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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관심의 벽을 넘어: 관심이 필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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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0 ㅣ No.1268

[경향 돋보기 - 무관심의 벽을 넘어] 관심이 필요한 사회



관심이 조장되고 있다

그분이 그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 자기관리가 그렇게 깔끔한 분이셨는데 욕실에서 넘어져 돌아가신 지 한참 만에 발견되었다. 또 주말에 홀로 연구실에 나왔다가 어두운 계단에서 굴러 주말 내내 홀로 방치된 채 돌아가신 교수님도 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현실은 혼자 사는데 우리의 관념은 여전히 가족과 같이 사는 것을 전제로 한다. 현실과 관념이 괴리되기 때문에 누구나 ‘가족의 돌봄을 받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알게 모르게 정당화하는 마음속의 논리이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사유재산 제도와 함께 ‘사생활’을 우선시하는 가치관과 생활윤리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도시생활은 공동체를 벗어난 익명의 개인을 단위로 한다. 월급도 개인이 받고 소비의 주체도 개인이다. 간섭받지 않을 ‘자유’라는 명분으로 무관심을 세련된 것으로 생각한다. 현실과 괴리된 가족주의 관념, 사생활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의 논리, 도시생활의 익명성 등의 흐름이 합력하여 무관심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를 무관심 속으로 이끄는 또 다른 엔진은 경쟁의 논리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부터 한 줄로 등수 매겨지는 것에 익숙하다. 모든 기관이 업무 내용보다는 평가척도 개발에 열을 올린다. 한 줄 세우기, 성과급제에 익숙해지면서 내 옆의 친구 또는 동료는 협동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된다. 그가 이득을 보면 내 몫이 줄어들도록 짜인 사회에서는 정보 하나도 공유하기 어렵다.

한 줄로 세우는 것은 줄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선택과 배제의 갈림길에 서는 것을 뜻한다. 문은 바로 내 앞에서 닫힐 수도 있다. 내 주변 사람은 모두 나의 경쟁자가 된다. 내 것을 될 수 있으면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남이 내 것을 염탐하는 것도 싫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무섭다. 관심을 가장한 염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관심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라는 것은 나침반도 없이 사막을 홀로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것도 혼자일 때 인간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네가 없이는 내가 없다는 관계적 자아론도 있다. 타인이 없는 고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이론이다.

많은 사회심리학자는 가장 일차적인 차원의 인성을 욕구 충족으로 본다. 그리고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갈수록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 최고 수준의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성을 다듬고 완성하는 것으로 사회적 참여와 관계적 자아의 발달, 소통을 꼽는다.

사회학에서 자아 자체도 관계와 의미를 공유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사회규범을 익히고 사회 속에서 정정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경험과 연습이 많아져야 성숙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의 성숙에는 타인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타인은 곧 나의 거울인 셈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의 이론에 따르면, 자아와 타인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무관심과 네트워크 사회의 역설

‘원자화되고 익명화된 개인을 전제로 했던 대중사회’는 이미 인터넷의 보급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전자 투표권을 든 방청객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평가와 선택으로 등수가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순간적으로 1번 아니면 2번을 누르는 간단한 투표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참여’를 위한 도구가 쌍방향 소통을 실현하게 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소통과 연결망이 새로운 존재 기반이 되고 있다. 익명의 대중을 전제로 상품을 출시했던 시장에서도 이제는 소비자가 품평할 공간을 만든다. 소비자 공동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시장이 먼저 시도한다.

상품은 가격 대비 품질만이 아닌 이야기로도 다가온다. 상품과 프로그램에 대한 품평, 참여가 늘어가는 대신 정치에 대한 실제 참여는 줄고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는 더 늘어간다.

주변의 이웃에는 극히 무관심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일에 참여하고 결정권을 가진 듯한 착각을 주는 역설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원자화된 개인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마지막 사생활도 허용하지 않는 네트워크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웃에게 무관심한 사람도 자신의 블로그에서는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자신이 본 영화평,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결국, 무관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의 무관심과 또 다른 면에서의 관계에 대한 열망이 서로 부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고 있다. 이 공존을 그저 한 인간이 여러 가면을 쓸 수 있는 것, 곧 ‘다중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결말이다. 실제 다중 인격이 한때 드라마의 소재로 한꺼번에 등장한 적도 있다.

다중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곧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해당 문제에서 회피해 버리면 그만이다. 마치 가면을 바꿔 쓰면 다른 사람이 되듯이 말이다. 사회현실은 저기에 그대로 있는 가운데 나만 옷을 바꿔 입고 다른 가면을 쓰면 ‘순간 이동’과 같은 다른 장면이 펼쳐지면서 마치 변화가 일어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의 현란함은 자칫 자기로부터의 편리한 도피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또한 무관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것은 참여와 관심의 도구도 될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기 때문이다.


무관심과 과소비의 역설

무관심의 역설은 소비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이어진다. 생활현장에 있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의미’를 지우고 기호만 남겼다. 치열한 경쟁 속에 무자비하게 문을 닫으려면 사람이 아닌 기호나 숫자가 더 편하다. 얼굴을 모르고 단순히 기호가 되면 인간관계에서 의미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의미를 제거하게 되면 남의 일에 철저히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상품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최근의 마케팅은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로 바뀌었다. 상품의 기능보다는 의미와 기호에 집착한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할수록 소비를 통한 정체성의 구성에 집착한다. 상품의 상표가 부여하는 의미를 소비하면서 공유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구매하는 것이다.

최근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의 ‘고급 핸드백 사재기’ 취미가 말레이시아 시위대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따서 ‘이멜다의 구두’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의 핸드백이 2015년에 다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책 문제가 아니라 총리 부인의 핸드백이 더 국민의 즉각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한편으로는 역설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노로고」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다국적 기업이 생산 공장은 없이 ‘로고’로만 존재하고 사람들은 ‘로고’에 집착하는 현실을 비판한 책이다. 금융위기 문제에 대해 금융기관 임원의 고액 연봉 문제가 제기되고 그들이 소비하는 고가의 제품이 비판의 대상이 되자 ‘큰 로고’가 재빨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작은 로고’로 바뀌었다. 아직도 공적 자금을 천문학적으로 지원받는 금융기관 임원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높다. 바뀐 것이 있다면 그들이 입고 쓰는 상품의 로고가 작아지거나 눈에 잘 띄지 않게 된 것뿐이다.


간섭이 아닌 관심이 필요하다

사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관심과 배려를 실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도시에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도시에도 마을 만들기 사업이 탄력을 받으며 나아가고 있다.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법도 만들어 정부도 이를 지원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현재와 같은 무관심 상태, 곧 사회 해체 상태를 더는 내버려둘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마을 만들기와 도시 공동체 복원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가 있다. 공동체 복원에서 가장 주저하게 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다. 공동체 복원, 협동의 관계가 자칫 간섭이 될 위험을 경계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닌 개인주의가 성숙할 기회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에게 공동체에 대한 기억은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로 쉽게 회귀한다. 건강한 개인주의를 보장하지 않으면 공동체적 관계는 개인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침해하는 간섭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그의 국적과 가족, 배경, 그리고 교육 정도와 직업, 인종 등과 관계없이 보장받는다는 차원에서 개인주의는 주체적인 시민의 근간이 된다. 이를테면 투표권을 행사할 때 친인척이나 선후배, 가족관계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개인이 되는 것은 근대 국가의 초석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관심한 원자화된 개인, 이기적 욕망에만 충실한 탐욕적인 개인은 사회 해체를 부추기는 존재이고, 존재 자체도 불완전하거나 미성숙한 상태이다. 이기주의는 버리되, 자율적 판단과 주체성을 갖춘 근대적 개인은 살려야 한다.


참여로 무관심의 벽을 넘는다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상태, 원자화된 개인으로 던져진 상태를 해체된 사회라고 말한다. 해체의 조짐을 방지하는 길이 있을까?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해체되지 않는 사회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강제로 개인을 사회에 묶어놓는 사회, 곧 기계적 유대로 유지되는 사회를 말한다. 전통사회에나 가능했던 모델이다.

현대사회에서 통합은 공통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통의 가치 곧, 일반의지를 공유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좋은 법을 만들고 일단 만들어진 법은 잘 지키는 것이 현대사회 통합의 방편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천부인권이라는 가치를 법의 기조로 삼고 있다. 그 가치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곤궁에 놓인 사람을 돕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는다.

병원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는 등록 이전에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다. 병원비를 낼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치료받을 권리가 먼저인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윤 효용보다 공감과 관심, 배려를 더 높은 가치에 올려놓고 그것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관심과 배려가 경쟁과 효율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습관화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엄마’도 없고 사랑도 없이 홀로 죽어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는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하라는 법이 없다.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법 만들기, 정치에 대한 건전한 관심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이다.

정치의 기본기능은 사실 ‘통합’이다.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루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가치를 가시화한 것이 또한 법이다. 일반 국민이 법이 자신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따르려는 마음을 가질 때 현대적인 의미에서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좋은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가족을 대신하는 대안이라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다. 공화국은 바로 전체가 동의하는 일반 의지를 만들어내고, 그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을 전제로 구성된 국가를 뜻한다. 제대로 이루어진 공화국은 무한 희생의 엄마가 없이도, 계층을 뛰어 넘는 극적인 사랑이 없이도 보통 사람들이 살만한 사회가 된다.

* 이정옥 비비아나 -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여성평화외교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에코피스 아시아·한국 투명성기구 이사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지구촌 사회의 이해」, 「가족과 젠더의 사회학」,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이정옥 비비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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