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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전문가 통해 짚어본 낙태 · 자살 문제에 대한 교회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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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9 ㅣ No.1934

전문가 통해 짚어본 낙태 · 자살 문제에 대한 교회 가르침


수천 건의 낙태 수술, 차가운 생명 논리에 필요한 사랑

 

‘낙태’와 ‘자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어두운 그림자다. 생명 주일을 맞아 전문가를 통해 이 두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 가르침과 해법을 들어봤다.

 

 

낙태 후 화해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 - 착한목자수녀회 고순완(마르타) 수녀

낙태 후 화해 피정에 참가하는 이들

 

“죽기 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요.”

 

‘낙태 후 화해 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전하는 참가의 이유다. 이들이 말하는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은 하느님과 나,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죽임을 당한 아이에게 청하는 화해를 의미한다.

 

착한목자수녀회가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낙태 후 화해 피정에는 60~80대 고령 참여자가 많다. 1980년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 주도 가족계획에 따라 낙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50년 이상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내다 끝으로 피정에 참가하는 것이다.

 

피정을 담당하는 고순완(마르타,사진) 수녀는 “이들은 낙태 후 줄곧 귀에서 가위 소리가 들린다든지, 주변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는 등 일명 ‘낙태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낙태는 한 번의 수술로 끝날지 몰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평생 남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낙태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여성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도록 하느님께서 고심하여 빚으신 몸”이라며 “이러한 순리를 거슬러 낙태하는 행위는 아이에게는 물론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에 꼭 다시 한 번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 수녀는 낙태에 대한 책임 주체는 여성만이 아닌, 그 부모 모두라는 점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5년간 낙태 허용 한계를 규정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 따라 합법적으로 실시된 낙태 수술은 1만 792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에만 3056건에 이른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낙태 행위를 고려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낙태 후 화해 피정에는 12년 동안 매년 80여 명이 참석했다.

 

고 수녀는 이러한 실태를 매우 씁쓸해 했다. “우리 사회는 출산율이 낮다고 고민하지만, 현실은 낙태를 종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참 의문이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인 이들에 대한 지원 부족과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어지는 낙태죄 입법 공백 등이 그 이유다. 고 수녀는 “출산의 책임을 온전히 여성에게 전가하는 풍조, 청소년 부모나 한부모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현실적이지 못한 양육비 이행법 및 양육 지원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낙태는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낙태 후 화해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나’로 인해 잉태되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화해의 손을 뻗는 것, 즉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체험하며 생명과 화해해야 지킬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낙태는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죄이기에 하면 안 된다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5월 7일, 박예슬 기자]

 

 

‘소외된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회’가 됐으면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황순찬(베드로) 교수

희생자 탓하기보다 공동체 의식 되살려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황순찬(베드로,사진)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식으로 낙태와 자살을 ‘죄다’, ‘나쁘다’고만 단죄해선 해결할 수 없다”며 “교회도 단순히 정죄하는 논조에서 벗어날 때”라고 강조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데다, 최근 10~30대 자살률이 증가하면서 우려를 사고 있다.

 

황 교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어떠한 아픔도 공유하지 않으면서 차가운 논리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자 가해행위가 될 수 있다”며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그런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다’는 건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에서 가능한 거예요. 식물을 뿌리째 뽑아 책상 위에 놓고 ‘삶은 소중하니까 살라’고 한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햇빛과 공기와 물과 흙이 있어야 살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삶을 지속할수록 더 고통받고, 누군가에 의해 더 침해당하고, 파괴되는 환경에 있으니 역설적으로 자기 삶을 지키고자 죽음이란 탈출구를 택하게 된 것이죠.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이 소중하다고 거듭 외치기보다, 사람들의 삶이 소중히 보호받고 있는지 살피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하는 거죠.”

 

인간이 살기 위해선 의식주 충족 외에도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고, 마음속의 것을 가감 없이 터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어렵고, 들어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인적ㆍ정신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여주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2019년보다 6.4%p나 증가했다. 황 교수는 “그럴수록 경청의 힘이 중요하다”며 “대화를 통해 나의 살아감이 너의 살아감이 되고, 너의 살아감이 나의 살아감이 되는 관계성을 확장해 나아가는 자살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가장 기본적인 지지 체계인 가족과도 갈등에 있는 사람이 많다”며 “가족을 대신할 대안적 지지체계, 나아가 혈연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유사가족ㆍ사회적 가족을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을 도서관이나 성당을 상담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힘들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심리적 거점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풍요에 억압된 사회’가 됐습니다. 사람을 소유물로 평가하는 세상이 만든 강박이죠. 그 부를 갖추지 못하면 실패자로 삶의 목적을 잃게 되고요. 우리 교회 역시 그런 사회 분위기에 물들어 본질적인 것을 자꾸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계속 가난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신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동떨어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그들과 ‘같은 성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편하게 여기진 못하는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는 신자가 성직자를 만나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죠. 그럼에도 ‘가난한 교회’, ‘소외된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회’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교회가 죽음을 선택할 만큼 힘겨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라져가는 사람들도 돌아보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5월 7일, 이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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