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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위로의 성모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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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77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위로의 성모수녀회 (상)


예수님을 사랑하고 흠숭하며 이웃에게 위로와 공경 실천

 

 

위로의 성모수녀회는 그리스도의 위로를 현존화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특히 곤궁한 이들이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됐다. 사진은 종신서원식 장면.

 

 

『이 세상 어디라는 것, 또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필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857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창설자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의 이 정신처럼, 또 그 이름에서 느껴져 나오는 이미지처럼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체험케 한다는 모토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수녀회 영성은 고린토 후서 1장 3~4절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양받으시옵소서. 그분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갖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는 그 위로로, 온 환난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즉 삼위일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면서 실의에 찬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모든 자비와 위로의 근원이 되는 표양으로 삼고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계시하여 주시고 그분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믿으며 주님의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설립 회칙에서도 위로의 성모 수녀회 자매들을 부르시고 모이게 하신 목적이 완성과 위로, 또한 온갖 사랑의 원천이시고 본보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흠숭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공경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임을 천명하고 있다. (설립회칙 1장 1조)

 

창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는 1815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태어나 16세때 수도회에 입회할 뜻을 표명했으나 아버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841년 26세 되던해 그 뜻을 이루어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 떨어져나온 한 공동체에 입회했다.

 

이후 토르토사 지역의 고아들과 노인들 그리고 정신 장애인들의 수용 시설이었던 「자비의 집」을 운영하게 된 마리아 로사는 탁월한 운영 능력을 발휘하여 당시「비참의 집」이라 불리웠던 그 시설을 이름 그대로 「자비의 집」으로 만들었다. 이에 시당국은 마리아 로사에게 학교와 시립병원의 책임을 맡게 하였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이같은 과정에서 태동했다. 마리아 로사는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이미 입회 시기전부터 교회와 연결을 맺고 있지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교구 소속 수도회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였다. 

 

1857년 토르토사 교구 참사회 대리 마네로 신부는 이 수녀회의 활동은 이웃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의 수녀회」로 이름 붙였고 이후 현재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명칭으로 정착됐다.

 

수녀회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황청 설립수녀회로 승격됐으며 1901년 최종적으로 회헌을 인준받았다. 마리아 로사는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위로의 성모수녀회 (하)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 실천 위해 어르신, 가출소년 쉼자리 등 운영

 

 

위로의 성모 수녀회 사도직은 카리스마 영성을 바탕으로 갖가지 불행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이를 세상에 현존시키는 것에 기본을 둔다.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창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의 위로자가 되리라』(이사 51,7.12)하신 주님 약속에 전적으로 의탁,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 40,1)는 외침에 구체적으로 응답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신비적 관상과 가장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을 일치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류의 스승, 사랑의 새로운 문명의 창설자,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위로의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은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녀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수도회 회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모델로 소개한다』고 밝힌바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을 통해 『성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였고, 위로하면서 온갖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이 여인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표시』라고 언급했다.

 

창설자의 영성은 수도회 회원들 안에서 또 수녀들의 봉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또 다른 성덕가를 만들어내는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재 시복 단계에 있는 마리아 데레사 곤살레스 후스토 수녀가 대표적 사례. 그는 창설자를 본받아 깊은 사랑과 겸손, 기도의 모범으로 표양을 남기고 있다.

 

수녀회 한국 진출은 1986년 5월 14일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때 마틸다 세기 수녀와 카르멘 로스 수녀가 입국했고 마리아니스트 수녀회 본원에 임시로 거주하며 한국 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스페인으로부터 두명의 수녀가 더 입국하면서 현 본원 소재지인 서울 성북구 성북1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를 계기로 보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도되었다. 이후 1999년에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읍 왕림리에 수련소를 마련했다.

 

이들 사도직은 카리스마와 영성을 바탕으로 갖가지 불행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이를 세상에 현존시키는 것에 기본을 둔다. 그런면에서 시대와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수도회가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현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15개국에서 활동중인데 한국 경우 진출 초기부터 자체 양성 작업과 함께 빈민식당 공부방 등에서 봉사하며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또 성북동 본원에서는 기도 모임을 열고 특별히 젊은이들이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을 갖도록 배려했다.

 

현재 세 공동체에서 각각 다른 사도직을 펼치며 위로의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는 수녀회는 1999년 성북동 본원에 가출 소녀들을 위한 일시보호시설인 『우리들 쉼자리』를 개소, 가출 소녀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2002년에는 서울교구 김병도 몬시뇰 요청으로 쌍문동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체 「위로의 성모의 집」을 열었다. 또 수원 교구 왕림에 위치한 수련소는 피정의 집 운영을 통해 수도회 카리스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5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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