 접습니다. 하느님이 진 것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이 알아들어야 하는 하느님의 뜻을 설명하는 것을 존재의 모습으로 삼았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신성모독이라고 판단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최고 존재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요? 그렇게 말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결과론을 보고 율법학자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참으로 답답하고도 안타까운 일들은 우리들의 삶에 참으로 많이도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들 생각은 얼마나 있습니까? 잠시 우리 삶의 모양을 돌이켜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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