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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가르멜 수도회 -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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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1 ㅣ No.124

[수도 영성] 가르멜 수도회 -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에게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사랑)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1열왕 17 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관상’, 카르멜* 수도자들의 삶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느님 당신만을 찾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다.”라는 십자가의 성 요한말씀처럼, 이 사랑이 온 세상 안에 커나가도록 고독한 곳으로 물러나 숨어 지내며 오로지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살아가는 것이 카르멜 수도자들이 택한 몫입니다.

 

보통 ‘가르멜 수도회’**라고 불리는 우리 수도회의 정식 명칭은 ‘카르멜 산의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수도회’ 입니다. 카르멜은 이스라엘 서북부 갈릴래아 지방에 있는 산 이름으로 ‘비옥한 땅, 포도밭’이라는 뜻입니다. 이 산 속에 있는 엘리야 샘 근처에 은수자들이 모여 살다가 12세기 초 법적인 체계를 갖추면서 수도회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도회와 달리 특정 창설자가 없지만, 우리는 수도회의 정신적 기원을 엘리야 예언자에게 둡니다.

 

 

순수한 관상으로 하느님과 일치

 

가르멜 수도회는, 13세기 이슬람교도의 침략으로 인해 철저한 은둔의 삶을 살던 초대 은수자들이 유럽으로 이주하여 도시에 살게 되면서, 기본적인 은수생활을 지키면서도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도적 실천을 겸비한 탁발 수도회의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16세기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로 그 당시 대부분의 수도회들은 이완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르멜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의 성녀 데례사가 완화된 가르멜회를 개혁하면서 생활양식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초대 카르멜 수도자들의 은둔생활을 본받아 고독과 침묵 가운데 소수 정원제로(21명) 공동체 생활을 하며, 형제적 친교로 조화를 이루면서 교회를 위한 봉사와 희생 정신으로 온 세상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생활양식입니다.

 

봉쇄 수도원이라 하여 엄엄한 침묵만이 흐르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하느님 현존의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 공동체 생활의 친교와 인간적 배려들은 기도생활을 더욱 생기있게 합니다. 수녀들은 복음을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구원사업에 참여하고자 전적으로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고통이 없는 하루는 잃어버린 하루”라고 하신 창립자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따라, 또한 기도와 안일은 서로 병행될 수 없다는 전통에 따라 수녀들은 순수한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합니다. 이는 곧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머무시는 하느님과 친밀하고도 내밀한 우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인 기도는 카르멜 생활의 기초이며 첫째 의무입니다. 그래서 하루의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침으로써 온 삶이 기도가 되도록 일과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찬전례와 하루 7번의 성무일도, 아침과 저념 묵상기도는 우리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 가르멜의 역사

 

우리나라에는 민족의 암흑기 인 l939년, 처음으로 5명의 프랑스 엘 가르벨 수녀들이 이 땅에 도착하여 혜화동 신학교 울타리 안에서 한국의 첫 관상 수도회인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설립의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지난 66년간 전국 교구에 8개의 가르멜 수도회를 탄생시킨 모태가 되었습니다.

 

지난 2005년에는 설립 65주년을 기념하여 6월 25일에 아시아 선교와 복음화를 위해 한국 관상 수도회로서는 처음으로, 캄보디아 교회의 간곡한 요청으로 5명의 수녀를 파견하여 나누는 교회로 전환하고자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6 · 25 동란 때 설립자 다섯 분 전원이 납북되어 죽음의 행진 도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선종하신, 이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주신 설립자 수녀님들의 유지를 거리며 평양에 수도원 설립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러한 준비의 하나로 근거지가 될 동두천에 북방선교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가르멜 수도원을 2006년 6월 30일에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에 세워질 새 가르멜은 아시아 선교와 세계평화 그리고 우리의 분단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꾼을 양성하는 수도원이 될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수도자들이 머무는 봉쇄구역을 뺀 외부 전체를, 미래 통일조국을 향한 우리 민족의 희망찬 기대와 함께 반세기 이상 분단된 조국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도의 장소, 모든 이를 위해 주말 피정과 수도원 체험이 가능한 자연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미군이 오랫동안 주둔하여 개발할 수 없었던 땅, 지금까지도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 무너진 그곳, 버림받고 소외되었던 땅 동두천에 이제 우리의 기도와 염원으로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주님의 제단을 세우려고 합니다.

 

 

어머니이신 교회를 위해

 

맨발 가르멜 수녀들의 순수 관상적 사도직은 교회와 함께,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주님의 신비체를 위하여 그분의 남은 고난의 잔을 채우려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하고 교회에 대한 크나큰 자녀의 효성을 드러내신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역시 교회 안에서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통해 그가 가진 교회에 대한 의식을 “어머니이선 교회의 심장 안에서 나는 사랑이 되겠습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마라, 그 무엇도 너 무서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 인내).

 

*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성경”에서는 ‘카르멜’을 씁니다. 그러나 수도회 명칭은 고유명사 표기에 따라 ‘가르멜 수도회’로 표기합니다.

**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고성 - 대구 - 대전 - 밀양 - 상주 - 천진암 - 충주 등 여덞 곳에 여자 가르멜 수도원이 있으며 ‘한국 가르멜 여자 수도원 협회’를 구성하여 전체 수도원의 대외적인 업무를 합니다.

 

[경향잡지, 2007년 1월호, 글 · 사진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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