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우리에게 필요한 보조성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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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7 ㅣ No.1339

[새로운 복음화를 향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보조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사회교리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보조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개인이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 원칙이지만, 아직 낯설게 느끼는 신자들이 많은 듯합니다. 보조성의 원리를 쉽게 알아보고 우리 처지를 돌아봅시다.

 

 

정의

 

이 원리는 1931년 비오 11세 교황의 ‘사십주년’이라는 회칙에서 처음 제시되었습니다.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사십주년, 35항)

 

 

상부와 하부, 위와 아래

 

우선 위와 아래, 또는 상부와 하부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주교님은 본당 신부님보다 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님보다는 아래입니다. 의정부교구는 대한민국보다는 작지만, 본당 공동체보다는 큽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상부이면서 또 하부이기도 합니다.

 

상부로 갈수록 권력과 부와 정보가 집중되며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부로 갈수록 현장에서 실질적인 일을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중앙이나 상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래가 훨씬 중요하고, 주도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도한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다고(사십주년) 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개인들의 판단, 권한, 능력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현장의 느낌과 판단과 안목과 도덕성을 신뢰하고, 상부는 하부를 최대한 존중하고 수용하고 지원하는 가운데 상부와 하부가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부는 하부가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이 보조성의 원리입니다.

 

 

유교적 질서와 다르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포인트를 짚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나라 전통의 유교사상과 무척 다릅니다. 유교는 상명하복의 질서에 익숙합니다. 충과 효란 윗사람과 높은 자리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은 우리나라의 전통 윤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삼강(三綱)이란,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부위자강),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군위신강),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부위부강)는 것입니다. 이는 “상위 질서의 사회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에 대하여 도움(subsidium)의 자세, 곧 지원과 증진과 발전의 자세를 갖추어 한다”는 보조성의 원리와 반대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높으신 교황님의 공식 호칭 가운데는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의 올바른 이해

 

둘째는 상부에서 내리는 지침 또는 가이드라인입니다. 보조성의 원리가 사라지면 독재나 전체주의가 득세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위를 쳐다봐야 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현장의 생동감은 죽어버리고 상부의 지침은 절대적 명령이 되기 십상입니다.

 

진정한 가이드라인은 하부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하부는 상부에서 내려보내는 가이드라인을 그저 신줏단지 모시듯 절대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때로 하부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후 결제가 필요 없다.

 

셋째는, 그런 면에서 ‘사후 결제’나 ‘사전 결제’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이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다음이나 하부는 상부에게 결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을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서양처럼 세밀한 보고서를 쓰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합니다. 보고서는 상부가 하부를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부는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한 정황과 결과를 보고하고, 상부는 적절한 도움을 제공했는지를 기록해서, 다음에 현장의 일꾼들이 실질적으로 참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신앙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천상의 높은 궁전에 좌정하시어 숭배자들의 제물이나 원하는 그런 신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통받는 작은 사람들에게 참된 도움과 지원을 주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종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고(탈출 3장), 이집트의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종들을 손수 구원해 주셨습니다. 성탄의 신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직접 인간이 되시어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고 영원한 도움을 주시는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등 사도들의 생애와 업적에서도 이 원리를 잘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중앙에 머무르지 않고, 선교의 최전선에서 가서 살았습니다. 파견된 사도들이 서로 나눈 편지에는 그들의 귀한 고백과 성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중앙을 포함해서 전체가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편지를 읽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 편지의 일부는 신약성경이 되어 우리에게 전합니다.

 

 

보조성의 원리가 파괴된 비극

 

돌아보면 세월호의 비극에서 보조성의 원리는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현장을 책임져야 할 일꾼들은 너무도 무력했습니다. 모두가 중앙의 명령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현장 상황에 가장 깜깜한 곳이 중앙이었습니다. 각급 일꾼들이 무능한 중앙을 바라보기만 하는 동안, 가장 약한 존재들이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아래가, 현장일꾼이, 하부가 상황을 주도하는 보조성의 원리가 이처럼 소중했던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각종 노동 현장 등에서 수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군림하고 지배하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현장에 실질적 도움을 제공한다는 자세로 경청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는 문화가 절실합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마침 내년 부활절인 4월 16일이더군요. 세월호 참사로 슬퍼하는 이들이 내년에는 부활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우리 사회가 깨어있고 책임감 있는 일꾼들을 중심으로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길 고대합니다.

 

[2016년 9월 18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의정부주보 7-8면, 주원준 토마스(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 정의평화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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