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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사랑의 씨튼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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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3 ㅣ No.49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사랑의 씨튼 수녀회 (상)

 

 

사랑의 씨튼수녀회 메리 아그네스 수녀가 청원자들과 함께 학생 가정방문을 하고 있다.

 

 

"가난한 이를 돕고 병든 이를 방문하며 고통 당하는 이를 위로하고 천진한 아이들을 입혀주며 그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불리움을 받았다는 사실로 내 영혼이 느끼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성녀 엘리사벳 씨튼 명상록 중)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와 성녀 루이즈드 마리약의 정신을 이어받아, 1809년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이 미국에서 최초로 창설한 수녀회다.

 

1774년 미국 뉴욕시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은 20세에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고 어머니와 아내로서 살았으나, 29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성체께 대한 열렬한 신심으로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에 성녀는 당시의 필요에 따라 미국에서 최초로 교구 가톨릭 학교를 창립했으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봉사했다.

 

성녀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헌신의 삶을 살았으며 부드러움과 쾌활한 성품으로 수도회원들을 사랑으로 격려하며 기쁨에 찬 봉사의 삶을 살도록 재촉하였다.

 

1821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성녀는 "교회의 딸들이 되십시오"라는 마지막 임종의 말을 통해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이 하느님 안에서 교회의 필요함에 항상 응답하도록 가르쳤다. 이후 수도회는 빈첸시오 성인이 실천했던 가난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육화의 영성과 그 전통을 이어받아, 당시 미국 사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활동 수도회로 성장하게 된다.

 

수도회는 유치원 교육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교육과 일반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사업을 펼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계층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사업 및 특수사목에도 종사해오고 있다.

 

한국에는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라는 명칭으로 1960년 당시 광주대교구 현 하롤드 헨리 대주교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진출, 전라남도 강진에서 성요셉 여자 중고등학교 교육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씨튼 까리따스 수녀회는 원래 교구소속 수도회였으나, 1957년 5월 3일 로마 교황청의 수도성성으로부터 새 회헌을 인준받고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승격되었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맞추어 수정을 거친 새 회헌은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 축일인 1985년 1월 4일에 새 회헌으로 공식 인준 받았으며 그해 총회에서 수녀회의 공식명칭을 '사랑의 씨튼 수녀회'로 변경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1974년 수녀 교육을 위한 서울 분원을 열었고 광주시 근교로 수련소를 옮겼다가 1986년 광주시 북구 본촌동에 한국 본원 및 수련소를 마련했고 현재는 본촌동 본원과 강진에 위치한 중남부 교육관을 수련소로 겸해 사용하고 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현재 9개 교구, 25개 본당에서 본당 사목을 돕고 있으며 교포사목, 해외선교, 특수학교 교육, 사회복지 분야, 영성 ·피정 지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대의 필요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면서 창설자인 엘리사벳 앤 씨튼의 정신을 토착화하기에 이르렀다.

 

사랑의 씨튼 수녀원에 들어서면 맨 처음 눈에 띄는 수녀회의 모토 "겸양 소박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문구는 이와 같은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8월 25일, 김재영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사랑의 씨튼 수녀회 (하)

 

 

충주성심 맹아원 아이들이 첫영성체후 사랑의 씨튼 수녀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영성과 사도직 활동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것처럼 그분의 삶을 본받아 가난의 정신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수녀회가 지향하는 삶이자 모토입니다."

 

"본당에 나가더라도 어렵고 힘든 성당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고 말하는 이선자 관구장 수녀는 소임을 부여받은 수녀에게 "시대와 교회의 징표에 따라 이 시대에 가장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투신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수녀회의 여러 활동 중에 사회복지 분야가 주축을 이루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의 가난의 정신을 삶으로써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빈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해온 창설자 엘리사벳 앤 씨튼 성녀(1774~1821)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이 19세기 초 미국사회와 교회의 필요에 따라 가난한 이를 위한 교육사업에 앞장섰던 것처럼 이제 수녀회는 성녀의 영성을 한국 땅에 토착화하고 있다. 즉 현재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한다.

 

1960년 한국에 진출해 가난한 지역이었던 전라남도 강진에 성요셉 여자 중고등학교 교육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사회복지와 교육을 중심으로 영성 피정 지도, 본당 사목 등의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수녀회는 노인요양원인 작은 안나의 집과 시각장애 생활시설인 충주 성심맹아원, 장애인 재활 작업장인 사랑의 일터, 공부방인 나자렛 집, 인천 남동종합사회복지관 등 각 지역의 다양한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개원 4주년을 맞이한 씨튼 해바라기 집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여성,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가출소녀들에게 따스한 쉼터가 돼주고 있다.

 

교육 사도직에 있어서도 수녀회는 특별히 가난한 자에 대해 우선적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녀회가 운영하는 교육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나 대안학교가 대부분이다.

 

나아가 국내활동을 넘어 해외 진출도 시도하고 있는데 98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연길 서광의 집을 인수해 취학 전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교육 또한 실시해오고 있다.

 

수녀회는 또한 이 시대의 가난함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종교분쟁이 만연한 현 시대상황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껴 92년 서울 성북동에 씨튼 연구원을 개설,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하고 있다.

 

94년 10여명의 신앙인 학자들을 초청 제1차 종교인들의 모임을 개최한 수녀회는 '선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시작으로 불교, 유교, 무교, 도교, 유다교, 이슬람교, 등 매년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수녀회는 생태.환경문제와 여성문제가 현시대의 가난한 부분이라 여기고 이 분야에 수녀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등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는 수도회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가난의 영성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현재 111명의 종신서원자와 57명의 유기서원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오늘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증거를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영세 후 3년 이상된 가톨릭 신자로 고졸 이상의 학력에 몸과 마음이 건강한 30세 미만의 미혼여성이면 입회 가능하다. 매월 둘째주 주일 본원에서 성소모임을 하고 있으며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마산, 전주, 제주, 충주 등 전국의 각 지역 수녀원에서도 성소모임을 갖는다.

 

※ 문의=(062)571-3004 [가톨릭신문, 2002년 9월 1일, 김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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