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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2000년 대희년과 한국 교회의 성모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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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16

2000년 대희년과 한국 교회의 성모 공경

 

 

1. 2000년 대희년의 의미

 

교회의 역사관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인류를 당신의 기쁨으로 부르시는 그 초대에 대한 응답의 역사관이고, 인간의 질문에 대한 하느님 응답의 역사관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된 목적은, 죄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질문에 답하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하느님의 생명의 기쁨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필립 2,6-7)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목적과 일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초대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죄와 죽음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강생 2000주년 경축과 3000년기의 출발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인류 구원 역사의 의미를 흐리게 할 것이다. 따라서 대희년 경축의 핵심은 회심과 참회이다. 

 

죽음의 속박에서 오는 비참이 하느님의 뜻에 인간 의지가 '아니오'[不順命]한 결과라면,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된 소생의 환희는 하느님의 뜻에 인간 의지가 '예'[順命]하는 것의 결실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죽음의 속박에서 해방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15)라고 답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죽음의 문제에 간결한 해답을 주셨고, 회개가 어찌하여 해방과 기쁨의 답이 되는지 당신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증거해 주셨다. 그 증거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회심과 참회로 불순명의 불의(不義)에서 순명의 정의(正義)를 회복(回復, reconciliatio)시켜야 한다고 명확히 답하고 증거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강생 2000주년 경축의 핵심은 '아니오'에서 '예'로 돌아감(回歸, Convertio), 곧 불순명에서 순명으로 옮겨감에 있다. 창조(創造, creatio)가 새로움(Newness)이고 생명이고 기쁨이라면, 죽음은 비참이고 슬픔이고 아픔이며, 회심과 참회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회복은 다시 새로움(re-newness)이고 다시 기쁨이다. 바꾸어 말하면 잃었던 생명과 기쁨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다시 창조' 또는 '재창조'(再創造, recreatio)라고 한다. 역사의 시간이 새로워지고 인간의 삶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환원된 새로운 삶을 이룬다. 희년은 재창조 또는 다시 새로워짐(刷新, renovatio)에서 부여되는 생명의 기쁨이고, 하느님 자비의 선물이며, 인간의 죄와 죽음의 비참을 가엾이 여겨 아들의 파견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믿음을 심어 주시어 회심과 참회로 새 생명을 주신 사랑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전 인류가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하나되어 순명의 역사, 응답의 역사, 순명의 역사, 시간을 하느님의 뜻으로 가득 채우는(plenitudo temporis) 새 시대 새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신이 받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를 감사하며 다시 더럽혀지지 않는 새 생명의 길을 가야 한다. 이로써 새 시대 새 역사는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평화와 기쁨의 시대로 발전한다. 그리스도인의 역사 발전 개념은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수용하는 인간 완성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당신 아드님께서 인류 역사에 진입하는 강생 사건은 그의 육신을 낳아 준 어머니의 역할을 외면하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느님 아들의 인간 역사 진입을 수락하여(Fiat) 실제로 그에게 출산을 부여한 어머니이자 목격 증인이며 사실 증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의지의 수락과 출산, 양육과 구원 사업의 협력 책임을 수용한 마리아의 신앙과 수용 그리고 그녀의 신앙 여정은 구원된 인간의 참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려 주고 있고, 그리스도인의 참 정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2000년 대희년과 더불어 한국 교회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를 성찰해 보기 위하여 아래에서 한국 교회 성모 공경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미래를 전망하려 한다.

 

 

2. 한국 교회 성모 공경의 발자취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은 "자기 아들의 구세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계신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한다."(103항)고 말하고, "성교회는 마리아 안에 구원의 숭고한 열매를 경탄하고 찬미하며, 또한 마리아 안에 성교회 자신이 온전히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바라는 하나의 순수한 모습을 즐거이 관상(觀想)한다."(103항)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교회와 함께 있는 마리아의 현존 신학을 창출했다. 아래에서는 한국 교회 마리아 신심 운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1)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 운동 

 

한국 교회 성모 신심 운동의 역사를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한다. 교회 창립 시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를 제1기로 보고, 공의회 이후에서 1999년 5월 현재까지 제2기로 본다. 

 

(1) 제1기:한국 교회 창립 시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한국 교회가 태동되는 서학 연구 시기에 나타나고 있는 한문본 서적 중에는 [매괴십오단](??十五端)이란 신심서와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敎日課) 기도서가 있고,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 때 형조에 압수되어 소각된 서적들 중에는 한문본보다 한글본이 더 많고 그 책들 중에 성모 관계 한문본 책들과 한글본 책들이 무수히 많다. 기도서는 물론 묵주기도와 관련된 한문 한글본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글본 성모 관계 서적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박해 상황 안에서도 신자들의 변역 활동과 열렬한 성모 신심 활동을 알 수 있게 한다. 

 

목자 없는 긴 세월 동안(1801-1835) 신자들은 조선 교구 설정(1831. 9. 9)의 산파역을 하며 선교 사제 영입과 방인 사제 양성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선교 사제들의 입국 즉시 김대건을 비롯한 3명의 신학생을 마카오로 유학시키고(1835), 조선에 입국한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조선 교구의 주보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 교구의 주보로 윤허해 주기를 청하여(1838. 12. 1.), 1841년 8월 22일 허락을 받게 되어 이 때부터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신앙과 신심을 생활하게 되었고, 급기야 1846년 11월 2일에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무염 성모 성심회'(Confraternita Ssmi et Immaculati Cordis Mariae pro convertione peccatorum)가 선교 사제 다블뤼(Daveluy, 安敦伊)에 의하여 설립되어, 신자들은 주마다 정기 회의를 하며 정한 기도문을 바쳤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 단체가 한국 교회의 최초의 성모 신심 단체로서 오늘날까지 각 본당 안에 남아 있는 성모회의 모체가 되었다. 

 

1862년에는 조선 교구 제2대 교구장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의 발의로 한문본 [천주경과](天主經課) 기도서를 번역하고 다른 기도서들을 참조하여 만든 [텬쥬셩교공과]가 목판본 4권 4책으로 인쇄 발행되어 신자들은 이 기도서 안에서 일상 기도와 전례 주년을 통하여 성모의 축일과 찬미경을 바쳐 더욱 그 성모 신심이 성장되었다. 이 기도서 안에는 일상 기도와 주일 그리고 전례 주년 내 성모 축일에 바치는 기도문들이 깊은 교리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후부터 한국 교회는 성모 신심 운동과 기도 운동이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100년 동안 전례와 신심의 기도서이자 지도서의 역할을 해 왔다. 

 

1865년에는 [주년첨례광익](周年瞻禮廣益)이라는 전례 주년 해설서 제1권이 한글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 안에는 무염시태, 성모 취결례, 성모 영보, 성모 통고 축일 해설이 간결하면서도 소박하고 깊은 신앙을 아름답게 나타낸 신심적인 글로 나와 있다. 병인 박해 이전에 나온 이 책은 박해 기간 중에 신자들에게 성모의 축일과 구원사 안에서의 역할을 알고 박해의 고통을 성모의 품에 달려 들어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나머지 제2,3,4권이 완성되어, 1884년에 제7대 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의 감준으로 네 권이 모두 간행되었다. 제2권에는 성모 왕고(엘리사벳 방문), 성모 성의, 성모 몽소 승천, 성모 성탄, 성모 입속로회 축일 해설이 나오고 있다. 1884년부터 신자들은 성모의 축일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에 따른 신심이 성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87년에는 한문본 [성모 성월](聖母聖月, 1857, 저자:예수회 선교사 李鐸)이 한글로 번역되었다(Rebert 신부, 金保錄). 이 책은 성모의 호칭 기도를 5월 성모 성월 동안 바치며 그 호칭 하나하나를 매일 설명하고 있다. 이 때부터 한국 교회는 성모 성월에 대한 인식과 성모의 덕행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하게 되었다. 

 

1914년에는 [매괴 성월](매괴聖月)이 한글로 홍콩에서 발행되었다. 이 때부터 한국 교회는 10월 묵주기도의 달이 새롭게 인식되어 성모님께 의탁하는 마음과 그 덕행을 본받는 신심이 점점 성장해 갔다. 

 

1923년 [한국 교회 지도서](韓國敎會指導書,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가 홍콩에서 라틴 말로 발행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회장 직분]이 발행되었다. 이 책 안에는 성모회, 매괴회, 성의회, 성가회가 공식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들에 관한 간략한 역사와 신심이 설명되어 있는데 일선 사목자들과 지도급 신자들에게 신심 단체를 지도하고 돌보는 책임이 주어져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이 때에 이르러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 운동은 이제 전국의 거의 모든 본당 안에서 공식적인 조직과 활동으로 활성화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1924, 1928, 1938년에 이르러서는 성가집이 서울, 대구, 그리고 원산 교구에서 발행되었다. 이제는 낭독만 하던 성모 기도문이 창독되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그 후 이 성가집들은 전국 통일 성가집으로 발전하게 되어 1985년 [가톨릭 성가집]이 나오기까지 몇 차례의 변화 과정이 있었다. 1931년 한국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들을 기록한 [한국 교회 지도서](韓國敎會指導書)가 발행된다. 이 지도서 안에는 매괴회, 성모회, 성의회에 가입하는 예식이 나와 있다. 

 

1953년에는 1947년 미국인 해롤도 콜갠(Harold Coalgan) 신부가 창설한 푸른 군대(Blue Army)가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종 사제 마태오 제이 스트롬스키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군종 사제가 귀국한 후에는 10년 동안 잠잠하였다가, 1964년 독일인 선교 사제 안톤 트라우너(Anton Trauner, 하 안토니오)에 의해 전국적인 파티마 성모 사도직 운동으로 전개된다. 

 

또한 1921년 9월 아일랜드 더불린 시(市)에서 평신자 프랭크 더프에 의하여 시작된 레지오 마리애가 1953년 5월 목포 산정동 성당에 상륙하고, 이어서 1958년 8월 서울 명수대 성당(현 흑석동)에서 레지오 단원이 모집되어 조직된 이래 근 반세기에 이르는 성모 신심 운동과 사도직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리고 1958년 12월에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가 부산에 진출하여 본원을 부산에 두고 점차 대구, 서울 일광, 기장(부산) 그리고 부평(인천)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수도회 사업을 하다가, 1975년 12월 한국 지부가 준관구로 승격되면서 1982년 10월 10일에 시성된 꼴베 신부를 한국 준관구의 주보로 승인하고, 1917년 10월 16일 로마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 테오도로 국제 대신학교에서 설립되었던 성모 기사회가 1976년 5월 20일 대구대교구장의 활동 승인에 이어 오늘날까지 인천, 마산, 서울, 부산, 대전, 전주, 제주, 수원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상으로 한국 교회 성모 신심 운동의 발전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어서 제2기를 살펴본다. 

 

(2) 제2기: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1999년 5월 현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3년 12월 3일에 공의회의 첫 열매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을 반포했다. 공의회는 이 헌장에서 "그리스도 신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전례에 있어 풍성한 은총을 더 확실히 받게 하기 위하여, 자모이신 성교회는 그 전례의 전면적 개혁을 신중히 추진하고자 한다."(21항)고 전제하고 전례력과 모든 전례서들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모든 전례서들이 새로 탄생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는 이 때까지 사용해 오던 한국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기도서이자 신심서이고 교리서라 할 수 있는 [천주성교공과] 발행을 중단하고 임시로 간이 기도문을 배포하면서 새로 번역되는 미사 전례서 번역과 간행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신자들은 어떠한 상황인지 어리둥절했고 하루 속히 기도서가 나오게 되기를 기다렸다. 이 동안 신자들은 서울, 부산, 광주를 중심으로 푸른 군대와 레지오 마리애에 가입하여 기도와 활동을 하며, 종래의 전례와 신심적 전승에서 단체 활동을 통한 기도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 동안 [정선 가톨릭 성가집]이 전국 통일 성가집으로 발행되어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성가곡으로 달랠 수 있었다. 1972년에 드디어 [가톨릭 기도서]란 표제로 신자용 기도서가 발행되었다. 이 기도서는 신자들의 주일 전례 참여를 돕기 위하여 기도서의 절반 이상이 연중 주일 미사 전례문으로 되어 있고, 간략한 일상 기도와 현세 환경에 따른 기도문, 성월 기도, 호칭 기도 등으로 간결하게 마련되었다. 현세 환경에 따른 기도문의 대부분은 기존 [텬쥬셩교공과] 제4권에 나와 있는 기도문들이다. 

 

그리고 기존의 [한국 가톨릭 지도서] 안에서 말하는 신심 단체가 자동으로 해산되었다. 기도서 간행이 중단되고 사목적 보호도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신자들은 허탈감에 젖는 듯했다. [성모 성월], [매괴 성월], 신자들이 의지해 오던 [천주성교공과] 발행이 중단되니 신심 기도가 급격히 격하되고 성모 성월 기도도 '성모의 노래'로 간략하게 되고, 묵주기도의 달에 신자들은 아무런 해설이나 설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남은 것은 성가책에서 익숙한 노랫말뿐이었다. 그러나 이 노랫말도 1985년 [가톨릭 성가]가 다시 나올 때 노랫말의 현대적 표현을 고려해서 고쳐 펴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배우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되어 한동안 매우 불편해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의 선교 3세기를 전망하는 전국 사목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신심 운동 의안집에는 한국 교회 신심 운동의 근간이 되어 있던 신심 단체들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새로 도입된 신심 단체들만이 의안집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한국 최초의 신심 단체 중에 150년 이상 활동해 오던 주요 단체인 명도회나 성모회는 선교 3세기 역사의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하고 말았다. 

 

1995년 1월 25일자로 사도좌가 인준하고, 4월 16일 공포에 따라 6월 4일자로 시행에 들어가게 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는 성모 신심 단체로서 오직 1953년에 한국에 도입된 레지오 마리애만이 들어가 있고, 나머지 성모 신심 단체들은 하나도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 현재 각 교구는 일부 수도회의 성모 신심 운동을 교구 안에서 승인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3) 역사적 반성 

 

한국 교회 성모 신심은 사목자들의 열성과 노력에 따라 날로 성장해 왔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전례 개혁에 따라 전례서들이 개정됨으로써 종래의 [천주성교공과] 발행 중단과 신심서 발행 중단, 마리아 운동을 지도하는 한국 교회 공식 문헌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가 되어 신자들은 허탈감에 빠지거나 종전대로 기도서를 찾아 기도하거나 묵주기도에 의지했다. 

 

신자들은 1953년 한국에 상륙한 레지오 마리애와 파티마 성모 신심 운동에 가입하여 활동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성모 신심 운동이 과도기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전례서들이 번역되고 공의회와 그 후 교황들의 성모 관계 문헌들이 대부분 번역되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의 새로운 조명을 깊이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성모 신심 운동은 레지오 마리애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레지오 마리애 자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모 신학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신자와 가정들이 성모 신심의 생활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면으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보다 못하다. 이 사실은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아 알 수 있다. 21세기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 운동은 신학적 기반을 구축하고 신자들의 영성과 생활로 지도해 나가야 한다. 신학적 연구 없이 방치해 둔다면 기현상의 우려도 없지 않다. 현재의 한국 교회는 다분히 로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모 성월에는 성모의 노래(Magnificat)를 성월 기도로 바치고 있을 뿐, 공의회 이전과 같이 성월을 안내하는 신심 서적도, 사목자들이 함께 인식하고 권장하는 신심 서적도 없다. 그래서 최근에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기존의 성모 성월 신심서를 현대어로 개역하여 발행했다. 묵주기도의 달도 마찬가지이다. 신자들의 자발성에 맡겨두거나 아니면 연구가 없는 상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한국 교회 신자들은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이유는 1년에 1번만 보편 달력에서 거행하는 전례 축일을 거행했을 뿐이고, 특히 한국 교회의 주보로 지속적으로 부각되지 못했고, 또 [천주성교공과]의 기도문인 무염 시태 기도문이 [가톨릭 기도서] 안에서 이어지거나 새로 마련하여 신자들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현재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만의 주보인지 아니면 전국 교구, 곧 한국 교회 전체의 주보이신지에 대하여 재확인하고 이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 교구는 그 동안 교구 주교좌 설정과 주교좌가 세워지면서 별도로 교구의 주보를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한국 교회 전체의 주보로 모시고 있다면, 한국 교회 모든 신자들이 한 입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찬미하는 기도문이 설정되어 기도서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에 의거하여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 방향을 일신시켜야 할 것이다.

 

 

3. 2000년 대희년과 성모공경


1) 제2 천년기 마침과 제3 천년기 출발을 위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2 천년기의 마침과 제3 천년기의 출발을 위한 준비였다. 공의회의 기본 노선은 삼위일체론의 재발견, 그리스도론의 재발견, 성령론과 교회론의 재발견 그리고 마리아론의 새로운 발견, 인간학의 재발견이었다. 이 동맥에 따라 2000년 대희년이 기획되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마리아론의 대동맥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 안에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리아만을 따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시에 논하면서 마리아를 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공의회 문헌과 그 후 역대 교황들의 문헌과 경신 성사성, 동방 교회성, 가톨릭 교육성의 문헌들을 먼저 종합 소개하고 그 내용의 맥을 따라 2000년 대희년을 전망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1964. 11. 21.) 제8장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i Matri, 1966. 9. 15. AAS LVIII,745)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큰 징표](Signum Magnum,1967. 5.13, AAS LIX,465)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10월을 회상하며](Recurrens mensis October, 1969. 10. 7, AAS LXI,649)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1974. 2. 2. AAS LXVI,11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교리교육](Cathechesi tradendae. 1979. 10. 16, AAS 71,1979, 1277-1340) 

경신 성사성, [성모 미사 경본과 성모 미사 독서집] (Collectio Missarum de beata Maria virgine; Lectionarium de beata Maria virgine, 1986. 8. 15.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7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7. 3. 25.) 

경신 성사성, [마리아 해 거행 지침] (Congragazione per Il Culto Divino, Orientamenti e Proposte per La Celebrazione del'Anno Mari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7.) 

동방 교회성, 훈령 [마리아 해 안에 '구세주의 어머니' 회칙과 동방 교회들](Congregazione per Le Chiese Orientali , "L'Encicilica "Redemptoris Mater" e Le Chiese Orientali Nell'Anno Mariano, 1987. 6. 7.) 

가톨릭 교육성, [영적 지적 형성에 있어서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에 관한 회람](Circular Letter Concerning the Virgin Mary in Intellectual and Spiritual Formation)

 

그리고 공의회 이후 개정된 모든 전례 예식서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 안에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한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작업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교회와 함께 계신 마리아의 신앙과 덕행을 닮아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아버지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을 세세에 드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 2000주년을 경축하는 2000년 대희년은 교회가 마리아처럼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할 때 아버지께 영예와 영광을 드리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2) 2000년 대희년과 성모 공경

 

전례적 공경, 존재론적 공경, 그리고 신심 행사를 보고 2000년 희년 대사를 살핀다. 

 

(1) 전례적 공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안에서 보는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성사적 연장인 거룩한 전례 안에서 공경이어야 한다(교회헌장, 67항). 그리스도의 신비 주년을 따라가며 자기 아들의 구세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하고 마리아 안에 구원의 숭고한 열매를 경탄하고 찬미하며, 성교회 자신이 온전이 마리아처럼 되기를 원하고 바라며 그 덕행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2000년 대희년 동안 신자들은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마리아적 인격으로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속적으로 구원의 성사에 나아가야 한다(전례헌장, 103항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와 불가분적 관계에 놓여 있는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의 구원사 안에서의 역할을 일러주는 모든 성모 축일과 축일 아닌 평일 토요일 성모 미사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마리아의 인격을 자기화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 성모 대축일(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승천), 축일, 기념일에 특별히 전야 전례도 거행해 볼 일이다. 

 

(2) 존재론적 공경 

 

존재론적 공경이란 말은 마리아의 덕행과 인격을 본받는 것을 말한다. 마리아는 신앙의 어머니이시다. 칠흑 같은 어둔 밤의 생애였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믿어 그 믿음을 실천한 신앙인의 표본이시다. 모든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신앙과 생활을 잘 일러주어야 한다. 마리아는 기도하는 동정녀, 들음의 동정녀이시다. 신자들이 마리아의 기도하는 내면을 본받을 수 있도록 잘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성서 안에서 그려지는 마리아의 모습은 아나윔의 모상이다. 아나윔은 구약의 성실한 남은자(Remnant)로서 주님의 가난한 이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에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베푸실 것을 믿어 현세적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아나윔의 모델로 나타난다. 신자들의 아나윔 피정을 통하여 영적 성장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희망의 여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역경 중에도 좌절하지 않는 신앙인의 산 표본이다. 현세의 고통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신앙과 인격을 만나게 해 주는 신자 피정이 자주 있어야 하겠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다(마태 12,50 참조; 루가 1,38). 공의회는 이를 '제자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어 순종하는 제자의 모델이 마리아이다.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나아가야 하겠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이고 사랑의 여인이고 희망의 여인이고 하느님의 뜻을 자신 안에 깊이 간직하고 영광의 승리를 위하여 항구히 응답하는 대림 정신의 산 표본이시다. 우리는 현재보다는 더 밝은 미래를 향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세상을 이겨야 하고 모든 이들을 사랑해야 한다.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의 인격은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교회헌장, 63-65항 참조). 

 

(3) 각종 성모 신심 행사 

 

"신심 행사는 전례 시계(時季)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되고, 전례는 그 성질상 이런 신심 행사보다 월등히 우위(優位)를 차니하느니 만큼, 이런 행사는 전례와 조화되고, 어느 정도 전례에서 나오며, 또한 신자들을 전례로 인도하도록 마련되어야 한다"(전례헌장, 13항). 그러므로 예를 들어 성가정 운동이라면, 가정 주일에 가정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신심 행사를 마련하여 혼인 갱신식이거나, 가정 기도 운동, 부부들의 피정 행사를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성요셉의 성상을 모신 가운데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묵주기도 축일(10월 7일)에는 모든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합송하여 바치며 강론을 하거나 구세주의 생애를 연극으로 꾸며 기도와 신심 그리고 생활을 성장시킬 수 있는 신심 행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성모 성월, 한 달 동안은 성모의 덕행을 본받는 달로 정하고 성모에 관한 전기나 신심을 일깨우는 신심 서적들을 일러주어 신자들이 성모의 동정성과 모성을 본받고 그 덕행을 따라 생활하도록 일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2000년 대희년 대사와 성모 행사 

 

교황청 내사원(內赦院)은 1998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에 2000년 대희년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을 반포했다. 이 조건에 따르면 교구가 지정하는 성당에서 얼마 동안 성체성사를 흠숭하고 신심 깊은 묵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 후에 끝으로 '주님의 기도', 어떤 인증 받은 형태의 신앙 고백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면 희년 대사를 얻을 수 있다(Incarnationis Mysterium 참조). 이 모든 신심 행사가 성체성사와 관련을 가지고 교황의 지향을 따라 기도하며 주님의 기도, 어떤 인증 받은 형태의 신앙 고백과 복되신 동정너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면 희년 대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면서 몇 가지 사항을 남기고 싶다. 한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도 지침에 입각한 성모 신심 육성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 사목회의 지침서 안에 미비한 성모 신심 사항이 보충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모의 신앙과 덕행을 따라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지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마리아론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다. 서둘러 신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기획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일선 사목자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도 방향을 모르고 있다. 신학교에서는 신학의 필수 과정으로 마리아론을 가르쳐야 한다. 21세기로 가는 문턱에서 간략하게나마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을 진단해 볼 수 있어서 기쁨이 크다. 성모님의 신앙과 덕행을 닮아 하느님과 이웃을 한없이 사랑하는 21세기 한국 교회가 되게 하소서!

 

 

참고 문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Lumen Gentium), 제8장. 

-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큰 징표](Signum Magnum, 1967. 5. 13.), AAS LVIII,745. 

-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1974. 2. 2.), AAS LXVI,113.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9.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2.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 경신 성사성, 성모 미사 경본과 성모 미사 독서집(Collectio Missarum de b eata Maria virgine; Lectionarium de beata Maia virgine, 1986.8. 15., Libreria Editrice Vaticana, 198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 가톨릭 교육성, "영적 지적 형성에 있어서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에 관한 회람" 1988. 3. 25., L'Osservatore Romano in English Weekly Edition, 13. June. 1988. 

- 교황 비오 9세, 헌장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 이정운 역주, 수원 가톨릭 대학교 출판부, 1989. 

샤를 달레, [한국 천주교회사], 분도출판사 

- 최윤환, [천주셩교공과의 원본], 논문집 제2집, 가톨릭대학, 1976, 35-74.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가톨릭 대사전], 1985.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천주교회 창설 이백 주년 기념 [한국 교회사 논문집], I-II,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1985. 

- 이정운,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 마리아 운동 현상황 분석과 쇄신 방향 연구], 수원 가톨릭 대학교 전례연구소, 1991. 

- 이정운, [로마 가톨릭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도 지침에 따른 전례적 마리아 공경과 성인 공경 연구], I-II, 수원 가톨릭 대학교 전례 연구소, 1998. 

- [회장 직분], 경성부 명치정 천주당 성서활판부, 1923. 

-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 Seoul, 1958. 

-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사목, 1999년 5월호, 이정운(수원 가톨릭 대학교 교수, 신부, 교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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